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13일 사립유치원의 비리 백태를 고발했다.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13일 사립유치원의 비리 백태를 고발했다. ⓒ MBC

 
"유치원에 어머니들이 낸 보육료, 나라에서 준 보조금, 이런 것들을 한 통장에 모아놓고 이 통장에서 돈을 뽑아서 핸드백도 사고 골프장도 가고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사고 자기 자녀들 등록금도 다 내고 누가 봐도 이것은 횡령이잖아요. 일반 상식에서는. 그런데 이게 우리가 법적으로 들어가면 곤란한 일들이 생기죠."
 
13일 오후 방송된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 PD수첩 - 사립유치원은 법이 없습니다 >에 출연한 류하경 변호사의 말이다. 이날 'PD수첩'은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사립 유치원의 비리 실태를 고발했다.
 
< PD수첩 >이 고발한 내용은 실로 경악스럽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사립 유치원 비리를 폭로한 이후 JTBC, KBS 등 주요 언론들이 앞 다퉈 사립 유치원의 방만한 회계 운영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 정도만 해도 공분을 살 만한 수준이었다. < PD수첩 >은 경기지역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유치원 급식비 회계조작을 담당했던 제보자의 증언을 다뤘다. 그의 고발 내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제보자의 말을 들어보자.
 
"실제 명세표가 있어요. 실제로 우리가 산 것, 그것대로 넣으면 43만 원, 60만 원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다 수입에다가 수량도 적고 애들이 많이 못 먹잖아요. 그래서 뻥튀기를 시키는 거예요. 사지도 않은 쌀을 많이 사고 고추장을 많이 사고 수입소고기를 한우로 바꾸고 먹지도 않은 것을 막 넣고 그러니까 그게 잘못된 거죠."
 
제보자의 증언대로라면 유치원은 아이들 음식비를 빼돌린 셈이 된다. 그래서 제보자도 "실제로 애들은 싸구려 저가 음식을 먹는데"라며 개탄스러워 했다.
 
뿐만 아니다. 원장이 아이들 견학이나 현장 학습비를 빼돌려 자기 겉치장에 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원장은 현직 목사이기도 하다. 현직 목사라는 원장은 유치원 법인카드로 고급양복과 명품을 사들였다. 원장의 카드 사용내역은 또 한 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PD수첩 취재 결과 현직 목사인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법인카드로 호화생활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PD수첩 취재 결과 현직 목사인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법인카드로 호화생활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 MBC

 
"유치원의 설립자는 현직 목사, 우리는 유치원 법인카드 사용 내역서를 확보했습니다. 유치원의 것이라기보다 어느 부유층의 카드사용 내역서 같습니다. 한 고급양복점에서 360만 원, 900만 원 등 1600만 원을 썼고 2년간 백화점 아울렛 지출은 총 182건에 달합니다. 260만 원짜리 명품 구입 등 백화점에서 하루에 390여 만 원을 쓴 날도 있습니다. 2년간 백화점과 아울렛에서만 유치원 카드로 6650여 만 원을 지출, 호텔과 호텔 스파 등에서도 수차례 유치원 카드가 사용됐습니다."
 
결국 사립 유치원 원장들은 보육료와 국가가 주는 보조금을 자기 돈인 양 쓴 셈이다.
 
허술한 법망, 비리 키운 주범
 
문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 PD수첩 > 제작진은 이렇게 비리가 만연한 데에는 허술한 법망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사립 유치원이 관계 당국의 감사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해당 감사 내용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를 두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덕선 비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원장들은 박수를 친다.
 
"일부 교육청 감사관들이 이를 두고 수차례 수사기관에 고발했으나 거의 상당수가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검찰에 고발된 건 뭐냐 하면 비리사실이 크다고 해서 검찰에 고발됐습니다. 그런데 그 비리사실이 크다는 유치원이 다 무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지금 경기도에서 감사한 건 생사람 잡았다, 생사람 잡았다."
 
법원 판단도 이해하기 어렵다. 2016년 대법원은 급식비를 두 배로 부풀려 회계 처리한 한 어린이집에 대해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현행법상 회계보고 등과 관련해 아무 규정이 없고 회계심사를 안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는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체계 상에서는 가능하다. 앞서 인용한 류하경 변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왜냐하면 횡령죄라고 하면 내가 관리권한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재산이 특정되어야 해요. 그런데 한 통장에다가 보조금 보육료 지원금을 다 쏟아 넣어버리니까 이게 마치 바닷물에다가 물 한컵 부은 것처럼 그냥 똑같은 거대한 바닷물이 되어버려서 이 물을 퍼서 사적으로 이용해도 순수한 물이 무엇인지 특정이 안 돼 버리니까 횡령죄가 안 되는 거예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
 
아이를 유치원에 안 보낼 수도 없고...
 
 한유총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제한할 그 어떤 공적 논의도 집단 행동으로 무산시켰다.

한유총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제한할 그 어떤 공적 논의도 집단 행동으로 무산시켰다. ⓒ MBC

 
전국 4000여 개 사립유치원을 회원으로 둔 한유총은 자신들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박용진 의원을 향해 "당신은 비리가 없냐"며 오히려 문제제기를 한다. 이들은 사립유치원의 기득권을 제한할 그 어떤 시도에도 집단행동으로 맞섰다. 서울시교육청 이민종 감사관의 증언은 한유총의 집단행동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제까지 한유총의 문제점, 엄밀하게 사립유치원의 문제점을 다루는 공청회나 모임들을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현장에) 한유총이 와서 방해를 한 거죠. 방해를 해서 안 됐었고, 한유총이 출범 때부터 반대했던 국공립유치원 확대 반대, 결국 그날 세미나도 한유총의 저지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정치권도 이들의 표 결집력을 의식해 한유총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한유총에 적극 구애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이대로 지속 가능한가'를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 "여러분의 목소리를 대변해드리고 고민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열심히 당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유총이 정치권까지 뒤흔드는 막강한 힘을 가진 원동력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런데 이 돈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부모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얼핏 아이들을 유치원에 안 보내면 그만일 뿐이라고 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이런 맥락에서 진행자 한학수 PD의 클로징 멘트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제 유치원 문제는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 만큼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앞으로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지금 논의되고 있는 유치원 관련법이 잘 개정되고 아울러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한다는 교육부의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길 바랍니다."
 
PD수첩 한유총 이덕선 사립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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