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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 공포는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행하며, 공포일은 관보에 게재된 날이다."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법률 공포문은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찍고 그 공포일을 명기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적 법률 공부할 때부터 너무도 익히 들었던 말이다. 시험에도 자주 나왔던 문제들이다. 이 말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서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리(公理)'가 됐다. 그리하여 '법률 공포일자'는 '관보발행일자'이며, 법률의 '공포'란 "법령을 일반국민에게 주지시키는 행위를 말한다"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상식과 이해는 다른 측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공포(promulgation)와 공고(publication)는 다르다 
 
2018년 10월 16일 대한민국 관보. 법률의 공포는 이렇게 이뤄진다.
 2018년 10월 16일 대한민국 관보. 법률의 공포는 이렇게 이뤄진다.
ⓒ 대한민국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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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김동훈 헌법연구관은 헌법재판소에서 발간하는 <헌법논총> 28집에 실린 '이탈리아의 헌법과 헌법재판제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탈리아 헌법 규정상 보통 법률의 제정 절차는 ① 발안(iniziativa) - ② 심의·의결(esame e discussione) - ③ 공포(審署), (promulgazione) - ④ 공고(pubblicazione)의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서 흔히 '공포'(公布)라고 번역되는 'promulgazione'의 이해가 문제된다. '공포'라는 용어는 '널리 알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우리나라 법문화상으로도 관행적으로 그렇게 이해되고 있다(헌법 제53조 제1항, 제6항, 제7항 참조).

그러나 이탈리아에서의 promulgazione는 그렇지 않고 대통령이 승인함으로써 내부적으로 법률안을 확정짓는 것을 의미하고, promulgazione 이후 pubblicazione(관보에의 공고 혹은 출판, 발행)에 의해 비로소 외부적으로 알려지고, 또 이 공고 다음날부터 법률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근대법의 원조인 프랑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S. Borghese의 저서(Nozioni di Diritto Costituzionale, 1966)의 일본 번역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공포' 대신 '심서(審署)'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있다(S. Borghese, S. Borghese, '⌈イタリア憲法入門'⌈, 岡部 史郞 역, 有斐閣, 1969, p.61~63 참조)"(<헌법논총> 28집, 2017.)


법률의 '확인행위'와 '표시행위'는 구별돼야

한편, '한국공법학회'는 2016년 11월에 법제처에 제출한 <21세기 국가모델을 위한 가칭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위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공포' 관련 문제를 언급한다. 글이 상당히 길지만, 중요한 해석이므로 여기에 모두 인용한다.

"법률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하는 행위와 법령을 일반대중에게 알리는 표시행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확인행위를 독일법에서는 Ausfertigung이라 하며, 프랑스법에서는 promulgation이라 하는 반면, 표시행위는 독일법에서는 Verkṻndigung이라 하며, 프랑스법에서는 publication이라 한다.

확인행위는 법령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위로서 특정 법령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증하는 행위이고, 확인권자가 대상 법령에 서명을 하고 그 날짜를 기재하는 행위로 구성된다. 이러한 인증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확인행위는 대상 법령의 형식적 실체적 적법성에 대한 심사권한 문제와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관습법과 달리, 실정법령은 이러한 확인행위로써 탄생 내지 성립하게 되므로 확인의 날자는 법령의 성립일이 되고 해당일을 기준으로 하여 해당 법령이 준수하여야 하는 법상태의 시간적 기준도 정해진다. 또한 확인행위는 대상 법령에의 서명자가 해당 법령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하는 행위로서 이를 통해 법규범은 비로소 집행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한편, 시민에게 법령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별도로 표시행위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표시행위가 있은 이후 법령은 발효 내지 실시된다. 프랑스의 경우, 법령은 확인권자의 확인(promulgation)을 거쳐 공적으로 표시(publication)된 다음날 실시되는 것이 원칙이다. 독일의 경우 연방대통령 등에 의하여 부서된 연방법률은 확인(Ausfertigung)을 거쳐 연방법률관보에 표시(Verkṻndigung)된다.

하지만 우리 헌법 제53조와 현행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제12조는 확인행위와 표시행위를 분별하지 않고 이를 모두 '공포'라는 말로 뭉뚱그리고 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위의 두 글 모두, 관련 문제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는 필자의 논문(<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안>, <입법과 정책> 제3권 제1호, 2011.6.)을 인용했다.

왜 두 개의 상이한 법률 행위를 하나로 뭉뚱그리는가?

한 국가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법령의 '개념'과 '기준'이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법률에서 '공포'에 관한 개념과 기준은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왜 대통령은 국가의 근간인 법률에 서명일자를 명기하지 않으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관보발행일자'를 적어야 하는가?

엄연하게 상이한 두 개의 법률 행위를 하나의 '그릇된' 개념으로 뭉뚱그려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법제처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관련 규정을 더욱 악화시켰고, 헌법상 규정마저 혼선을 겪고 있다. 마치 '공리'처럼 관행화돼 있는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이제는 그만 바로잡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소준섭씨는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법률공포, #공고, #확인행위, #표시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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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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