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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해답이 될 수 있는가

논란이 논란을 낳자 격화된 혐오, 그리고 반성
18.11.14 00:5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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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페미니즘 집회 외국에서 여성들이 여권(女權) 운동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 GettyImages
  그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은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었고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좋은 측면에서든, 혹은 나쁜 측면에서든, 페미니즘은 새로운 바람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이러한 열풍은 사회적 주목만치 그 폐해도 낳고 있는 모양새이다. 남녀를 이분하고 혐오 표현이 만들어지고 조장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거나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혐오가 사회 이념이 될 수 없음을 논증해야 하겠다. 사실 논증은 매우 간단한데, "다만 사회가 공존으로서 유지된다"는 사실이 그 논증의 기초가 된다. 사회는 공존 가능으로서 지속 가능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사회는 분열되고 사회 갈등만 낳는다. 그러한 사회 이념은 사회를 유지시켜야 하는 사회 윤리로서의 가치를 망각한 것이다. 즉 공존 불가능한 혐오는 사회 윤리가 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혐오는 개인의 자유라고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도 아니며, 비논리적이며, 사회윤리와 정면으로 위반되는 표현의 자유라면, 또한 그 혐오가 행동으로 실현되어 어떤 사회 구성원을 해하는 표현이라면 그 표현은 강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그 비판점을 갖는다. 상술하였듯이 페미니즘이 받는 제1비판은 "혐오 조장"이다. 수많은 여성학 교수들이 빈약한 논리를 이용해 남성에 대한, 혹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물론 모든 여성학 교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비판은 보통 강경한 래디컬 페미니즘에 해당된다.)
페미니즘이 받는 비판은 또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가 말한 것처럼, "가부장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예컨대 강준만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유지하려고 한다면서 남성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은 것이라고, 오세라비는 비판한다. 한 가정의 어머니가 주도권을 잡은 가정도 여전히 많고, 남성들이 연애 권력에서의 상위를 갖는 것도 아니다. 특히 30대 이하의 남성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경험이, 자신들이 인지하기에는 거의 없다. (물론 저자는 지금의 상황이 과도기이고, 남성에게 유리했던 과거의 악습들이 사라지는 중이라고 첨언한다.) 즉 정희진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중심과 주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라는 말은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비판이 더 있다. 바로 "잠재적 가해자"라는 발언이다. 남성들은 언제나 잠재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발언 자체는 적절치 못하다. 그것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비판, 즉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비판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미 남성들이 가해자라고 말한다.
물론 남성들이 현재의 사회 구조 속에서 이득을 보아왔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고 다른 사람들(특히 여성)의 비판에 대해 듣고 성찰하고 논리적으로 비평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혐오나 분노가 지나치게 되면, 다시 사회는 분열 상태로 향하게 된다. 객관적 성찰과 사과와 용서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비판을 받는 페미니즘은 그렇게 사회적인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페미니즘은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려는 것은 필자의 의도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어쨌든 여성 인권 운동의 연장선이라는 데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사회 운동임을 부정할 수 없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라는 남성혐오 사이트가 등장하였으며, 여러 가지 혐오 표현들이 만들어지고 조장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표현들이 생겨나기까지 여러 가지 수난이 있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투 운동이다. 고은, 이윤택, 조민기, 조재현 등의 성범죄 행위들은 잔혹하기 그지없고, 지금껏 권력형 성폭력이 한국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 되었다. 서지현 검사는 울며 나오며 고백해야 했으며 (물론 이조차도 순조롭게 해결 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남성 가해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변명으로 대중의 분노를 샀다. 가장 최근 사건이라면 구하라에게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최종범이 있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 통계 하나가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연봉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연봉이 완전히 동일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임금 격차가 크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성적 불평등이 완화되었으면서도 완화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통계에서 30대 이하까지의 평균 연봉은 남녀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른 부분은 40대 이후로, 이때의 연봉이 매우 다르게 된다. 어쩌면 경제적인 이유로 페미니즘 담론의 주요 소비 계층인 30대 이하를 비판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과도한 처사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실제 성차별도 있고 만들어진 성차별도 있고, 여성혐오도 있고 남성혐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첫 번쨰는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이익에 집착해 페미니즘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사회 공익을 위해야 한다는 사실이며, 세 번째는 혐오는 사회 이념이 될 수 없고 이분법과 진영 논리는 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상호 이해와 반성 속에서 우리 사회는 합의점을 찾아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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