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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하철 2호선 공론화의 마지막 1박 2일 시민참여단 토론과정을 보며 몇몇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찬성 쪽에서는 단순하게 편리한 지하철을 하자고 하고, 반대 쪽에서는 '5위 일체'의 복잡한 대중교통체계를 설명하는데 설득이 될까요?', '반대 쪽을 지지하려면 뭔가 성숙한 시민의식도 가져야 하고, 자가용 운전자는 불편도 감수해야 하는데 쉽지 않겠는걸요'.

이미 기울어진 여론 지형에서 시작된 공론조사였고, 광주시의 불공정 개입이 심각했다. 거기다가 논점이 지하철과 대안 교통으로 만들어지면서 지하철 2호선 백지화는 어려워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론조사 결과는 지하철 2호선을 계속 추진하자는 의견이 78.6%를 기록했다. 바쁜 시민들과 숙의 과정은 모순된 느낌을 준다. 대안은 늘 성숙한 시민의식과 충분한 숙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데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여유가 없는 시민들과 어떻게 대안을 만들어갈지 남겨진 숙제가 크다.
 
광주 지하철 2호선 백지화를 원하는 시민들과 단체들이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을 구성해 활동을 전개했고, 그 성과로 공론화가 진행되었다.
▲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 활동사진 모음 광주 지하철 2호선 백지화를 원하는 시민들과 단체들이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을 구성해 활동을 전개했고, 그 성과로 공론화가 진행되었다.
ⓒ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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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돌이켜보면 땅을 파기 직전 상태에서 공론화까지 이끌어 낸 것은 시민들의 실천이었다.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중심에 있었다. 모임 이름만 가지고 생각할 때 사람 중심의 미래 대중교통체계를 만드는 일이 궁극적 목표로 다가온다. 시민사회 전체로 보더라도 지금 다시 대중교통 체계를 설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다. 광주시의 교통 정책을 자가용 승용차 중심에서 대중교통 중심으로 전환하도록 더 체계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해졌다.

여론조사에서 반대하는 시민들의 대다수가 지하철 운영 적자를 걱정했다. 찬성하는 시민들도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광주시에 요구했다. 시민들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하철 노선 외의 지역에 BRT를 도입할 곳은 어디일까? 당장이라도 버스 노선 체계를 바꿀 대안은 무엇이고, 자전거 도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걷기 좋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까? 등등 풀어야 할 숙제가 가득하다.

다행히 지난 1년의 운동 과정에 시민모임이 조사하고 연구한 성과가 많이 쌓여 있다. 그리고 공론화 과정에서 새로운 대중교통 체계를 요구하는 시민들도 많아지고 토론도 확산되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전환을 만들어낼 가장 좋은 타이밍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민모임만큼 광주시 대중교통 문제에 열정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또 모을 수 있을까.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임을 해체하기 보다는 더 확장하고 체계적으로 개편했으면 하고 바란다.
 
11월 9일~10일, 시민참여단 243명은 화순 금호리조트에서 1박 2일간 찬성과 반대쪽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 토론과 최종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78.6% 찬성으로 도시철도 2호선 추진을 광주시장에게 권고했다.
▲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 시민참여단 1박 2일 토론과정 11월 9일~10일, 시민참여단 243명은 화순 금호리조트에서 1박 2일간 찬성과 반대쪽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 토론과 최종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78.6% 찬성으로 도시철도 2호선 추진을 광주시장에게 권고했다.
ⓒ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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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론화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일도 시민운동의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공론조사는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행사하던 결정권을 시민들이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제도다. 또한 갈등 현안을 시민들의 숙의 토론과 투표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 모델로도 손꼽힌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가 공론조사를 통과의례로 이용한다는 우려가 많다. 정부나 지자체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은 공론조사가 무의미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공론화위원회와 집행기관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세금이 투입되는 모든 공공 기관이 중립을 지키고, 공론화위원회가 주관하여 검증된 정보를 모든 시민에게 충분하게 제공하고, 기타 홍보활동은 일절 금지시키는 등의 원칙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시민운동이 풀어야 할 숙제도 생각해보았다. 많은 도시에서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단골 메뉴는 대형 토목 건설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앞으로는 대형 토건 사업 대신 생활형 SOC 구축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대형 토건 사업들은 지자체장들에게 치적도 되고 개인적인 주머니도 채울 수 있는 일로 알려져 왔다. 선거 때 도움을 준 토건 마피아와의 유착설이 늘 회자된다. 그런데 많은 토건 사업들이 시민들의 왜곡된 욕망이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개발업자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갈등으로 몰아가고, 지역 언론은 대개 개발업자들과 한 목소리를 내며 시민의 여론인 양 시민단체를 압박한다. 지역에서는 건설회사들이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 하나의 개발 이슈를 대응하면서 시민운동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종합적으로 대형 토건 사업을 멈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복지, 교육, 문화, 환경 등 삶의 질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전환 안에서 생활 기반형 토목 건축 사업 들을 추진할 때이다. 시민운동이 풀어야 할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가 공론을 만들고 합의를 통해 공동 대응하면 좋겠다. 지자체와 정치인들이 동의하도록 설득하고, 새로운 철학과 대안을 가진 정치인들이 선출되도록 실질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도 시민운동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중심 미래교통 북구 시민모임은 11월 1일과 8일, 두 차례 북구청 앞에서 12시간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 지하철 2호선 반대 광주시민 12시간 릴레이 필리버스터 홍보 포스터 사람중심 미래교통 북구 시민모임은 11월 1일과 8일, 두 차례 북구청 앞에서 12시간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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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생각해보고 싶은 과제는 시민단체와 개인들 간의 협업 방식이다. 지역에는 분야별로 여러 시민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시민모임은 뜻에 동의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협업으로 일을 추진했다. 앞으로도 사안에 따라 이런 일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개별 시민들의 활동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조직 구성과 의사결정방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단체와 개인은 어떤 비중을 가지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해야 할지 정립이 필요하다. 시민운동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도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처럼 사안별로 분출되는 시민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시민단체협의회 같은 연대조직이 어떻게 지원하고 함께 할 것인지도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개별 시민과 시민모임은 권력 앞에 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민은 연대가 힘이다.

이번 지하철 2호선처럼 시민사회가 공감하는 사안이라면 연대조직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시민운동을 확장할 기회로 만들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연대조직의 실무 집행력을 지금보다는 배 이상으로 키워야 가능한 일이다. 시민단체의 연대조직이 시민운동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최상이겠다.

긴 여정이 일단락되었다. 과정에서 성과도 있고 문제도 있었다. 급박하고 중요한 현안이었던 만큼 충분히 이야기할 여유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생각의 차이들이 있었던 만큼 갈등과 감정적 앙금도 남아 있다. 이제 충분한 이야기 마당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풀어야 할 숙제가 모아지면 해법을 찾아 힘을 집중했으면 한다.

태그:#광주 지하철 2호선 공론화, #시민운동, #시민단체, #사람중심 미래교통 시민모임, #공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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