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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징벌적 대체복무제 안돼!"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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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도입방안과 관련해 '마지노선'이란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군 복무 대신 요구할 수 있는 대체복무 기간이 1.5배를 넘으면 안 된다'는 비유적 표현일 것이다. '마지노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대체복무가 군 복무의 1.5배 이내여야 한다'는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의 권고사항을 토대로 국제적 합의가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부적절하다. 첫 번째 문제는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의 1.5배 이내여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가 확립된 적 없다는 것이다. 유엔의 인권기구에서 나온 문서 어디에도 1.5배 이내여야 한다는 규정을 발견할 수 없다.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가 회원국들에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으면 안 된다고 지속해서 권고해온 사실은 있다. 하지만 유럽평의회의 결정은 국제적 합의가 아니라 지역적 합의다. 한국 사회가 따라야 할 강제력 있는 국제합의는 아니며, 단지 참고할 만한 해외사례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암묵적으로만 존재했던 기준, 1.5배

1.5배라는 기준은 유럽국가들이 평균적으로 운용해왔던 행정기술 중 하나다. 2006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유럽국가들이 대체복무 기간으로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채택한 경우가 가장 많다고 유엔인권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2005년 퀘이커 교단에서 발행한 조사보고서 '유럽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근거 자료로 인용했다.

퀘이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국가 중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은 경우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유엔인권위원회에서도 1.5배를 암묵적인 인권 기준으로 인정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5배라는 기준이 최근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는 군 복무 기간의 1.5배인 오스트리아의 대체복무 기간을 두고 '징벌적 대체복무제'(punitively long)라며 시정 권고했다.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인 히로카 쇼지는 11월 7일 국회에서 열린 '합리적인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도입 방향'이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가 현재까지 어떤 특별한 비율을 설정해오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1.5배라는 수치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유럽조차 흔들리고 있다. 2012년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는 키프로스의 인권상황에 대한 최종견해를 통해서 키프로스의 대체복무 기간이 여전히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2004년, 2008년의 권고와 2012년의 권고에서 대체복무 기간이 과도하다고 평가한 근거가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2008년까지는 키프로스의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의 2배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키프로스 정부는 국제사회의 권고를 반영해 2007년에 군 복무 기간을 24개월로 단축하면서 대체복무 기간 역시 34개월로 줄였다. 그러나 2012년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는 키프로스의 대체복무 기간 자체의 길이가 거의 3년에 가깝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키프로스의 대체복무 기간은 군 복무 기간보다 1.5배 이내(약 1.4배)이지만 절대적인 복무기간이 길다면 대체복무자들이 경제적 활동을 영위할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1.5배 같은 수치로 확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대체복무제 논의는 마치 이러한 수치가 인권의 최전선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든다.

징벌적인 조건이 아니어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시민단체들이 1.5배라는 수치를 방어하기 위해서 역량을 모으는 동안 정작 대체복무제 도입의 취지는 희미해지고 있다. 

유엔에서 대체복무제 운용과 관련해서 명시한 기준은 존재한다. 그것은 '징벌적인 조건이 아니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러한 기준은 '1.5배 이내면 인권보장이 된 것이고 2배면 규약위반이라는 식'의 사법적 접근이 쉽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면 이는 대체복무 기간만이 아니라 복무여건, 복무 분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충족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복무 간의 사회적 지위가 동등하다는 원칙이다. 

1.5배라는 수치를 '마지노선'이라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인권의 최저선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 숫자는 애초의 취지와 다르게 마치 고정적인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국가인권위에서 대체복무 기간은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하면 언론은 이를 '국가인권위 1.5배 바람직'과 같은 제목으로 보도한다. 1.5배라는 수치가 마치 합리적인 기준처럼 알려졌다. 

그 결과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엉뚱한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1.5배라는 명시적 합의가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1.5배냐 아니냐'란 프레임은 이 질문과 함께 짜였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신임 위원장이 "'명시적 합의'가 있다"고 답한 순간 이 프레임을 덥석 문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명시적 합의가 있다'라고 즉각 반박하고 나선 점은 아쉽다. 앞서 언급했듯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1.5배라는 기준은 명시된 바가 없다. 유럽 사회헌장을 한국에서 강제력 있는 국제인권기준이라 보기도 어렵다. 이런 식의 싸움은 트집 잡기로 이어지기 쉽다. 

1.5배라는 기준이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보다 1.5배 긴 것도 마음이 안 놓이는데 대체복무가 군 복무와 동등하다는 원칙은 얼마나 이상적으로 보이겠는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1.5배라는 기준을 버리면 반대편을 설득하기가 곤란해진다고 말한다. 당장에 누가 군대에 가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걱정은 한국만 유별나게 겪는 진통이 아니라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운영해온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징벌적 대체복무제 안돼!"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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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 신청자가 급증하게 된 이유

하지만 병력 동원은 아르바이트 모집과 달라 급여나 근무환경 같은 조건에만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해외사례를 보면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정당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군 복무를 피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75년부터 1978년 사이에만 3500여 명의 징집대상자가 병역을 거부했다. 병역거부자가 이례적으로 급증한 이유는 인종차별정책과 나미비아 군사적인 점령 때문이었다. 병역거부는 국가가 군 복무자들을 공급받아서 확보한 물리력으로 부당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효과적인 저항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참이던 덴마크에서도 1968년부터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점을 보면 참전에 대한 겁 때문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시 군대에 들어간다고 해도 베트남에 파병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은 덴마크 정부가 베트남전 발발을 계기로 군비를 키우고 사회를 군사화하는 것에 반발했다. 베트남전이나 핵실험 등이 사회적 쟁점이 되었을 때 덴마크를 비롯한 대부분 유럽국가에서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1945년~1989년 매년 덴마크에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의 수
 1945년~1989년 매년 덴마크에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의 수
ⓒ 백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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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치적 결단은 이러한 시기에 필요하다. 덴마크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덴마크에서도 베트남전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을 인정해야 하는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수천 명 이상 나온 것은 정부에게도 부담이었다. 이 당시 대체복무가 군 복무에 비해서 부담이 더 큰 것도 아니었다. 덴마크의 대체복무 기간(22개월)은 군 복무 기간(16개월)의 1.5배였다. 하지만 대체복무자가 하루에 8시간씩 근무하는 반면 군 복무자는 밤에도 경계 근무를 서야 했다. 또한 대체복무자와 군 복무자는 같은 월급을 받았지만 대체복무자는 야간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군 복무의 부담이 더 무거웠다고 볼 수도 있다. 

1971년 갤럽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51%를 차지했지만, 병역거부자가 더는 증가하지 않도록 정부가 조처해야 한다는 응답 역시 51%를 차지했다. 1972년 여론조사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를 인정하는 응답자의 수는 종교적이나 평화주의적 이유를 인정하는 응답자의 수에 비해 적었다. (종교적 이유 52%, 평화주의적 이유 35%, 정치적 이유 19%) 

덴마크 정부는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신청을 인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냉전이 한참이던 당시 공산주의 국가들과 달리 시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몇 년간 매년 2천~4천 명의 징집대상자들이 병역을 거부했지만, 정부는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덴마크에서 병역거부자 수도 베트남전 이전 수준으로 감소했다. 

1990년 갤럽에 의해 다시 한번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덴마크 정부의 정책이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로 증가했으며, 정부가 병역거부자의 수가 증가하지 않도록 조처를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3%로 감소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었음에도 양심의 자유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덴마크 정부의 정치적 결단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1.5배냐 아니냐' 같은 부적절한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 국가를 내세우며 '단 한 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지지율 하락을 염려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군 복무 기간의 2배, 교정행정보조로 단일분야, 합숙 복무 등 정부에서 유력하게 검토하는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 역시 이런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사회에서 격리된 교도소에서 3년씩 합숙을 시키면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논란이 사라질까? 덴마크의 사례는 정부가 양심의 자유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할 때 대체복무제가 사회에서 더 잘 수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체복무자들을 사회에서 격리된 곳에서 합숙을 시킨다고 해서 군복무자들의 박탈감이 해소될 리도 없다. 병영 내 출퇴근제, 휴대폰 사용과 같은 군인권 정책에 대한 뉴스에는 일부 군필자들이 자신들이 복무할 때를 떠올리며 '군대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식의 비난 댓글을 다는 경우가 있다. 대체복무제를 이런 여론에 휩쓸려 설계한다면 누가 더 피해자인지만 경쟁하게 만들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대체복무와 군복무의 사회적 지위가 동등하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확인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대체복무 도입과 관련하여 '징벌적인 조건이 아니어야 한다'고 권고하는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결정된다. 

 

정부가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대체복무자들을 사회에서 3년씩 격리시키지 않아도 된다. 순전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고려해도 대체복무자들을 교도소에서 먹고 자게 하면서 행정보조를 시키는 것보다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복무하게 한다면 이러한 서비스가 필요한 집단을 새로운 지지층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산상 문제가 있어 합숙시설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면 출퇴근을 하되 복무기간을 5개월 정도 길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키프로스가 대체복무제를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두고 새롭게 논의를 하려면 '1.5배냐 2배냐'같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정부도 자신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복무제 역시 새로운 논의 위에서 설계되어야만 사회 속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연구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실태조사'의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태그:#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유엔, #병역, #사회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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