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KBS가 사내 각종 성비위 관련 상담과 조사를 전담하는 '성평등센터'를 개소했다. 성평등센터는 직장 내 성폭력, 성차별 관련 접수 처리와 피해자 보호와 지원, 상담을 맡게 된다. "공영방송 KBS 구성원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고, 방송 내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게 센터 설립 취지다. 

하지만 성평등 센터 개소 불과 4일 전인 지난 9일, KBS 2TV 일일드라마 <끝까지 사랑>은 공영방송 KBS가 미투와 성폭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2018년 11월 9일 방송된 KBS 드라마 <끝까지 사랑> 69회 중 한 장면.

2018년 11월 9일 방송된 KBS 드라마 <끝까지 사랑> 69회 중 한 장면. ⓒ KBS

 
이날 방송 내용은 이랬다. 장해리(이민지 분)는 청소 중인 박지훈(최성민 분)의 엉덩이를 툭 친다. 이를 본 박재동(한기웅 분)이 깜짝 놀라 "방금 뭐 한 거냐. 암만 남자 엉덩이래도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해리는 재동에게 가 엉덩이를 치며 "이랬다고 그러냐"고 말한다. 재동이 소리치자 해리는 문제의 대사를 말한다. "그럼 뭐, 미투라도 하든가."
 
이날 장면은 해리와 지훈이 재동 앞에서 친밀함을 과시하고, 이에 발끈하는 재동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굳이 이런 방법과 대사로 표현해야 했을까? 극의 몰입과 이해를 돕기는커녕, 정신이 번쩍 드는 대사였다. <끝까지 사랑>의 작가와 연출자가 '미투'와 '성추행'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투는 이제야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오랜 시간 억눌려온 외침이다. 피해자들이 실재하고 있고, 공소시효나 현행법의 허점으로 제대로 사법 처리조차 되기 어려운 사례가 태반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에 '2차 가해'로 응답하기 일쑤인 사회에서, 미투는 이렇게 가볍고 우스운 농담의 소재가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피해자의 절대다수인 여성을 가해자로 설정하고, 그 여성의 입으로 미투를 조롱하는 대사를 뱉게 한 설정은 그 의도까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방송 직후 SNS에 쏟아진 "내가 잘못 들었는줄 알았다", "미투가 농담거리인 줄 아느냐", "꼭 필요한 장면과 대사였는지 의문이 든다"는 반응은 절대 과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TV 드라마나 영화가 성폭력을 어떻게 다뤄왔을까. 손목 끌기, 기습 키스, 벽치기 등을 남성의 사랑 표현으로,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나쁜 짓 하는 높은 분들의 대화 배경으로 등장하는 룸살롱과 여성은 '늘 그런 것'으로 그려졌다. 미디어가 대중의 수준을 따른 것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이런 것들을 '익숙하게' 여기게 만든 부분도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최소한의 젠더 감수성과 성평등 의식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8년 11월 9일 방송된 KBS 드라마 <끝까지 사랑> 69회 중 한 장면.

2018년 11월 9일 방송된 KBS 드라마 <끝까지 사랑> 69회 중 한 장면. ⓒ KBS


구성원들의 젠더 감수성을 끌어 올려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성평등센터'까지 오픈한 KBS에서, 미투를 이렇게 다루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KBS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끝까지사랑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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