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KBO리그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화끈한 공격야구를 통해 롯데를 8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이 이끌었던 3년 동안 한 번도 빠짐 없이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지만 로이스터 감독 시절의 롯데는 3번의 가을야구에서 3승 9패로 부진했다. 포스트시즌에서 3년 연속 시리즈 승리를 하지 못한 롯데는 결국 2010 시즌이 끝난 후 로이스터 감독을 해임했다.

KBO리그의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은 2014년 두산 베어스를 맡았던 송일수 감독이었다. 같은 재일교포 출신이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김영덕, 김성근 감독과 달리 송일수 감독은 일본 국적을 가진 외국인 감독이다(일본명 이시야마 가즈히데). 201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던 두산은 송일수 감독이 재직한 2014년 6위로 추락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7년 동안 두산이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던 유일한 시즌이 바로 2014년이었다.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 베어스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 베어스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 번째 외국인 감독은 작년 SK 와이번스에 부임한 트레이 힐만 감독이다.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즈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감독을 역임한 힐만 감독은 부임 첫 해 SK를 가을야구로 복귀시켰고 올 시즌에는 드디어 SK를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미 올 시즌 종료 후 SK와의 이별을 선언한 힐만 감독은 이제 영원한 비룡군단의 '전설'로 남게 됐다.

일본 프로야구 우승1회 준우승 1회 기록 남기고 KBO리그 입성

메이저리그의 많은 감독들이 그렇듯 힐만 감독 역시 화려한 선수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5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빅리그는커녕 트리플A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마이너리그 3년 동안의 공식 경기 성적은 162경기 타율 .172 0홈런29타점에 불과했고 만24세에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힐만 감독이 선수생활에 미련을 두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현역 은퇴 후 클리블랜드의 스카우트로 입사한 힐만 감독은 1990년부터 뉴욕 양키스의 마이너리그팀 코치를 역임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지도자로 착실하게 경험을 쌓은 힐만 감독은 2003년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즈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힐만 감독이 니혼햄의 사령탑으로 부임할 당시 나이가 만 40세였는데 이는 당시 일본 프로야구 감독 중 최연소였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의 6차전 경기. 8년 만에 우승을 거둔 SK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트레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의 6차전 경기. 8년 만에 우승을 거둔 SK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트레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힐만 감독은 니혼햄이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이전한 2004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그리고 니혼햄은 2006년 2년 차 슈퍼 유망주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와 그 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에 선정된 좌완 야기 토모야, 한국야구팬들에게도 익숙한 간판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의 활약에 힘입어 창단 2번째 재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힐만 감독은 다르빗슈의 잠재력이 폭발한 2007 시즌에도 팀을 재팬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힐만 감독은 1945년 창단 후 60년 동안 일본시리즈 우승 1회, 준우승 2회에 그쳤던 전통적인 약체 니혼햄을 5년 동안 이끌면서 재팬시리즈 우승 1회와 준우승 1회의 성과를 만들었다. 힐만 감독이 일본에서 이룬 성과는 빅리그 구단들에게도 전달됐고 4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캔자스시티에서 힐만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현역 시절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던 힐만 감독 역시 이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빅리그에서 힐만 감독의 커리어는 썩 인상적이지 못했다. 캔자스시티는 2009년 사이 영 상을 수상한 잭 그레인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라는 최고의 영건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힐만 감독은 부임 3년째이던 2010년 캔자스시티가 12승 23패로 부진하자 시즌 도중에 해임됐다. 이후 힐만 감독은 LA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벤치코치로 재직하며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단점 보완 대신 장점 극대화 선택, 역대 첫 한일 프로야구 우승 감독 등극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의 6차전 경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과 선수들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는 의미가 담긴 수어로 인사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의 6차전 경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과 선수들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는 의미가 담긴 수어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빅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힐만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지 않은 야구팬들에게는 썩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따라서 힐만 감독이 작년 SK감독에 부임할 때만 해도 야구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니혼햄 시절 스몰볼을 통해 성공을 만들어낸 지도자였던 힐만 감독이기에 SK팬들은 그동안 팀의 약점이었던 세밀한 부분을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단점을 메우기보다는 SK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한동민, 김동엽, 정의윤 등 일발장타력을 가진 선수들을 중용하며 SK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홈런군단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힐만 감독의 추천으로 영입한 외국인 타자 대니 워스의 대체 선수로 들어온 제이미 로맥이 2017년 31홈런, 2018년 43홈런을 때려준 것은 힐만 감독의 '빅볼'을 더욱 빛나게 만든 요소였다. 

작년 234개의 팀 홈런으로 KBO리그 홈런 역사를 갈아치운 SK는 올해도 풀타임을 소화한 로맥과 40홈런 타자로 성장한 한동민을 앞세워 '홈런군단'의 위용을 과시했다. 마운드에서는 김광현과 메릴 켈리, 박종훈, 문승원을 선발로 고정하고 김태훈과 신재웅, 정영일, 윤희상, 서진용을 불펜으로 활용하며 확실한 분업화를 완성했다. 후반기 구위가 급격히 하락하며 고전한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는 가을야구에서 불펜으로 돌리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SK 감독을 맡은 2년 동안 정규시즌 5위와 2위를 기록한 힐만 감독은 포스트시즌 결과와 상관없이 내년 시즌 재계약이 매우 유력했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정규 시즌이 끝나기 직전 올 시즌을 끝으로 KBO리그를 떠난다고 자신의 거취를 일찌감치 밝혔다. 고령인 양친과 수술을 받은 아내의 건강 문제 때문이다. 그리고 SK 선수들은 떠나는 힐만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라는 최고의 작별 선물을 안기는데 성공했다.

선수든 지도자든 모든 스포츠인들은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길 원하지만 실제로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SK의 통산 4번째 우승을 만든 감독과 역대 최초의 한일 프로야구 우승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KBO리그를 떠나게 됐다. 물론 힐만 감독이 앞으로 KBO리그에 컴백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단기간에 SK라는 팀을 바꿔 놓은 '힐만 리더십'은 앞으로도 여러 구단들에 의해 벤치마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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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한국시리즈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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