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태일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 항거한 지 48년이 지났다. 지금 노동자의 현실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노동자의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비정규직노동자 1100만 시대다. 전교조는 법외노조다. 노조 할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지만 노동 현장에서 노동법은 그저 사문화된 법인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13개월 차에 발생하는 연차 급여를 주지 않으려는 위탁 업체와 11개월 마다 계약서를 썼던 씁쓰름한 기억이 있다. 4대 보험 가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만 일한다 말하고는 실제로는 한두 시간씩 일을 더 시키면서 근무 외 수당은 주지 않아도 일을 했던 기억도 있다.

최악의 일터는 몇 년 전 잠시 했던 텔레마케터였다. 장애인을 우대한다던 곳이었다. 3주 정도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기본급은 준다고 하더니 2일 차부터 현장에 투입됐다. 전화기와 헤드셋, 지역 상가 번호가 담긴 종이를 주었다.

무조건 전화를 걸어 카드 가입을 권유해 가입을 성사시켜야만 하는 일이었다. 빽빽하게 앉아 끊임없이 전화를 돌려야만 하는 일인데 팀장이라는 여자는 칸막이가 된 뒤쪽에 앉아 일일이 대화 내용을 감청했다.

팀장은 교육 시간에 잘 된 사례와 잘못된 사례 음성을 직접 들려주며 지적했다. 그것이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당시는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인 비정규직, 초단시간 노동 알바, 퀵 서비스, 택배 노동자, 게임업계 등은 노동자의 권리만이 아니라 인권도 보호받지 못한 채 극한 노동의 현장에서 제 몸을 깎아 먹으며 살고 있다.

그런 심각한 노동의 현장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정밀화로 그려낸 우리 시대 노도앚의 삶, 노동Orz
▲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정밀화로 그려낸 우리 시대 노도앚의 삶, 노동Orz
ⓒ 철수와영희

관련사진보기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철수와영희)는 한겨레 사회부 24시 팀 기자들이 2017년 12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직접 체험한 '균열 일터' 현장 기록이다.

24시간 풀가동 하는 주야 맞교대 제조업, 콜센터, 초단시간 노동, 배달대행업체, 게임업계 QA 등을 직접 취업해 온몸으로 겪은 체험담이다. <4천원인생>이라는 노동현장 기록에 이은 두 번째 노동현장 기록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올빼미 노동을 거부하며 '밤에는 잠 좀 자자'며 투쟁을 벌였다. 기계를 24시간 가동하면서 주야 맞교대 노동을 시켜 사고가 잦고 노동자들이 병들어 가기 때문이었다. 주야 맞교대 화장품 제조업 노동현장에 취업했던 고한솔 기자는 저녁이 있는 삶과 거리가 먼 노동자들의 삶을 이렇게 기록한다.
 
'언니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다 보니 장시간 야간 노동으로 내몰렸다. 이들은 '살아내기 위해 저임금을 장시간 노동으로 만회했다. 모든 시간은 '일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0~11시간씩, 주 52~55시간 노동에 주말 특근을 하면 주 66~78시간까지 초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다. 유행인 듯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는 시대지만, 아무도 언니들의 삶은 주목하지 않는다.' -45쪽
 
아래는 내가 잠시 했던 텔레마케터와 유사한 콜센터 상담원의 사례다. 이들은 두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셈이었다. 콜센터가 대부분 아웃소싱이기에 상품을 사는 고객과 콜센터를 아웃소싱한 업체까지 고객사가 된다. 때문에 애매한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은 콜센터 직원이다.
 
'고객들은 '홈쇼핑 직원인 네가 책임지라'며 콜센터 상담원인 내게 다그치지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틀렸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대부분 아웃소싱 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신세기 때문이다. '갑'인 원청이  빠진 자리에서 '을. 병, 정'인 고객과 콜센터 상담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목소리를 높여 다퉜다. 그 전쟁터에 승자는 없었다.'-116쪽
 
감정노동자들은 분노조절에 실패하면 우울증, 화병 등이 생기고 정신 건강이 무너져 내린다. 항상 폭언과 욕설에 노출되어 있고 폭언과 욕설을 들어도 전화를 끊어선 안 된다. 무조건 사과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우울증, 소화 장애, 하지정맥, 근육통, 성대 결절, 생리불순 등에 시달린다고 한다.

배달대행업체는 위탁계약을 맺은 업장에서 들어 온 배달 의뢰만 대행하는 곳이다.
목숨을 위협받으며 시간을 다퉈 질주해야 하는 배달대행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산업재해에도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사고가 나면 고스란히 본인이 책임을 져야한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인데 배달이 지연되면 음식값까지 물어내야 하니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사투를 벌이는 셈이다.
 
'콜을 많이 잡아 배달이 지연되면 기사 개인이 변상해야 한다. '죽음의 전투콜'은 건당 성과급과 쉴 새 없는 질주를 강요하는 플랫폼 환경이 빚어낸 괴물이었다.' - 247쪽.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간다. 자본가나 기업이 모든 법망을 피해 최저임금만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노동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살기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갈아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다하고 말 것이다.   

전태일이 꿈꾸던 '노동자가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노동자가 노조로 단결해서 노동법이 지켜지고 노동자도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글 노현웅. 고한솔. 신민정. 황금비. 장수경. 임재우. 그림 이재임/ 철수와영희/17,000원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 정밀화로 그려낸 우리 시대 노동자의 삶, 노동orz

노현웅 외 지음, 이재임 그림, 철수와영희(2018)


태그:#노동법, #근로기준법, #야간 수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