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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교사. 세워진 지 45년이나 지나서 새 교사를 짓는 것이 이 곳 학생들의 꿈이다.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교사. 세워진 지 45년이나 지나서 새 교사를 짓는 것이 이 곳 학생들의 꿈이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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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들이 걸어 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제는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일본 중부지역의 중심도시인 나고야에서 전철을 타고 20분. 역에서 내려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그곳에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가 있다. 축구선수 정대세가 졸업한 곳이기도 한 이 학교에서11일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조선학교지만, 이날 만큼은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동포들이 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기 위해 전국에서 민족교육운동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가 생겨났다. 1948년 중학교를 시작으로 기나긴 민족교육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념식전에 이어서 '70년의 혈맥을 이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기념공연에서는 학생들이 노래와 춤, 사물놀이 등을 통해 70년 역사를 뒤돌아봤다.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의 계속되는 차별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밝게 민족교육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특히 중급부 무용부들이 연기한 무용 '제자리~단 하나의 이역의 결상'이라는 제목의 공연은 작고 낡은 걸상 하나의 이야기에 억압과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온 민족교육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저항의 역사를 담아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기념공연. 중급부 무용부의 '제자리~단 하나의 이역의 걸상'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기념공연. 중급부 무용부의 "제자리~단 하나의 이역의 걸상"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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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운동장에서는 기념축전이 진행되었다. 기숙사 건물 앞 쪽에 설치된 무대를 중심으로 운동장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참석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양 옆으로는 수십 개의 먹거리 장터가 열려 커다란 잔치 마당이 되었다.

기념행사에 참석한 학부모를 비롯한 방문객들은 먹거리 장터에서 푸짐한 먹거리를 사 가지고 와서 담소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동시에 무대 중앙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때로는 감동, 때로운 웃음으로 시종 들썩들썩한 분위기에서 70년 역사를 축하하는 잔치가 무르익어갔다.

30여 년 전에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자녀들도 지금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두 중년의 남성도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며 자신들이 학교를 다녔던 때를 회상했다. 자신들의 시대와 지금의 학교 분위기를 비교할 때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정말 많이 밝아진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흔히 북한이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를 인정하면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심해졌다고 알려지긴 했으나, 그 문제가 있기 훨씬 전부터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적대감은 아주 심했다. 그런 배경 탓에 학교도 '전투 모드'에 있는 것 같아 지금보다는 분위기가 훨씬 무거웠다고 한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한국 국적을, 한 사람은 조선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흔히 조선학교니까 조선적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지금 있는 학생 중에 한국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훨씬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일본 국적인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조국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지만 조선학교에서는 이미 국적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어우러져 민족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족교육을 지켜온 역사, 차별에 싸워온 역사
 
기념축전이 진행된 운동장. 참석자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기념축전이 진행된 운동장. 참석자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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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전에서 조경환 교장은 인사말을 통해 새로운 민족교육 100년의 역사를 향해 힘차게 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당면 과제로 2022년까지 새로운 교사를 완성하는 것을 내세웠다. 아이치조선중고급학교는48년 나고야 시내에 개교를 한 이래 수차례 이전 한 뒤에 61년에 지금의 부지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의 교사는 지난 73년에 지어져 이미 45년이 지났지만, 열악한 학교 재정상황 때문에 아이들이 낡은 교사에서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오래 전부터 새 교사를 짓는 것이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의 숙원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호의적이지 않다.

일본 정부가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 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 사립학교에게 주는 보조금도 일반 일본학교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 지원되는 등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교사를 짓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학부모들은 차별적 시선과 더불어, 정부와 지자체의 불평등한 정책으로 일반 학교에 비해 훨씬 더 큰 경제적 부담까지 지고 있는 것이다.

흥겨웠던 잔치도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마무리하게 되고, 마지막 순서로 조선학교의 잔치에서 마무리로 빠질 수 없는 통일열차 놀이가 시작되었다. 앞사람과 뒷사람이 서로의 허리를 잡고 운동장을 돌며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부르는 통일열차 놀이는 조선학교의 모임에서는 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순서이다. 조국을 떠나 차별과 억압을 받고 살면서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면서 하루 빨리 조국의 하나됨을 기원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서. 조국 통일의 염원을 담은 통일열차 놀이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마지막 순서. 조국 통일의 염원을 담은 통일열차 놀이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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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70년의 역사는 이역에서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한 역사이면서, 그것을 억압하는 일본 사회에 맞서 싸워온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가 국가 사이의 대립관계와 정치적 이유로 아이들에게 보장된 배움의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된다. 그것만이 그들이 말하는 진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일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남북의 이념대립으로 조선학교를 부정해왔던 한국 사회도 새로운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맞아 편견을 벗어야 한다. 조선학교를 당당한 민족구성원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70년의 혈맥이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100년, 200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조선학교를 상상해본다.
 
전교생 합창 '조국의 사랑으로 우리 자라네'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전교생 합창 "조국의 사랑으로 우리 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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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에서 '활약하는 졸업생'이라는 곳에 이 학교 출신인 축구선수 정대세의 소개도 들어있다.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사진전에서 "활약하는 졸업생"이라는 곳에 이 학교 출신인 축구선수 정대세의 소개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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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연. 고급부 무용부의 '보루-모진 광풍에도 끄떡없이'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기념공연. 고급부 무용부의 "보루-모진 광풍에도 끄떡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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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진행된 기념축전 중 중고급부의 댄스공연. 우스꽝스런 율동으로 이날 공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운동장에서 진행된 기념축전 중 중고급부의 댄스공연. 우스꽝스런 율동으로 이날 공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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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연. 고급부의 '첫걸음'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기념공연. 고급부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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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학교의 역사가 담짐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운동장에서 학교의 역사가 담짐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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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창립 70주년 행사,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 #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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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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