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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인 우영갤러리에 이종옥여사의 민화작품 15점과 나상기작가의 사진작품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작가 김덕태교수는 '여백이 꽉 차는 작품'이라 평한다.
▲ 나상기이종옥전시회 전시장인 우영갤러리에 이종옥여사의 민화작품 15점과 나상기작가의 사진작품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작가 김덕태교수는 "여백이 꽉 차는 작품"이라 평한다.
ⓒ 김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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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가 매일 아침 아름다운 꽃사진을 배달해 주었다. 은빛으로 물든 흰머리에 두터운 안경이 품위를 더해 주었다. 가끔 청바지에 중절모자를 쓰고 방금 찬바람에 얼어붙은 얼굴의 초췌한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아마 야외에서 사진을 찍고 올 때였다.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그렇게 꽃 배달을 멈추지 않던 노신사가 가을 어느 날 초대장을 하나 내밀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메타쉐콰이어길 사진에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놀라움으로 뭉클해져 노신사를 바라보았다. 노신사는 70세였다.

꽃 사진가로 돌아온 민주화운동가
 
재야인사에서 재야사진가로 나상기 출판기념회에서 전 기독교방송 사장이었던 권호경 목사의 축사, 출판기념회는 전국에서 모여든 재야인사들로 자리를 꽉 채웠다.
▲ 권호경목사의 축사 재야인사에서 재야사진가로 나상기 출판기념회에서 전 기독교방송 사장이었던 권호경 목사의 축사, 출판기념회는 전국에서 모여든 재야인사들로 자리를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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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 출판기념회와 동시에 '나상기 이종옥 전시회, 사진이랑 민화랑' 전시회가 지난 9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금남로1가 우영갤러리에서 열렸다. 벌써 언론은 '재야운동가에서 재야사진가로'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출판기념식은 서경원, 배종열, 이강, 김상윤, 정찬용 등 그야말로 재야인사들로 강당이 가득 채워졌다.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인 권호경목사(전 CBS사장)는 축사에서 "우리는 항상 함께하는 동지"였다며 73년 부활절예배 내란음모사건때 나상기와 얽힌 이야기를 최초로 공개했다.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이철 상임대표(전 국회의원)는 "나상기, 변절했느냐? 작품이 놀랍다"며 유머러스한 축하를 던졌다.

김준태 시인은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알리라"는 시인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고희를 맞아 사진과 시를 통해 아름다운 자신의 노래와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것은 실로 감동을 준다"는 축사를 하며 지리산 화엄사 홍매를 찍은 나상기의 사진과 시를 낭송했다. 김상윤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책의 축사에서 이들 노부부의 전시에 부쳐 "아하, 저들이 진짜 기품있게 늙어가는구나!"라고 압축 표현했다.

그런데 재야운동가야 그렇지만 재야사진가란 뭐람, 그 평생 재야딱지가 떨어지지 않는거야? 나는 차라리 "꽃 사진가로 돌아 온 민주화운동가"라고 제목을 정해 주고 싶다.

나상기가 누구야?
  
나상기. 이제 노신사가 된 그를 뭐라고 불러줄까? 재야운동가, 고 김근태 선생님과 함께 했던 정치인, 농민운동이론가, 목사, 마사회와 농어촌공사 이사... 그를 따라 다녔던 이름이다. 나야 오랜 세월 박힌 '나 선배님'이 제일 편하지만 앞으론 '나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할 생각을 하니 조금 어색함이 몰려온다. 그래도 습관 되게 지금부터 작가호칭으로 불러보련다. 

그와 만난 것은 세 차례의 다른 차원에서였다.

1988년쯤 처음 만났다. 첫 번째 인연은 노동과 농민운동가로 만났다. 그때 나는 노동현장에서 나와 노동상담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서울에서 고향 광주로 내려 와 농민문제연구소를 운영하며 농민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노동연구소는 이양현 이사장에 김상윤, 민동곤, 정담, 김나복 등의 선배들이 이사로 참여해 후원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나상기 농민문제소장도 이사가 되었다. 80년대 광주전남에서는 노동운동보다 농민운동이 더 셌다. 운동론도 더 선진적이어 그의 정연하고 논리적인 운동론에 많은 지도를 받았다. 

두 번째 인연은 재야 운동단체에서였다. 91년 3당합당으로 민자당이 출현하자 87년 이후 분열했던 민주세력의 단합이 필요했다. 광주전남에서는 '민주연합'이 그 역할을 했다. 나상기 작가는 당시 민주연합 사무처장으로 광주전남재야운동을 조직하고 이끌었다. 나도 그때 노동문제만 다룰 수 없어 정책실에 한발 걸쳤다가 92년에는 그와 함께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을 창립하는 주역이 되었다.

고 김근태 의장과 함께한 재야정치인

세 번째 인연은 정치현장에서였다. 당시 우리는 탁월한 재야운동가인 김근태 의장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러나 90년대 사회주의의 붕괴와 퇴조하는 운동에서 더 이상 재야운동으로 그칠 수 없었다.

김근태 의장은 95년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를 만들어 정치참여를 결행하게 된다. 김근태 의장과 함께했던 그도 즉각 정동년, 명노근 선생을 중심으로 송재형, 남평오 등 지역선후배들과 함께 광주전남회의 지역조직을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대중 총재가 주도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김근태 의장과 함께 참여해 나상기작가는 국회의원에 도전해 실패했지만 끝까지 김근태 의장과 함께하는 의리의 재야정치인으로 함께 했다.

어쩌면 나상기의 삶은 바로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기독학생운동에 참여해 민청학련에 참여했고, 기독교동민회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농민문제연구소장으로 활동했고, 광주재야연합단체인 민주연합 사무처장이 되었다. 김근태 의장과 통일시대 국민회의와 한반도재단에서 민주정치를 꿈꾸었고, 농어촌공사 등 공공기관의 임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은퇴하여 지역 원로반열에 나가 민주평화광주회의 임원인 나상기. 그는 역시 재야운동가이자 재야정치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가 목사였다니!

그런데 나상기라는 사람이 있는 자리엔 즐거움이 있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약간 다크한 농담사이로 시사평론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자리 때가 되면 동료 후배들이 '나 목사 설교 시작한다'라고 농을 건넨다. 출판기념회에서 축가를 한 오정묵(전 광주MBC PD)은 나상기 선배가 하도 입담이 좋아 당시 후배들은 '나사기'로 불렀다고 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평이 나상기는 논리정연한 사람이고 입담 좋다는 것이었다.

실제 한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여 목사고시를 합격한 (준)목사이나 교회목사를 하지 않기에 목사라는 종교인 대접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러나 재야에선 그가 재야목사로 목회활동을 하고 있고, 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타락한 현실에서 참 목회가 아닌가라고 말한다.

부인은 암투병 이겨내고 민화를 그렸다

이번 전시 초대장엔 나상기란 이름만 걸려 있는게 아니다. 나상기 시사집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나상기 이종옥 전시회라는 이름이 걸렸다. 이종옥은 누구일까? 동료사진작가일까? 아니다. 나상기 작가의 동료이자 부인이자 현재는 민화를 그리는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농민운동 여성운동 최근에는 마을 협동조합 운동까지 하면서 같은 재야인사이지만 살림살이와 자녀양육 등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해 온 그 가족의 재야인사인 이종옥씨는 요새 민화 세계에 푹 빠져있다. 그리고 암투병중 애써 그려왔던 민화 15점을 이번 전시회에 같이 전시한다. 박용수 교수는 '나상기가 일반작가라면 이종옥은 전문작가'라며 작품에 호평을 보냈다.

이제 전시회를 하느니만큼 나상기의 전시작품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아야겠다.
나상기작가의 사진세계는 전체적으로 자연을 다루지만 그 중 꽃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한 30점의 작품은 5년간 그가 SNS 등을 통해 올린 풍경과 꽃을 담은 작품들이다. 그는 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는 주위가 아는 효자였다. 노모가 막바지에 치매를 앓아 직접 돌봐야 했다. 바깥일을 줄이고 노모를 돌보고 지내다 돌아가시게 되자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때 사진이 다가왔다고 한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5년쯤 되니 60대 중반에 그는 자연과 꽃을 찍지만 사실은 자신의 내면을 사진에 찍는 일을 하게 된 듯하다.

그의 인생이 꽃이네
 
나상기 이종옥 부부가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출판기념회와 <사진이랑 민화랑> 전시회에 초대장을 보냈다.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 출판기념및전시회초대장 나상기 이종옥 부부가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출판기념회와 <사진이랑 민화랑> 전시회에 초대장을 보냈다.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 김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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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꽃과 꽃말들이 가진 의미를 더듬으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농촌의 풍경에서 이 땅 농민의 아픔과 농민운동가였던 자신을 보며 눈물 짓는다. 이루지 못한 정치의 꿈을 깊고 깊은 자연의 풍경에서 녹여 버린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단지 풍경과 꽃이 아닌 스스로 재야인사라 불렀던 작가 내면의 재야인의 아픔과 사랑, 꿈과 좌절의 내면을 담아 낸 것이다.

그는 "기다림에 그리움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고, 세상의 해방을 그리워하며, 자신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신을 기다린다"며 자신의 책에서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이라는 작품세계를 말한다.

전 한국사진작가협회 부이사장이었던 김덕태 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해 '매섭고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다'고 평하며 '민들레홀씨'라는 작품에서 '민들레 멀리멀리 날아서 그리운 평화의 꽃으로 봄날에 다시 만나요'라는 시가 작가가 그리는 작품세계를 말해 준다고 했다.

꽃이어도 같은 꽃이 아니다. 여느 사진가와 다른 그의 앵글의 차이는 거기에서 발견된다. 그가 사진과 함께 담아 낸 시는 그 일부를 표현하고 있다. 익어가는 사진기술과 아마추어같지만 진정성을 담아 낸 인생의 성찰, 아마 인생과 자연을 담는 그의 앵글의 깊이는 더욱 심오해 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시니어 인생 롤 모델 예고

칠순, 고희에 재야인사에서 재야사진가로 돌아 온 나상기. 그의 전환과 혁신을 존경을 담아 축하의 박수 보낸다. 2모작 3모작을 꿈꾸는 시니어들의 새로운 인생 모델이 될 것도 같다. 그래서 그의 전시회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다. 재야세계에서 사는 분들 또 한때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가신 분들, 새 인생을 꿈꾸는 시니어분들 많이 와 관람과 격려를 바란다. 아마 여기저기서 강의요청이 들어올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전시회는 이번 15일까지 광주 금남로 1가 전일빌딩옆 우영갤러리에서 열린다. 동연 출판에서 간행한 그의 책은 전시회나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태그:#나상기, #이종옥, #사진이랑민화랑전시회, #기다림의꽃그리움의풍경, #김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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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GIST) 대외부총장, 전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참여자치21 대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장 광주혁신클러스터추진단장 기업주치의센터장 광주광역시장 특보 지역미래연구원장등을 맡았다. <창조도시><김영집의 고전담론>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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