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이 재회하는 장면이다.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이 재회하는 장면이다. ⓒ 영화 공식 스틸컷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 그런 존재는 곰돌이 푸다. 말도 제대로 못하던 3살짜리 꼬맹이였지만 부모님이 사주신 곰 인형을 하루 종일 끌어안고 있었다. 잠이 들 때 푸가 옆에 없으면 다시 찾아 줄 때까지 울고불고 난리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이 떠오는 추억은 나처럼 인형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진이나 장난감일 수도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다시 만난 푸와 친구들
 
영화는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숲 속을 떠나게 된 어린 로빈은 마지막으로 숲 속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특히나 더 친했던 곰돌이 푸와는 단둘이 "절대 널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런데 30년의 시간이 지날 동안 로빈과 푸는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로빈은 학교도 다녔고 전쟁터에 나가기도 했으며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친절한 아내와 어린 시절 로빈이 푸과 함께 뛰놀던 때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의 딸 매들린도 있다. 매들린은 그 시절의 로빈이 그랬듯이 뛰어놀기를 좋아하고 동화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매일 밤 아빠 로빈이 동화책을 읽어주며 놀아주기를 원했지만 로빈은 회사 일을 하느라 주말에도 같이 여행을 못 갈 정도였다.
 
한창 회사 일에 치이던 로빈 앞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로빈이 있는 곳은 푸의 숲속과 아주 멀리 떨어진 런던이다. 그런데 그의 앞에 푸가 나타났다. 푸는 소년에서 아저씨가 된 로빈의 얼굴을 보자마자 "크리스토퍼 로빈!"이라고 외쳤다. 그 때부터 로빈은 다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로빈의 딸 매들린은 숲속 친구들과 몰래 아빠를 기쁘게 할 작전을 펼친다.
 
다시 만나서 행복한데 왜 씁쓸하지
 
영화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푸와 친구들을 만나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푸의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식에 영화 개봉 날 바로 달려갔었는데 영화 내내 푸의 대사에 얻어맞은 듯 했다. 푸는 빨간 풍선을 보고 로빈을 향해 "풍선을 보면 행복하지 않아?"라고 이야기 했고 길을 잃었다는 로빈을 향해 "그래서 내가 널 찾았잖아"라는 따뜻한 말을 했다. 푸는 느긋하고 솔직한 성격이다. 사실 푸가 로빈을 위로 해주기 위해 이런 말들을 고민해서 뱉은 건 아닐 것 같다. 단지 푸가 원래 배려심 많고 모든 걸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런 대사들이 나왔다.
 
로빈이 아이에서 중년의 어른이 되는 동안 푸의 마음과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변함없이 바보 같을 정도로 느긋하고 평온한 푸를 보면서 로빈은 변한 건 자신임을 깨닫고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물론 나를 포함한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본 푸를 어른이 돼서 다시 보니 로빈처럼 한동안 멍해졌을 거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 내내 푸의 느긋한 대사 보다는 "바쁘다" "그러면 안 된다"는 로빈의 말에 더 공감이 됐다. 나였어도 푸한테 저런 '어른같은 말'들을 했을 것 같아서 더 슬펐다.
 
그림에서 실사로 찾아온 푸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속 숲속 친구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속 숲속 친구들. ⓒ 영화 공식 스틸컷

 

영화는 곰돌이 푸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그대로 담아냈다. 우선 '실사화'를 통해 봉제 인형느낌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곰돌이 푸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때까지 본 푸가 애니메이션 속 그림이었다면 다시 만난 푸는 손에 닿을 것 같은 인형의 모습이었다. 다만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키도 커지고 얼굴도 변했듯이 푸와 친구들도 조금씩 달라졌다. 목소리가 탁해졌고 인형 털의 색도 바랬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건 하나, 로빈과 친구들은 아직도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한다.
 
위니 더 푸 팬들을 위한 깨알 재미
 
영화는 '위니 더 푸'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크리스토퍼 로빈과 숲 속 친구들은 영화 제목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처럼 긴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났는데, 변함없는 점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점들로 하여금 푸를 다시 만난 관객에게 깨알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재미들 중에 '로빈이 숲속에 찾아올 때는 날이 화창하다'는 기존 설정이 있다. 이에 따라 로빈이 기숙학교로 떠난 뒤부터 숲속은 안개로 가득 찼고 푸는 친구들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결국 어린 시절 로빈이 항상 그랬듯이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한 번 어른 로빈이 숲속을 찾은 것이다.
 
 어린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과 곰돌이 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린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과 곰돌이 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영화 공식 스틸컷

    
작은 소품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특히 푸의 상징인 '빨간 스웨터'를 통해 로빈의 변화 과정을 표현했다. 이 스웨터는 푸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상징하는데 극 초반 딱딱한 정장만 입고 나왔던 로빈이 다시 숲 속을 찾아 친구들을 만난 뒤 점점 옷차림이 편해진다. 그러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마침내 푸처럼 빨간 스웨터를 입고 나와 감동을 준다.
 
우리 모두는 어른 로빈과 비슷할지도
 
사실 영화 초반 로빈의 모습은 이 사람이 로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변해있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그렸던 푸와 친구들 그림을 외면하고 닫아버리기까지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참 안타까우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화가 났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내 방에 있는 푸 인형을 잠시 치웠을 때가 있었고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의 물건을 다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로빈처럼 바쁘다거나 이제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했었다.
 
어렸을 때는 푸가 하는 대사보다는 그저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모습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린이 돼서 푸를 다시 보니 귀여운 모습을 물론이고, 푸의 느긋함과 따뜻함에 더 빠져들었다. 비록 영화가 끝난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어른 크리스토퍼 로빈처럼 살고 있지만 영화 보는 그 순간만큼은 나도 어린 크리스퍼터 로빈의 마음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옆에는 푸 인형들이 누워있다. 항상 푸가 옆에 있어서 내 동심은 아직 그대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계기로 우리 집 푸들을, 나의 어린 시절을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빈에게 푸와 친구들이 어린 시절의 일부이듯이 나에게도 푸가 나의 일부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어린 시절, 그걸 따뜻하게 떠올리게 해준 작품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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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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