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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충사 옛 사당 앞 소나무 숲.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과 유팽로 등을 기리고 있다.
 포충사 옛 사당 앞 소나무 숲.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과 유팽로 등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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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이 왁실덕실하다. 평소 주말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봤다. 마당극을 하고 있다. 마당도 지금껏 봤던 것과 사뭇 다르다. 배우들이 관객들 사이에 서서 연극을 하고 있다. 의병장 고경명을 주제로 한 '이머시브 공연'이다.

지난 3일, '괘고정수'를 찾아가는 길에 들른 포충사에서다. 안내장을 살펴보니 '문화가 있는 날' 행사다. '대촌에서 향약과 놀자'를 주제로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원산동 대촌마을에 있는 포충사는 학창 시절 소풍 장소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부자와 유팽로 등을 모신 사당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건재했다.

옛 사당과 동재, 서재가 잘 보존돼 있다. 보기 드문 충노비도 있다. 고경명의 집안하인이었던 봉이와 귀인을 기리는 비석이다. 고경명의 장남 종후를 따라 진주성전투에 참가해 순절했다.
  
 포충사의 옛 사당. 새로 지어진 사당이 있지만,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포충사의 옛 사당. 새로 지어진 사당이 있지만,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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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충사에 세워진 충노비. 고경명의 집안하인이었던 봉이와 귀인을 기리는 비석이다.
 포충사에 세워진 충노비. 고경명의 집안하인이었던 봉이와 귀인을 기리는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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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충사가 자리한 대촌은 공동체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다. 포충사는 항일 의병정신이, 양과동정은 향약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가까운 칠석동의 고싸움놀이는 공동체의 단합과 상생을 담고 있다.

'괘고정수'가 있는 원산동은 광주향약이 시작된 곳이다. 필문 이선제와 형조참판을 지낸 김문발에 의해서다. 이선제의 문집 〈수암지〉에 실려 있다. 부모에 불순하고, 형제끼리 싸우고, 가족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연장자를 능멸하는 행위를 가장 무겁게 벌했다. 향촌의 질서를 깨트리는 자를 그 다음 벌로 다스렸다.

향약으로 고을의 풍속을 바로잡는 기틀을 마련한 이선제(1390~1453)는 광산 이씨 상서공파의 5세손이다. 30년 넘게 관직생활을 하며 학자이자 관료, 사관으로 살았다. 〈태종실록〉과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다. 강등됐던 무진군에서 광주목으로 복귀시킨 것도 그였다.
  
 포충사의 옛 사당. 새로운 사당과 별개로 동재와 서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포충사의 옛 사당. 새로운 사당과 별개로 동재와 서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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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선제는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인물이었다. 그의 5대손인 이발과 이길이 기축옥사에 연루된 탓이다. 기축옥사는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을 일컫는다. 사림파를 없앨 목적으로 송강 정철이 꾸민 역모 사건이다. 이발과 이길이 처형되면서 이선제의 가문도 사라지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

이선제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20여 년 전이다. 1997년, 청자에 새겨진 그의 묘지(墓誌)가 일본으로 몰래 반출되려다 적발되면서다. 김해공항의 양맹준 문화재감정관에 의해 필사됐다. 무덤 안이나 주변에 묻는 묘지에는 묻힌 사람의 이름과 나고 죽은 때, 행적, 자손의 이름 등이 적혀 있다.
  
 이선제 묘지의 앞면. 보물 제1993호로 지정돼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이다.
 이선제 묘지의 앞면. 보물 제1993호로 지정돼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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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제 묘지의 뒷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돌아왔다.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선제 묘지의 뒷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돌아왔다.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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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발견된 묘지에는 '분청사기 상감 경태 5년명 이선제 묘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1454년에 글씨와 문양을 새긴 분청사기의 이선제 묘지였다. 양 감정관은 "내 목이 칼이 들어와도 반출할 수 없다"며 막아냈다.

묘지는 몰래 파낸 유물이었다. 아무도 도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당연히 도굴 신고도 없었다. 압류할 근거를 찾지 못한 양 감정관은 미술을 전공한 다른 감정관에게 실측도를 그리게 했다.

밀매단은 달포 뒤 김포공항의 세관원을 매수해 밀반출하는데 성공했다. 광산 이씨 문중은 '눈 먼 김포세관'이란 제목으로 묘지가 반출됐다는 신문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문중에서 묘소로 달려갔지만, 도굴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도굴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최근 이 묘지가 불법반출된 것임을 확인한 일본측 소장자의 기증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지난 6월 보물 제1993호로 지정됐다. 첫 번째 밀반출을 저지한 양 감정관이 그려놓은 실측도와 제보조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묘지는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충효동 도요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김희태 문화재 전문위원의 얘기다.
  
 필문 이선제의 무덤. 그의 태자리인 광주광역시 원산동에 있다.
 필문 이선제의 무덤. 그의 태자리인 광주광역시 원산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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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제 부조묘. 정면 3칸, 정면 1칸의 맞배집으로 이뤄져 있다.
 이선제 부조묘. 정면 3칸, 정면 1칸의 맞배집으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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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제의 흔적을 광주향약의 발상지인 대촌에서 찾을 수 있다. 포충사 뒤편 원산동은 그가 나고 자란 마을이다. 그의 부조묘(不祧廟)와 묘지가 여기에 있다. 부조묘는 불천위(不遷位)를 모시는 사당이다. 신위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고, 임금이 허락한 신주를 모신다.

이선제 부조묘는 정면 3칸, 정면 1칸의 맞배집으로 이뤄져 있다. 높게 지은 3개의 대문과 기와를 얹은 담에 둘러싸여 있다. 부조묘 뒷산 언덕에 묘비가 세워진 묘도 있다.
  
 필문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수령 600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선제가 가문의 번영을 바라면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필문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수령 600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선제가 가문의 번영을 바라면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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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수령 600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수령 600살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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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도 마을에 있다. 수령 600살로 추정된다. 이선제가 가문의 번영을 바라면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쇠락할 것이니, 관리를 잘 하라"고 당부했다. 나무는 정자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랐다. 자연스레 마을사람들의 쉼터가 됐다.

후손들은 집안에서 급제자가 나오면, 이 나무 아래에서 축하연을 펼쳤다. 이선제의 두 아들 시원과 형원의 급제 때 큰 잔치를 했다. 형원의 아들 달손, 달손의 아들 공인, 공인의 아들 중호, 중호의 두 아들 발과 길이 대를 이었다. 그때마다 이 나무에 급제자의 이름과 북을 걸어놓고 잔치를 벌였다. 가문의 영광을 알리는 북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무 아래 쉼터를 '괘고정(掛鼓亭)'이라 부른 이유다.

하지만 멸문지화를 당한 뒤부터 나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서서히 말라 죽어갔다. 300년이 지나 이발과 이길 형제의 억울함이 밝혀지자, 나무도 생기를 되찾았다. 새 잎이 하나씩 다시 돋아나며 가문의 중흥을 예고했다고 전해진다.

괘고정수는 보기 드물게 정자의 이름을 지닌 나무다.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나무 수(樹) 자를 넣어 정자가 아니고, 나무임을 표시했다.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한눈에 봐도 고목임을 알 수 있다. 수령 600살로 추정된다.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한눈에 봐도 고목임을 알 수 있다. 수령 600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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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나무는 항균작용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 한 모금을 청한 왕건에게 오씨 부인이 물 위에 띄워 준 것도 버들잎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항균물질인 피톤치드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두통약(아스피린)의 원료로 쓰인다. 이선제도 왕버들나무의 가치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호를 딴 도로 이름도 광주시내에 있다. 서방사거리에서 산수오거리, 지산사거리, 조선대학교 정문을 거쳐 남광주사거리에 이르는 '필문로'다. 총 길이 4200m에 이른다.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집안에서 급제자가 나오면, 이 나무에 북을 걸어두고 축하연을 벌였다고 '괘고정수'로 불린다.
 이선제가 심은 왕버들나무. 집안에서 급제자가 나오면, 이 나무에 북을 걸어두고 축하연을 벌였다고 "괘고정수"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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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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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