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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맛이 까탈스럽고 고집스럽다고?

지난번 기사에서 '기무치'에 충격 받고 일본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악전고투 한 얘기를 썼더니, 그날 밤 서울에 있는 집사람이 전화를 걸어 깔깔거리며 속을 긁어놓는다.

"이번 기사 댓글에서 가장 재밌는 건 '뭔 입맛이 저리 까탈스럽고 고집스럽냐. 입맛 적응력 제로네'였어. 히힛."

평소에 자기한테 까탈스럽게 굴더니 참 고소하다는 투다.

매우 억울하고 또 억울한 바이다. 평소 자기가 해주는 건 맛있어도 맛없어도 가리지 않고 뭐든지 잘 해치워줬는데, 내가 왜 이런 소릴 들어야 하나.

한 일본인 페북 친구는 마치 자신이 미안하다는 듯 "일본의 슈퍼에서는 한국에서 수입된 김치를 많이 팔고 있는데, 그것도 안 될까요?"라고 물어본다. 내가 너무 징징거렸나, 갑자기 죄 없는 일본인들한테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안 그래도 오늘은 그 '수입된 김치' 사러 간 얘길 할 차례다.

도쿄에 도착해 열흘 쯤 지났을까, 그 때도 집사람이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인터넷으로 좀 찾아봤는데, 도쿄에 신오쿠보라는 데가 있대. 거기 한국 슈퍼에 가면 한국 식품 별거 별거 다 판다네. 김치도 판다니까 이번 주말에 한번 가봐."

맞다, 도쿄에 한국 음식 파는 거리가 있다는 기사를 읽어본 것 같다. 왜 거기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 인터넷신문 기자를 20년 가까이 했는데도 난 아직 아날로그적 인간인가 보다. 그저 눈에 안 띄면 없는 줄 안다. 휴대폰은 왜 가지고 다니나.

그러고 보니, 웬만한 동네이발소는 3천엔이 넘지만 우에노역에 가면 1000엔이면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저렴한 이발소가 있다는 것도, 내가 공부하는 게이오대학 앞에도 한국식당이 있다는 것도 다 집사람이 가르쳐준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외국에서도 잠깐 검색만 잘하면 현지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신오쿠보 한류 상품 판매점의 내부.
 신오쿠보 한류 상품 판매점의 내부.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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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오쿠보 한류 상품 가게에 비치된 블랙핑크 멤버 사진들.
 신오쿠보 한류 상품 가게에 비치된 블랙핑크 멤버 사진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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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신오쿠보

드디어 주말.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신오쿠보로 향했다. 도쿄는 서울처럼 환승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갈아탈 때마다 돈을 내야 한다. 가는 데만 310엔, 왕복 620엔이다. 우리 돈으로 하면 대략 교통비만 6200원이 드는 셈이다. 어쩌랴. 그곳에 김치가 있다는데.

어둑어둑 해질 무렵 집에서 나와 한 시간쯤 걸려 드디어 신주쿠역 한 정거장 앞인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 도착했다.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인파를 헤치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오른쪽으로 따라가니 과연 낯익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닭발, 엽기떡볶이, 양고기구이전문점, 총각네, 종로호떡 등 한글 간판이 여기저기. 건널목 맞은편에 요즘 잘 나가는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를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마치 나를 환영하는 듯하다. 길 양편으로 한류 상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보였다.

상가건물 외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한국 가수들의 모습이 번갈아 나왔고, 가수 얼굴이 바뀔 때마다 건너편 인도에 도열한 일본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환성을 지르며 연신 스마트폰을 눌러댔다.

김치고 뭐고, 업된 기분에 우선 '한류백화점' 간판이 달린 가게를 들어가봤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고, 그래서 나까지 덩달아 좋아하게 된 블랙핑크 멤버 4명의 사진이 맨 앞에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수많은 한류스타들의 대형 사진들이 벽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가운데 손님들이 발디딜 틈 없어 들어차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눈에 봐도 10대~20대 젊은 일본 여성들이 대부분. 엄마와 함께 방탄소년단 사진이 들어간 열쇠고리를 고르는 초등학교 여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중년여성들이 중심이던 과거에 비해 젊은 여성들로 팬층을 옮긴 한류의 미래가 밝아보였다.

한류가게를 나와 계속 가니 이번엔 치즈닭갈비, 삼겹살, 치킨 등을 파는 한국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그동안 굶주렸으니 맘껏 한번 먹어줄까. 아차, 김치 사러 가야지.

앞뒤 좌우로 한국말이 마구 들리니 정말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뒤에 큰 캐리어를 끌고 따라오는 여자가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한테 "오빠, 여기 종로같아"란다.

드디어 목표로 했던 한국 슈퍼에 도착했다. 여기도 사람이 미어진다. 외모로 보아 한국 사람도 많지만 70-80%는 일본 사람들이다.

김치, 깍두기같은 반찬부터 허니버터칩, 짱구 같은 과자, 소주, 막걸리까지... 정말 서울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식료품이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는 느낌이다. 한국보다 조금 비싼 느낌이지만 의외로 큰 차이가 없다.

'호떡 맛 있어요' 연발하는 일본 여학생들

 
 신오쿠보에서 파는 호떡과 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일본 여학생들.
 신오쿠보에서 파는 호떡과 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일본 여학생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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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김치 코너까지 들어왔다. 늦은 시간에 와서 그런지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런데 두 종류네. 직원이 추천하는 N김치 한 봉지와 족발, 삼겹살고기, 과자, 소주까지 챙겨서 비워온 가방에 꾹꾹 쟁여넣고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가방은 무거운데 왜 이리 발길이 가벼울까.

근데 잠깐. 입구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모퉁이의 조그만 부스 앞에서 골목 안쪽으로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맞은편 인도에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종이에 싼 무언가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호또꾸 오이시이~" "우마이~"하며 엄청 맛있게 먹고 있다. 가만히 보니 호떡이다.

부스 안에서 호떡 굽는 아저씨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무래도 한국 사람일 것 같다. 200엔짜리 호떡을 하나 주문하면서 슬쩍 물어봤더니 한국 사람 맞다. 내가 도쿄 온지 2주일 됐다고 하니까 자기도 그렇다고 하면서 급 친해졌다.

- 일본 학생들이 참 맛있게 먹네요.
"그러게 말예요. 하루 종일 줄이 줄어들지를 않아요."
- 국위 선양 한다는 생각도 들겠습니다.
"에구, 그렇게까지야. 많이 찾아주시니 그저 고마운 일이지요."
-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돈도 많이 버시겠어요.
"허허. 그림의 떡이에요. 사장님은 좋으시겠죠. 저야 종업원인데 많이 파나 적게 파나 월급은 똑같아요."

호떡집 사장님 돈 많이 버시면 부디 먼 타국까지 와서 고생하시는 종업원 월급도 많이 올려주셨으면 좋겠다.
 
 신오쿠보 거리 대형 스크린에 비친 샤이니 고 김종현의 모습을 일본 학생들이 열심히 찍고 있다.
 신오쿠보 거리 대형 스크린에 비친 샤이니 고 김종현의 모습을 일본 학생들이 열심히 찍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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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오쿠보 한인 슈퍼에서 파는 신라면. 냄비와 함께 팔고 있는 게 재미있다.
 신오쿠보 한인 슈퍼에서 파는 신라면. 냄비와 함께 팔고 있는 게 재미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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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가 전부인가 하고 돌아가려고 했더니 골목 안쪽에는 한국 음식점이 정말 바글바글하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이 다 있는 듯 했다. 나중에 먹어보니, 맛은 '가게마다 달라요'더라.

원래 신오쿠보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빈민들이 어울려 살던 곳이었는데 인근 신주쿠 가부키초의 환락가에서 장사하던 한국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이동해 코리아타운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류 바람이 불어 한국 음식점이 인기를 끌게 됐고. 자료마다 다르지만 지금은 한국음식점이나 한류상품 등을 취급하는 관련 업소가 대략 300여 개나 된단다.

7개월이 지난 지금도 거의 2주일에 한번은 김치 사러 신오쿠보에 간다. 우편으로 배달을 시킬 수도 있다지만 바람도 쐴겸 한국 음식점에 가서 주인과 한국말로 세상 얘기도 할겸 해서 일부러 전철 갈아타고 간다.

자주 가다보니 음식점 일색인 이곳에 번듯한 한류박물관이나 한국공연장 같은 시설이 들어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류스타들이 꼭 들러가고, 평소에는 한국 문화 체험행사도 하고.
  
참, 신오쿠보에서 사온 김치는 어떻게 됐냐고?

집에 와서 정성스레 썰어 그릇에 담은 다음에 그날 밤 페북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신오쿠보에서 사온 김치를 썰어 그릇에 예쁘게 담아봤다.
 신오쿠보에서 사온 김치를 썰어 그릇에 예쁘게 담아봤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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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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