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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삼추모집발간위원회가 낸 추모집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 표지.
 조영삼추모집발간위원회가 낸 추모집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 표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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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철회 마중물'이 되고 싶었던 사람 고(故) 조영삼(1959~2017). 조영삼추모집발간위원회가 지난 9월 1주기에 맞춰 낸 추모집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을 뒤늦게 읽었다.

고인은 지난해 9월 19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18층 잔디마당에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문재인정부는 성공해야 한다"고 외치며 분신 사망했다.

부산에서 태어났던 그는 1990년대초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선생을 돌보기도 했고, 송환되었던 이인모 선생 초청으로 1995년 유럽을 거쳐 북한에 갔다가 독일망명수용소에서 3년간 생활했다.

2003년 결혼한 그는 2012년 독일 망명 생활 17년 만에 귀국했고, 공항에서 국가정보원에 연행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2014년 출소 뒤 밀양에 정착했던 고인은 노무현재단 밀양지부, 밀양겨레하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의 활동을 했다.

200쪽 분량의 추모집에는 여러 인사들이 쓴 추모글과 고인의 유고가 실려 있다. 장례위원회 '호상'을 맡았던 이덕우 변호사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인으로 아름다운 꿈을 꾸고, 이름 없는 들풀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그렇게 살기에는 이 세상 힘들었지요"라고 추모했다.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대표는 "내가 아는 조용삼, 내가 몰랐던 조영삼"이란 글에서 "평소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를 잘 몰랐던 것이다. 이 사실이 그의 죽음 앞에서 나를 몹시 괴롭게 한다"고 썼다.

김 대표 부부가 고인과 부인(엄계희)을 중매해 결혼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우리 부부가 중매를 서서 독일 현지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죽음이 나에겐 남다른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고 밝혔다.

김영만 대표는 "그는 결코 충동적인 성격이 아니다. 그런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번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어쩌면 거사 직전에 내가 그를 만났다 해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고인이 문재인 대통령한테 "흔들리지 마시고 초심대로 밀고 나가셔서 성공한 정권으로 남으시길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는 유언을 소개한 김 대표는 글 마지막에 "조영삼. 이제 평화의 화신이 된 그의 육신은 사드가 철거될 때까지 우리가 들어야 할 촛불이다. '온다 평화, 가라 사드, 왔다 조영삼"이라고 밝혔다.

추광규 신문고뉴스 대표는 "바람이고 싶었던 조영삼, 운명적인 만남 이인모"라는 글에서 "바람이고 싶었던 고 조영삼 선생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을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선생을 만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1993년 북송되었던 이인모 선생은 2007년 세상을 떴다.

박석민 전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분신 사망 이후 상황에 대해 "조영삼 열사의 죽음은 언론이 외면했다. 그 흔한 현장 인터뷰조차 없었다. 국회의원들의 조문은 있었지만 정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른바 사회운동단체들도 예전의 경우와 달리 함께 결합하지 못했다"며 "그의 죽음이 남긴 '사드 철회와 평화 실현과 통일'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에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그래서 조영삼 열사가 남긴 과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고 썼다.

조은숙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 위원은 "사드 가야 촛불혁명 완성이다"는 글에서 "갑작스러운 분신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다"며 "사드가 뽑히는 날, 평화의 촛불혁명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 희망과 믿음을 잃지 말라고 등신불이 된 그의 추모일이 한반도 평화의 날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성식 원불교성지수호비상대책위 위원, 최병헌 주권자전국회의 기획위원장, 이상훈 민중민주당 서울시당조직위원장 등도 여러 내용의 추모글을 썼다.

고인의 부인은 글에서 "아이 아빠가 늘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 통일입니다. 제가 '당신이 바라는 건 뭐야?' 하고 물었을 때 '여보 나는 통일이야. 그 다음에는 세계통일을 꿈꾼다'고 했어요. 그러면 저는 '진짜 꿈같은 소리 있네.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라고 했습니다"며 "너무 이상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이상이 아니고 우리 국민의 꿈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부인은 "사드 배치 문제가 터지니까 다시 아이 아빠가 먼 산을, 더 먼 산을 보고 있더라고요. '아니야,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데, 첫판부터 밀리면 안 되는데, 왜 밀리지'라고 하면서요. 아이 아빠가 '내가 너무 좋아했고 사랑하는 분들'이라고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님, 문(재인) 대통령님 너무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사드 서명했냐고 저한테 묻더라고요"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 아빠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라도 남에게 불이익이 되고 내게 이익이 되면 절대 쓰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검소하고 겸손하고 먹는 것조차 소식하는 사람이었어요. 내가 안 먹으면 저 사람이 먹을 텐데 하면서요. 아들에게는 먹는 것도 흘리지 말고 물고 아끼라면서 많이 못 쓰게 했어요"라며 "아이 아빠는 참 소박했던 사람입니다"고 강조했다.

조영삼추모집발간위원회는 "자주와 통일, 평화를 향한 민족사의 대전환기인 오늘 어느 때보다도 고인의 열정과 의지가 그리워집니다"며 "우리는 어렵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고인이 남긴 발자취를 이정표 삼아 힘차게 나아갈 것이며 반드시 고인의 뜻을 앞당겨 이루어낼 것입니다"고 밝혔다.

고인은 밀양성당 '천상낙원'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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