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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끼던 후배 한 명이 소방관을 그만뒀다. 구급차를 타면서 자신의 업무에 지극한 애정을 쏟았던 그를 그만두게 만든 원인은 바로 구급차를 이용했던 사람들의 '갑질'에서 비롯됐다.

매일 한 두 번씩 환자들로부터 또는 술 취한 사람들로부터 욕설을 받아내야 했으며 때로는 얻어맞기까지 했던 그 젊은 소방관은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로 고통을 감수하며 오랜 시간을 그렇게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소방관이 되었던 그는 결국 사람들 때문에 그 숭고한 소명을 접어야만 했다.
 
 119 구급차가 한 병원 앞에 대기하고 있다.
 119 구급차가 한 병원 앞에 대기하고 있다.
ⓒ 안전보건공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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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이 3만 불을 달성했다며 이곳저곳에서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지만 정작 안전의식에 있어서만큼은 한없이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소방관들이 얼마나 빨리 출동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며 허위신고를 한 어느 술 취한 아저씨, 화재진압을 하는 소방관에게 다가와 내가 한번 불을 꺼보면 안되겠냐며 현장활동을 방해하는 청년, 구급차는 공짜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태워달라는 아주머니가 바로 오늘도 시민이란 이름으로 소방관들에게 무자비한 갑질을 해대고 있다.

불법으로 주차한 자신의 차량 일부가 출동하던 소방차에 긁혔다며 악성민원을 넣는가 하면, 좁은 골목길에 불법으로 간판을 설치해 놓고도 소방차에 부딪혀 손상되었다고 소방서에 찾아와 버젓이 배상을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119 상황실에 근무하는 소방관들의 고충은 더욱 심각하다. "출동전화를 받다보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욕설을 듣는데 그 욕설을 언제 들을지 모른다는 것이 고통이라면 고통이다"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던 한 소방대원의 고백이 기억난다.
 
 한 소방대원이 소방호스를 메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 소방대원이 소방호스를 메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안전보건공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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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원인들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
사이렌 소리와 같이 지속적인 소음에 노출되어 겪게 되는 '소음성난청', 끔찍한 사고현장을 목격하면서 경험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촌각을 다투며 출동하다가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사고', 화재나 화학사고 현장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이 원인이 되는 '암 질환', 그리고 환자나 무거운 장비를 이송하면서 수반되는 '근골격계 질환' 등 그 원인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소방관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시민들의 배려 없는 행동이다.

소방대원은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힘차게 울어대는 새소리의 볼륨을 줄여 줄 수도 없고 부부싸움으로 인해 굳게 잠긴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이처럼 필자가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근무했던 6년이란 시간동안
목격한 수많은 갑들의 횡포를 글로 적는다면 아마도 책 한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폭행으로 고통받는 소방관 이미지
 폭행으로 고통받는 소방관 이미지
ⓒ 안전보건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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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면 소방대원들에게 욕설을 내뱉고 폭행을 하는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년간 집계된 소방관 폭행건수만 해도 695건에 이른다.

소방관을 가리켜 "국민안전의 버팀목
"이라거나 또는 "국민이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국가가 내미는 손"이라며 치켜세우지만 정작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관한 보고서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 소방관들의 슬픈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활동을 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활동을 하고 있다.
ⓒ 안전보건공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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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한번 쓰고 버리는 존재가 아니다. 소방관의 건강과 행복지수가 바로 그 나라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지역사회의 안전리더인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가 각별하다. 그래서 미국의 소방관들은 "월급이 아닌 명예를 먹고 산다"라고 말한다.

소방관은 더 이상 영화 속 영웅도 슈퍼맨도 아니다.

역시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다만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 시대의 용기 있는 시민의 한사람일 뿐이다.

매일 전쟁터와 같은 재난현장을 누비는 우리의 소방관들이 외롭지 않도록, 또 그들이 갑질로부터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도록 깨어있는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소방관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응원의 말 한마디면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는 막중한 임무를 계속해서 이어가기에 충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전보건공단 공식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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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검열관. 중앙소방학교, 서울소방학교 등 외래교수. 소방칼럼니스트: 경향신문 <이건의 소방이야기>, 세이프타임즈 <이건의 이슈분석>, 오마이뉴스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서: <주한미군 취업가이드>,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