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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박지숙 참여연구원, 강경숙 이사장, 김민수 이사, 양영숙 참여연구원, 신옥영 팀장
 (왼쪽부터)박지숙 참여연구원, 강경숙 이사장, 김민수 이사, 양영숙 참여연구원, 신옥영 팀장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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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문제해결, 과학 기술

처음 '리빙랩'이라는 낱말을 들었을 때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회사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빙랩'에 관한 해석은 분분하다. 과장해 말하면, 좁게 개념을 정의할 때와 좀 더 포괄적으로 정의할 때는 전혀 다른 개념처럼 관계성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낱말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는이미지가 아직은 많이 다르다.

"리빙랩은 '협력네트워크'입니다. 찾아내고 연결해 주고, 결국 그것이 과학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해결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겠죠."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 신옥영 팀장이 정의한 리빙랩이다. 간결하면서 중요한 요소를 모두 언급했다. 협력, 문제해결, 기술이다.

리빙랩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닌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에 다양한 구성원을 연결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이 협력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며 그 해결 과정에서 필요한 과학과 기술을 결합한다.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은 '지역 시민이 시민과학자로서 스스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기 위해 설립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리빙랩 사업뿐만 아니라 과학문화·교육 사업을 펼친다. 아울러 시민과 과학자, 시민과 시민, 과학자와 과학자 등의 네트워크 사업을 추진한다.

'세상속의과학'은 2017년 2월 9일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 달 28일 협동조합으로서 법적지위를 획득했다.

"세상속의과학은 시민참여연구센터만 가지고는 사업을 직접 수행하기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사업조직으로서 구체적인 활동을 펼칠 협동조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속의과학' 김민수 이사 얘기다. 시민참여연구센터(이하 참터)는 1970년대 초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과학상점운동'을 모델로 한다. 대전에서 2002년 준비모임을 시작해 2004년 정식 발족한 센터다. 현재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 강경숙 이사장도 이 단체에서 활동가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참터 활동을 펼치는 전문가와 축적된 연구 내용은 '세상속의과학' 뒤를 지켜 주는 든든한 자산이다. 참터와 세상속의과학은 다양한 변주로 결합하며 함께 같은 곡을 연주한다.
 
시민참여연구센터와 같이한 과학문화사업
 시민참여연구센터와 같이한 과학문화사업
ⓒ 세상속의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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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용인한다는 것

언론 인터뷰도 정중하게 거절할 정도로 강경숙 이사장은 '세상속의과학'이 아직은 조심스럽다. 익숙하고 흔한 개념이 아닌 것을 사업 대상으로 삼았기에 조직과 사업 내용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사업을 이어 오면서 '세상속의과학'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경험을 쌓으며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 심도 있게 숙의하면서 향후 가야 할 방향도 구체적으로 잡아 간다.

"지난해와 올해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요. 전문가들조차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진 경향이 있더라고요. 마을이나 공동체 활동가들은 전문가나 기관에 기대려는 경향이 강하고요. 인터뷰나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정의하는 것까지는 무난하게 가는데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생겨요. 양쪽 모두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거죠. 실패를 용인하고 이를 잘 기록해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요. 의미 있는 결과를 반드시 도출해야 하는 강박에 싸인 우리 현실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죠. 그래도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 혁신'이라는 생각은 변함 없어요."

강 이사장은 오정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벌인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냈다. 구성원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과학자를 참여시켜 문제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등 '리빙랩' 방식으로 벌인 프로젝트였다. 현장에서 확인하고 발견한 문제는 충분히 예상한 범주였다. 워낙 넓은 공간에 걸친 문제여서 당장 과학기술적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였다.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후에 찾아간 오정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강 이사장은 놀라운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구성원들이 쓰레기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어요. 분리수거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거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쓰레기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려 한다든지. 과거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구성원들도 해결해야 할 문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변화가 우리가 펼치는 프로젝트의 성과라고 생각해요."

삶에 들어온 과학

'리빙랩'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랩' 안에 사람을 모으는 작업이었다. 이해당사자와 담당 기관 관계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 기술자는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유효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리빙랩도 잘 모르고, 과학도 저에게는 먼 분야였는데, 활동하면서 보니 무척 매력적이더라고요. 사회문제와 그 해결에 관심은 많았지만 주민이나 당사자만 생각했지, 더 많은 분야를 결합했을 때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잖아요. 이것이 사람을 빠져들게 하더라고요. 사회문제를 처음 인지했을 때부터 여럿이 모여 예상치 못한 답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는 모습을 보면 마치 유기적인 생물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속의과학 양영숙 참여연구원 얘기다. 일상에서 특별한 것으로 치부하는 '과학'이 삶에 들어왔을 때 다양한 형태의 자극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기대하지 못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재미있어요. 과학자를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학교 다닐 때 재미없었던 물리와 화학 같은 학문을 다시 확인하고 리빙랩 안에서, 삶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까 더 공부도 해 보고 싶고 신기한 경험이에요."

'세상속의과학' 박지숙 참여연구원은 생활 안으로 들어와 연결지점을 가진 채 움직이는 과학을 만나며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공동체 활동 현장이나 사회문제가 드러나는 현장을 가 보면 안갯속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과학적인 분석방법도 없고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을 때도 많죠. 논의와 주장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현장에 정리된 데이터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어요."

과학자인 김민수 이사가 바라본 현장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다양한 주장과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혼돈의 장인 경우가 많았다. 이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과학적 접근 방식은 무척 유효하다. 과학 기술이 사회로 내려와 철저하게 삶과 결합하는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2018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 활동 모습
 2018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 활동 모습
ⓒ 세상속의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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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실험실 리빙랩

설립 3년 차를 눈앞에 둔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은 이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

"직접 수행하는 리빙랩 프로젝트 사업 말고도 다양한 상품을 세상에 내놓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데이터 수집과 분석 등 사회적 경제 영역 안에서 약한 고리를 찾아 강화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강경숙 이사장은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대안을 모색하고 혁신을 추진하는 전체 생태계 안에서 '세상속의과학'은 낯설게 등장한 새로운 영역인 만큼 신중한 접근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시도된 영역이 아닌 만큼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대전에서 리빙랩이 필요한 모든 곳에 우리가 갈 수도 없고 결국은 우리 협동조합이 리빙랩 플랫폼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 우리가 먼저 현장 경험을 쌓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거지요. 많은 경험이 축적된 영역이 아니니 '빠른 실패 전략'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준비해야죠. 동시에 리빙랩 네트워크나 포럼도 공식적으로 만들려고 제안해 나가는 중이에요. 사회적자본지원센터나 테크노파크, 정보문화산업진흥원, 사회적경제연구원 등과 잘 엮어 내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민수 이사는 아울러 리빙랩에서 과학과 기술을 결합하는 것은 맨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리빙랩 안에서 다양한 시도와 충분한 실패, 자기 경험 축적 등을 통해 솔루션을 찾아낼 때 그 결과물에 대한 태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조기에 결합해 정리해 버리면 지금껏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담장을 쌓은 자기 영역 안에서 서로에게 의존하려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도 지금껏 활동해 오면서 전문가 조언과 자문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현장을 이해하는 건 다 다를 수밖에 없고 케이스도 다른데, 이제는 우리가 직접 다양한 실험을 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 과정을 통해 전문성과 우리만의 색깔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요."

신옥영 팀장의 얘기를 들으며 얼렁뚱땅 괴짜 박사의 실험실이 떠올랐다. 괴짜 박사의 실험실 같은 리빙랩이 우리 도시 곳곳에 생기고 그 안에서 독특한 색깔을 지닌 다양한 실험이 펼쳐진다면?

협동조합 '세상속의과학'은 제일 먼저 문을 연 괴짜 박사의 얼렁뚱땅 실험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토마토>와 사회적경제연구원 성과집에도 실립니다.


태그:#협동조합, #사회적경제연구원, #월간토마토, #세상속의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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