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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2018년 부모돌봄 경험이 있는 여성 2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부모 돌봄을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돌봄 불평등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돌봄의 공공화·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이 글은 '비혼/딸 부모돌봄, 두려움과 막막함 사이: 돌봄연대사회를 상상하다' 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발제문 ''딸'을 넘어 시민을 상상하다'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은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말]
 
토론회 <비혼/딸 부모돌봄, 두려움과 막막함 사이: 돌봄연대사회를 상상하다> 현장사진
 토론회 <비혼/딸 부모돌봄, 두려움과 막막함 사이: 돌봄연대사회를 상상하다> 현장사진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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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여성에게 부당하고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과정, 돌봄의 책임을 맡은 이후 사회화 가족으로부터 잊혀지고 배제되는 현실 등 돌봄을 둘러싼 현실은 부정의하다. 돌봄정의 관점에서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독박돌봄을 넘어 함께 책임지고 함께 돌보는 돌봄 민주주의를 위한 돌봄연대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비혼여성의 부모돌봄 경험: 부정의한 독박돌봄을 넘어 돌봄민주주의를 향하여>(석재은) 발췌)

돌봄에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돌봄 문제 핵심은, 돌봄 노동이 특정 성별에게 집중되어 왔다는 것이다. 돌봄의 젠더불평등을 이야기하지 않고 돌봄의 사회화·공공화 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 다수의 인터뷰이들이 가족 내 남성구성원이 돌봄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돌봄 비용만 부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돌봄을 나눈다는 건 비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 행위에 동참하는 것, 돌봄에 시간을 쓰는 것, 그리고 정서적 힘듦을 함께 나누는 것이 출발점이다.

"기본적으로 육아도 아빠 참여가 많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돌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들이 참여를 해야 된다고요. 아들이 돌보는 게 맞지. 오빠한테도 그랬어요. 새언니가 돌보는 건 말이 안 되고 네 엄마니까 네가 돌봐라, 했어요."

"엄마 자식이 셋인데, 언니랑 저만 하고...오빠 한 명이 약간 역할 분담을 같이 해줬으면 그 만큼 덜 힘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아예 하질 않으니까요."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덧붙인 말은 '한 명의 가족이 돌봄을 전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돌봄은 한 명이 아닌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봄은 품앗이'라는 표현도 여러 번 나왔다. 대통령이 나서서 치매 국가 책임제를 공표하는 등 사회적으로 '돌봄'은 공공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내에서 돌봄을 '딸'에게 미루고, 장기요양종사자의 여성 비율이 95%에 가까운 현실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돌봄의 사회화·공공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관계 중심의 일상적 돌봄
 

'내가 꿈꾸는 돌봄 제도/시설/삶의 모습이 있다면?' 이라는 질문은 던졌을 때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노년에도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공동체', '돌봄협동조합'을 언급했다. 일반적인 시설 입소를 이야기하는 여성들 역시, 그 시설이 '요양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일상과 격리된 공간이 아닌, 학교나 유치원처럼 삶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있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을 이야기 했다. 이는 시장화 된 돌봄이 아닌 평등하고 관계 중식적인 돌봄 환경 구축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를 돌보면서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건, 돌봄에 일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물론 희생한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까지 그만두면서 매달려야 하나? 제 일에 대한 신념이 무엇보다 컸던 것 같고 경제적인 이유도 크고. 그리고 또 저희 엄마가 전업주부로 (가족에게 집중하면서) 살다가 저런 질환을 겪으면서 사회적 관계가 정말 끊어지는 걸 보고서는 아 사회적 관계가 되게 중요하구나."

"나는 만약에 내가 그런(거동이 힘든) 경우가 된다면 요양원 갈 생각도 하고 있어요. 중요한건 그 시설에서 좋은 사람, 요양보호사 분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게 관건인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나도 노년후기까지 살아있다고 하면 싫던 좋던 간에 내 힘으로는 못산다는 것을 알아요."

"아쉬움이 느꼈던 게 아파트마다 그런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 격리돼있는 곳이 아니라 운동장시설도 같이 이용하고 학교의 꽃밭도 같이 돌아볼 수 있고. 애들이 와서 생활 속에서 와서 자투리 시간 이용해서 그렇게 해서 할머니들 모시고 꽃밭 돌아보게 하고…"


가족을 넘어, 확장되는 관계를 위한 새로운 제도

비혼인 인터뷰이들에게 본인의 노후는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봐줄 가족이 없다면, 혈연/혼인 관계로 맺어지는 가족이 아닌 가족을 구성하여 서로를 돌보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가족 구성권',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성평등한 복지국가의 모습은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가족을 중심으로 닫혀있지 않으며, 돌봄 공동체의 가능성 역시 결혼을 중심으로 닫혀있지 않은 사회다. 가족을 혈연이 아닌 친밀성과 관계성 중심으로 재구성함으로서 변화하는 현실을 법·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여자 노인들 공동체. 여성노인 공동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노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이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도 서로 의지가 되면 좋겠는데 정서적인 공동체, 문화적 공동체,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하는 그런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결혼 안 한 친구들도 많거든요. 친한 친군데 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한 동네 같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가족은 확대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결혼 안 한 다른 친구들과도 뜻이 맞으면 같이 공동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네가 아프면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없다. 그게 문제인 것 같긴 하다.' 생활동반자법 이런 식으로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게 필요하긴 하죠, 확실히."

"협동조합 요양병원 건립해도 좋을 것 같아요. 조합을 통해서 요양병원을 건립하는 방법도 생길 거고 그렇게 할 거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시설에 들어가고 싶어요. 경쟁률이 치열할 것 같긴 한데. 하나의 마을에서 주치의제도 해서 그 마을의 인원들을 다 케어를 하고 그 마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이 생겼으면 좋겠고. 앞으론 가능하지 않을까."


돌봄과 노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국가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간주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언론도 나서서 '10명의 노인을 1명의 청년이 부양(돌봄) 해야 한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낸다. 사회 전반의 나이듦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함께 커진다.

이러한 고령화 사회의 담론들은 노인을 '나오는 돈은 없고 들어가는 돈만 있는' 잉여적 존재로 위치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 돌보고 돌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함에도 노년이 '(돈 없고, 아픈 상태로)오래 사는 것은 재앙', '늙으면 민폐', '누군가의 짐'으로 정의되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 나이듦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상상할 수 없다.

인터뷰이들은 돌봄을 모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돌봄과 노년에 대한 전사회적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노년학이 필수 교육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육아만큼 노인 돌봄에 대한 정보와 일상적 교육이 필요하다',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 노년에 대해서 사회가 들여다보고, 죽음, 질병에 대해 터부시하는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퇴는 빨라지고 살 수 있는 기간은 옛날보다 늘어났잖아요. 평균수명이라는 게 늘어났잖아요. 은퇴 후의 삶은 되게 길어졌거든요. 거의 20년. 어떻게 보면 100년 시대 이러면 거의 40년 가까이 되잖아요. 그래서 노인이 일할 수 있는 것,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꼭 노동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늘려야…"

"돌봄 교육. 가족들한테도 그런 거 있잖아요. 아빠한테도 느꼈고 엄마 때도 그렇겠지만 일본에서는 치매 환자를 다루는 방법 이런 거 해가지고 홍보용 영상 이런 게 있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이 사람과는 손을 5초 동안 잡고 눈을 5초간 맞추시고 안정을 시켜주세요, 이러면서 그 상황이 됐을 때 홍보하는 영상이 있던데 그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족들한테 강의, 교육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상황이 맞이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더 편할 테니까. 가족도 돌봄 교육이 필요하다. 강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 텐데 더군다나 나는 봐줄 사람도 없겠지만 노인의 상태, 심리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되겠다. 프레임을 바꿔야 되겠구나.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건 힘든데 이제 부모도 나이가 들면 신체가 아이처럼 정신도 점점 아이가 되니까 거꾸로 이제 엄마한테 내가 케어가 필요하다. 프레임을 바꾸게 되더라고요."

"인생 후반기에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 너무 준비 없이 닥치게 되는 것 같아요. 삶의 태도나 자세 그리고 노후에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이런 것 들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도 시도들이나 노력들이 없으면 막상 닥쳤을 때 되게 당황스러운 것 같아요."

"저는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죽음을 너무 터부시하고 죽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고 죽는 건 정말 지리한 과정이거든요.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평소에도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꺼려하잖아요, 분위기들이."


돌봄연대사회로의 준비

물론 앞에서 언급된 새로운 상상들은 지금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돌봄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돌봄연대사회'로의 변화는 요원할 것이다.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관점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그 첫 번째로, 돌봄 비용을 부담할 자녀가 없거나 가족들의 경제력 유무와 상관없이 평등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보편 복지로서의 돌봄 제도 구축'이다. 현재와 같은 영리형 민간기관 중심이 아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책임지는 공공 노인 돌봄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현재 서울시 소재 장기요양기관 총 2573개소 중 개인 운영 기관이 98%으로 공공의 역할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기초 자치단체 단위의 직영 통합 재가요양기관 설치 및 운영을 통해 요양서비스 표준을 확립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장기요양종사자 처우개선'이다. 민간장기요양 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함께 지자체 차원의 조례를 제정하여 장기요양종사자 지원 사업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직접 고용 형태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돌봄 종사자의 생활안정과 고용안정 보장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및 인권,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에서 개호(돌봄)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맨 먼저 가족 중에서 '누가 보살필 것인가'를 정한다. 이때 개호자로 가장 먼저 꼽힐 사람은 돌봐야 하는 다른 가족이 없는 독신이다. '개호 독신'이란 초고령사회라는 흐름과 만혼화, 비혼화라는 흐름이 만난 지점에서 생긴 멈출 수 없는 소용돌이다. 그렇기에 독신자가 부모를 돌보는 것, 개호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왔다."
-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 야마무라 모토키 저



현재 일본 사회는 비혼화와 고령화로 인한 '비혼 부모 돌봄'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즉 비혼 자녀에 의한 부모 돌봄 뿐 아니라 법적 가족이 없는 노인들의 돌봄 문제 또한 멀지 않은 현실이다. 모두가 돌보고 돌봄 받는, 돌봄연대사회로의 변화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태그:#부모돌봄, #비혼돌봄, #페미니즘, #돌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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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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