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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 대상 차량들에 대한 결함사실을 공개한 날짜가 언제인가요?"
-고객님이 받으신 것은 사전 안내문입니다. 리콜 개시일은 미정입니다.

"개시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까?"
- 제가 답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 결함 사실을 공개한 것인가요, 아닌가요?"
- 그것도 제가 답변할 수 없습니다.

"책임자와 통화를 원합니다."

7일 내가 보유한 자동차 회사로부터 리콜 통지문을 받았다. 통지문의 서두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귀하의 자동차는 메카트로닉스 관련 제작 결함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본 통지문은 개시일 미정인 리콜의 사전 안내문입니다. 본 리콜 일정이 재공지되기 전까지 자동차 사용자 설명서의 지침을 준수하시어 안전 운행하시기 바랍니다."
  
리콜 통지라고 봉투 겉면에서는 적혀 있지만, 본 리콜이 아니고 사전 안내문이라는 내용도 있다.
 리콜 통지라고 봉투 겉면에서는 적혀 있지만, 본 리콜이 아니고 사전 안내문이라는 내용도 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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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짜리 리콜 통지문을 차분히 읽어 보고서 나는 '반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똑같은 문제로 4주 전쯤 수백만 원의 수리비를 물고 차를 고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콜 통지문대로 당초 부품의 불량으로 인해 머지않아 고장이 예정돼 있고, 이에 따라 수리가 불가피했던 것이라면,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자동차 회사 측에서 수리비를 책임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회사 안내센터의 1차 담당자로부터 만족한 답을 듣지 못한 까닭에 보다 책임 있는 사람과 통화를 부탁했다. 전화를 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은 뒤 10분도 채 안 돼 이전 안내센터 담당자보다 높은 직급으로 여겨지는 다른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가장 큰 궁금증은 '결함사실 공개 일시' 였다. 수리비 보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수리비 보상과 관련해 리콜 통지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자동차관리법 제31조2에 따라 결함사실을 공개하기 전 1년 이내 그 결함을 자체 시정했던 시정 비용을 보상해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전 담당자와 통화에서 답을 얻을 수 없었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 리콜 통지문을 받은 걸 결함이 공개된 것으로 봐야 하나요?"
- 일단 통지문이 갔으니까 결함이 공개됐다고 봐야지요.

"이번 리콜 원인과 똑같은 문제로 제 차에 대한 수리를 받은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결함을 공개한 시점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 결함이 공개되는 기준은 안내문에 나왔듯이 본 리콜 일정이 시작되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리콜 일정이 언제 시작되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아직은 결함이 공개가 안 된 거네요."
-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답변을 원하시나요?

"무슨 답변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소송에 대비해서도 그렇고, 기준 일자가 중요합니다. 결함이 공개가 안 된 걸로 봐야 하나요?
- 그렇다면 정식 리콜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공개가 안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결함 사실이 공개됐다고 했는데, 결론은 안 됐다는 것이군요."
- 그런데 고객님이 자체 시정을 받으셨다면, 리콜과 동일한 결함으로 인해 수리비를 지출하셨어도 저희가 보상을 해주지 않습니다.

"안내문에는 '자체 시정했던 시정 비용을 보상해 드립니다'라고 돼 있는데요."
- 그것은 법에 따라 그렇게 하게 돼있기 때문입니다.

"…"
  
수백 만원의 들여 수리했지만 리콜 결함으로 판명돼도 자동차법 규정과는 달리 소송을 해야 보상에 이를 확률이 높다
 수백 만원의 들여 수리했지만 리콜 결함으로 판명돼도 자동차법 규정과는 달리 소송을 해야 보상에 이를 확률이 높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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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 집 앞에서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자동차 회사 고객센터의 답변에 그 못지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리콜이든 소송이든 법규에 따른 조치를 하려면 기준 일자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상식이다. 헌데 그 기준 일자가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답변을 듣는 입장에서는 봐가면서 정해질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담당자에게 통화 내용을 녹음한다고 말하면서 통화했으므로 대화내용은 어느 때이고 고스란히 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내 경우 사전 안내문(자동차 회사 측에서는 통보문이라는 표현과 안내문이라는 문구를 뒤섞어 쓰는 바람에 어떤 게 맞는지조차도 부정확하다)을 받은 게 수리를 맡긴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라 향후 그나마 '결함 공개 시기 1년 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가 보낸 리콜 결함 내용에 따르면 해당 회사의 8개 차종에 태생적 결함 부품이 사용됐을 수 있고, 그 시기가 빠르게는 2012년 10월 제작된 부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해, 나보다 훨씬 앞서 이 문제로 수백만 원대 수리비를 지출한 사람이라면 어디 하소연할 데조차도 없다. 

또 현행법에 따른다 해도 두 가지 정도의 문제가 있다. 리콜과 동일한 결함으로,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10~11개월 전에 부품 교체 수리를 한 사람은 자칫 보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자동차 회사가 예를 들면 내년 2월을 결함 공개 시점으로 정한다면 말이다. 

또 하나는 자동차관리법에는 결함 자체 시정 비용을 보상한다고 나와있지만, 자신들 서비스 센터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라면 보상해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문제이다. 법규가 어찌 됐든, 자동차 회사가 버틴다면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소송으로 밖에 갈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 초중순 자동차가 갑자기 동네 입구에서 멈춘 뒤, 수리센터까지 끌고 갈 견인차가 연달아 3대나 왔었다. 그때 견인차 운전기사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생각난다. "이 차 이런 일 드물지 않습니다. 사장님 안됐지만 억울하더라도 4백~5백 정도는 써야 할 것입니다." 

당시는 고속도로 같은 데서 달리다 멈추지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수백만 원을 지출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고 가슴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쓰리다. 아직도 가계부에는 그 지출의 여파가 남아 있는데, 이제는 억울함에 황당함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막연하게 미뤄 짐작할 때, 국내에서 꽤 많이 팔리는 해당 회사의 8개 차종에 리콜이 예정된 만큼 피해자 혹은 예상되는 피해자는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황당하고 당황스런 일을 겪기에 앞서, 선제적 조치를 했으면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니, 다름 아닌 '본 리콜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자동차 사용자 설명서의 지침을 준수하시어 안전 운행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회사 측의 안내 문구이다. 당한 입장에서는 이 한 문장이, '당장 수리비를 지불하고 점검을 받든지, 아니면 재수 없이 차가 갑자기 멈추는 일을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는 말로 들리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실립니다.


태그:#자동차, #리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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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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