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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는 김서영 24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수영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경영 여자 개인혼영 200m 결승. 김서영이 역영하고 있다.
 오감으로 물을 느끼면서 감각적이고도 영적인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바닥을 힘껏 딛고 몸을 뻗으면 물살이 몸을 밀어주는 그 감각, 햇볕이 쏟아지던 전면 창. 그곳에서 아침을 숨 가쁘게, 그리고 밀도 있게 보내는 것이 좋았다(사진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경영 여자 개인혼영 200m 결승에서 김서영 선수가 역영하는 장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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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천천히 유영하는 나? 환상은 곧 깨졌다 

지금껏 나는 무수히 많은 처음을 겪었다. 첫 음주, 첫 습작, 첫 월급, 첫 해외여행, 첫째 조카가 태어난 날, 그리고 처음으로 배운 운동.

어느 호텔의 전망 좋은 루프탑 수영장에서 멀뚱거리며 서있던 것이 발단이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건 삶의 중요한 재미를 놓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강습용 수영복을 하나 사서 가까운 구립 수영장으로 갔다.

그런데 루프탑 수영장과 구립 수영장 간의 괴리가 너무 컸다. '이른 아침의 고요한 수영장, 그곳에서 천천히 유영하는 나'라는 그림을 그려놨는데 나를 기다리는 현실은 그렇게 근사하지 않았다. 우선 수영장은 시끄러웠다. 고물 스피커에서 훅송과 트로트가 번갈아 가며 쿵작거렸고 강사들이 수시로 호루라기를 불어 젖히는 통에 귀가 따가웠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조도가 낮은 실내의 어둑함과 코를 자극하던 염소 냄새도 생생하다.

처음 강습을 받던 날 강사가 나를 한번 보더니 유아용 풀로 가라고 했다.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킥보드에 의지한 채 발버둥치는 것이었다. 작고 탁한 웅덩이에 사는, 이제 막 알에서 부화한 치어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다들 성인용 풀에서 맹연습 중인데 몇 날 며칠을 혼자 유아용 풀에서 어슬렁거리자니, 외로움이 사무쳤다. 그러나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수영장을 떠올리면서 고독의 시간을 견뎠다.

내 발차기를 볼 때마다 갸우뚱거리던 강사가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성인용 풀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총 여섯 개의 레일에는 따로 표시가 없지만, 입구에서 가까운 쪽부터 초급, 중급, 고급 세 개의 반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이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만큼이나 엄격하다. 실수로 중급 레일에 들어간 나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초급반으로 이동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음파'조차 제대로 안 되는 피라미가 아닌가.

운동하는 장소로선 드물게 여성향이 강한 곳

드디어 줄지어 레일을 왕복하며 함께 버둥거릴 동료들을 얻었다. 그들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기혼 여성이었다. 수영장은 운동을 하는 장소로선 드물게, 여성향이 강한 곳이다. 사회에서 '엄마'나 '아줌마'로만 명명되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땀 흘리고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운동하는여자'의 조상님과 같은 존재다. 수영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거의 최초로 강습이 이루어진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의 경제 성장의 영향으로 주부들도 드디어 여가를 갖게 됐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은 등교하는 오전 시간, 건강도 챙기고 다이어트도 할 겸 수영장에 모였다. 

지금도 수영과 에어로빅은 주부 유산소 운동의 양대 산맥이다. 특히 수영은 복장만 갖추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시작할 수 있고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운동량이 많아서 인기를 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영이 여성적인 운동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너무 격렬하거나 남성적이지 않은, '얌전한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여성들의 놀이터이자 사교의 장이었던 수영장. 이곳에서 나는 수영만 배운 것이 아니라 수영장 문화에 얽힌 소문을 확인할 기회를 얻었다. 수영은 풀에서 하지만 여성들이 진짜 친해지는 곳은 샤워실과 탈의실이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수영장 탈의실은 성토의 장이다. 텃세의 벽을 넘어서 주요 멤버들과 친해진 이후 나는 그들의 남편과 아이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은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저절로 알게 됐다.

'아가씨 한정'으로 적용되는 엄격한 잣대

그들은 남편과 아이, 가정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도 여자들의 뒷말을 막을 순 없다. 뒷말은 억압된 자들의 아편이므로.

그리고 거의 모든 여자들이 매일같이 디지털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장소답게, 서로의 외모를 평가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한 중년 여성은 나를 볼 때마다 '싱싱하네, 싱싱해'라는, 수산물 코너에서 고등어를 고를 때나 쓸 것 같은, 칭찬인지 희롱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인사 삼아 건네곤 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에게는 '아가씨 한정'으로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이를테면 '아가씨인데 왜 저렇게 배가 나왔는가?' 하는 주제로, 당사자도 없는 자리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끝으로 이 모든 사교 행위는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완성된다. 여성들만 모이는 집회에도 쿠키와 젤리, 초콜릿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음식을 나누며 친해지는 것은 여성들만의 고유한 습성이다. 수영장 탈의실에서는 주로 떡을 권하고 나눠 먹었다.

하지만 종류를 불문하고 떡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탈의실의 도원결의가 시작될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보다 먹이고 말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앞섰고 그때마다 입안에 든 떡을 쉬이 삼키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래도 수영장의 주된 기류는 '해방감'

불특정 다수가 모인 집단이 대개 그렇듯이 수영장에서도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언행으로 마음이 불편하고 뒤끝이 개운치 않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영장에 흐르는 주된 기류는 다름 아닌, 해방감이었다. 고작 한두 시간이라도 좋은 자유, 웃음,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간의 친밀감. 

그래서 지금도 가끔 네 가지 영법과 입수 동작을 배우던 때가 떠오른다. 오감으로 물을 느끼면서 감각적이고도 영적인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바닥을 힘껏 딛고 몸을 뻗으면 물살이 몸을 밀어주는 그 감각, 햇볕이 쏟아지던 전면 창. 그곳에서 아침을 숨 가쁘게, 그리고 밀도 있게 보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팔 년째 아침 수영을 한다던 어느 중년 여성의, 나비처럼 날갯짓을 할 때마다 섬세하게 갈라지던 등 근육 같은 사소한 것이 좋았다. 몸이 불편해서 젖은 수영복을 벗지 못하던 할머니를 돌아가며 씻겨주던 손길도.

최근에 서울시는 수영장의 여성 전용 반을 일괄 폐지하기로 했다.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에서 남성이 배제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게 이유다. 수영장의 여성 전용 반이 사라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초에 여성 전용 반이 필요했던 이유가 성차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중이라고 해도 체육관은 여전히 마초성이 지배하는 공간이고 특히 나이든 여성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장소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무엇보다 역차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만큼 차별적인 문화가 사라졌는지 의문이다. 수영장만이라도 온전히 여성의 공간이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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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움직임에 자주 매혹되며 여성과 세상에 관해서 씁니다. 운동하는 여자 연재 중 Time'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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