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 스피치>의 포스터.

영화 <킹스 스피치>의 포스터. ⓒ 베들렘 프로덕션스

 
가끔,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극복하려 할 때다. 잘못한 것을, 부족한 것을 인정할 때, 그리고 그것을 고쳐보려고 노력할 때다. 극복한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다. 누구나 어렵다는 걸 안다. 극복해보려고 한 발자국이라도 내디딜 때, 난 인간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톰 후퍼 감독의 영화 <킹스 스피치>를 봤다. 83회 미국 아카데미 수상작이기도 하다. 실제 왕(조지 6세)에 대한 영화지만, 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던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지'의 이야기다. 그는 영국 왕으로 즉위하면서 인간 조지 6세의 면모를 드러내야 했다. 그것도 전 국민, 전 세계인에게. 영화는 그의 즉위 이전부터 즉위한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겪는 상황에서 그의 역할과 모습을 담는다. 그는 어떤 왕이었을까. 어떤 인간이었을까. 그도,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였을까.
 
조지 6세는 '말더듬이'였다. 짧은 문장조차 내뱉기 힘들어했고 또박또박 말을 하는 것이 그에겐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나 마이크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연설을 해야 했던 '왕'의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왕이라는 역할도 흔쾌히 그가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자신의 단점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해, 형(에드워드 8세)이 왕의 역할을 잘 수행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정사는 뒷전이고 심지어는 사교계 인물이었던 여자와 결혼해 왕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왕의 자리를 떠맡았다. 조지 6세(배우 콜린 퍼스)는 얼떨결에 계승된 '왕'이라는 직위가 주는 무게감을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일단 말을 더듬는 것부터 고쳐야 했다. 아내 엘리자베스 여왕(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은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배우 제프리 러시)를 남편에게 소개한다.

언어치료사라고 하지만 그는 변변한 자격증도 학위도 없었고 치료를 하는 방식도 조지 6세에겐 괴상해보였다. 그는 왕을 왕처럼 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무례한 방식을 취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 초반부,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의 관계는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버티(조지 6세의 애칭)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로그의 치료법을 따른다. 음악이 크게 들리는 헤드폰을 끼고 책을 읽어보고, 몸을 풀겠다고 이리저리 괴상한 몸짓을 취하고... 버티는 경계하면서도 열심히 치료에 임했다.

영화를 보면서 서서히 느낀 건, 조지 6세가 점점 로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부분이었다. 절대 치료될 수 없을 것 같던 증세가 호전되었고 마지막에선 연설을 무사히 마친다. 위엄 있고, 기품 있고, 근엄하며, 따뜻한 어조로 말이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한 장면.

영화 <킹스 스피치>의 한 장면. ⓒ 베들렘 프로덕션스

 
사실 조지 6세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왕가의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부분이 많았던 그는 왕가의 그런 질서가 잘 맞지 않았다.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고, 실제 자신이 누군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부터 어떤 학습된 '교육'만을 받고 자란 왕가의 '부품' 같은 것이 되었다. 그에게 그런 방식은 잘 맞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에게도 편견 아닌 편견이 생겨, 처음 로그를 만났을 때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방식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유년시절 겪어온 환경이라는 게 '왕'에게도 크게 작용할 만큼 인간을 좌우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또 다시 인간은 변화한다.

조지 6세는 겉으로는 몰지각해 보였던 로그를 만나, 진정한 사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씩 느낀다.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였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겁을 먹고 무지했던 조지 6세는 영혼 깊숙이 스스로와 교감하는 법을 알게 된다. 로그를 통해서. 가장 의지하고 믿었고 마음을 나눈 친구를 통해서.

로그뿐 아니라, 조지 6세가 말더듬는 습관을 극복할 수 있게 일조한 데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몫도 컸다. 그녀는 남편의 단점이나 실수까지도 북돋아 사랑해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가 그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데에는 이렇게나 많은 조력자들의 숨은 도움이 있었다는 게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만큼, 존재는 또 다른 존재들을 통해 바뀌고 만들어진다. 그렇게나 미완성이고 너무나 미숙하다. 그래서 난, 특히나 인간을 아름답다고 보는 순간이 적다. 너무 서툴고 서툰지 모르고 서툰지 모른다는 걸 또 모른다. 그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르는 것에서 나오는 무지한 행동뿐이다. 알려고 하지 않고, 외면하려고 하는 존재가 하는 일이라고는, 되풀이되는 잘못과 실수뿐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꽤 많은 존재들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모르고 산다.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사는지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실수가 나오고 잘못이 번진다. 그게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악순환이다. 그렇게 작은 순환고리들이 모여 큰 반경을 이루고 꽤 견고한 틀로 짜여진 세상이 이렇게나 불어났다. 우리 지구는, 그런 무수한 존재들로 이뤄진 미완의 상태다. 더럽고, 약하고, 거짓되고, 모멸적이다.

여기까지 생각할 때가 많다. 아름다운 존재를 보기 전에는,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운다. 이 생각을 지워주는 영화 한 편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래, 존재하는 것들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여지가 많다. 라고. 그리고 돌아보면, 잘못된 것들을 바꾸기 위해 극복하는 존재들도 많다. 라는 것도. 그것을 외면하는 것 또한, 내 실수일 수 있다고.
 
어떤 것이 반드시 아름다워져야만 하는 법은 없다. 그냥, 사는 것뿐이지만 우린 그 아름다움으로 하루, 한순간을 꽤 괜찮게 살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그렇게 무거운 곳만은 아니라는 걸, 또 다른 존재들을 통해 느낄 때가 온다. 조지 6세가 로그와 부인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꼈듯 말이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경계가 심하다. 하지만 그랬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한 번 진심을 느끼면 또 굳건히 믿기도 한다.

왕을 가르쳤던 자격증도, 학위도 없던 괴짜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왕을 왕처럼 대하지도 않고 그저 하나의 존재로, 한 영혼으로 대했던 인간. 어쩌면 인간은, 내가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존재 상태로 돌아갈 수 있어야만 아름다워질 여지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우린, 존재로 왔고 다시 무존재로 돌아갈 것이다. 크게 나눠보면 그 두 가지가 전부다.
 
 영화 <킹스 스피치> 포스터. <킹스 스피치>는 리더에게 정말 필요한 덕목이 '언변'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지도자는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할까.

ⓒ (주)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조지 6세가 왕이 되기까지의 노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든 그것은 존재 위에 세워지는 것이고 내 존재를 항상 생각할 줄 알아야, 그 무엇이 되려는 노력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국가 위에 선, 국민을 등에 업은 지도자라면,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치는 순간이 늘 있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많은 존재를 생각해야 하는 자리는 그냥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아닌 존재 중에 아름다운 인간을 봤다. 인간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과 미숙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머쓱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도와 그것을 극복하게 해주려는 사람. 그런 인간이, 연약해도 사랑스럽다는 걸 느끼게 해준 영화다. 영화 속 조지 6세와 로그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아주 잘했어요 버티."
"고맙네 로그. 수고했소, 친구."
덧붙이는 글 특히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전쟁 상황으로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게 연설을 하는 도중, 암실에서 조지6세 앞에는 로그만이 서 있었다. 그만큼 조지6세는 로그를 믿었고, 의지했고, 그로 인해 변화했다.
영화 킹스스피치 콜린퍼스 조지6세 라이오넬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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