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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중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휴학을 하고는 2013년 5월부터 시골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이때부터 근 5년간 방문요양서비스를 받으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줄줄 새는 현장과 여러번 마주쳤다. 이 글은 그 목격담이다(주의: 이 글은 내가 겪은 일만 쓴 것이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모든 요양기관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 기자말  
 
 
폐가의 창고
▲ 창고 폐가의 창고
ⓒ 수확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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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물어져가는 창고에 엄청난 재화가 들어있다면 도둑이건 아니건 너나없이 손을 집어넣어 그 돈을 빼가려 하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때는 도둑을 비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창고를 고쳐야 한다.

- 창고가 허술해서 물건이 도둑맞고 있다고 창고지기에게 알렸는데 창고지기는 듣는 척도 않는다. 창고지기가 도둑도 잡지 않고 창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줄줄 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①]
밑빠진 요양보험 급여, 난 불순한 상상을 한다


앞 기사에서는 도둑을 신고해도 잡지 않는 공단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수급자의 좁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몇 가지 시스템을 살펴본다. 

 유명무실한 제도

얼마 전 부정이 적발된 사립유치원을 공개할 때 유치원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은 공개되었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경우 관련법이 있는데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 법은 부정수급자 공표제도다.
 
부정수급자 공표제도에 의한 공표대상기관 및 공표사항. 법이 있어도 의지가 없으면 소용 없다.
 부정수급자 공표제도에 의한 공표대상기관 및 공표사항. 법이 있어도 의지가 없으면 소용 없다.
ⓒ 노인장기요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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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청구금액이 1천만 원 이상이거나 급여비용 총액의 10퍼센트 이상인 경우 심의를 거쳐 그 기관을 공표할 수 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해보았다. 
 
법이 있지만 실제 공표한 내역을 조회해 보면 공표된 기관은 하나도 없다.
▲ 명단공표화면 법이 있지만 실제 공표한 내역을 조회해 보면 공표된 기관은 하나도 없다.
ⓒ 노인장기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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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건도 공개된 것이 없다. 기간을 1년으로 검색해도 한 건도 없고, 10년으로 검색해도 단 한 건도 없다. 이유를 알아보았다.

공단에 확인했더니 공표할 기관 명단을 확정한 후 지자체나 담당부서에서 공표요청을 했을 때 공표한다고 한다. 임의로 자치 단체 한군데에 확인을 해봤더니 법조항에 "공표해야 한다"가 아닌 "공표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공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은 지자체나 담당기관에서 법조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고백일 수 있다.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단 한 건도 공개하지 않은 데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같은 이익단체의 의지가 작용한 것일까? 실제 요양기관을 운영했던 사람들이 지자체의 군의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는 것 같다. 

지자체와 담당기관은 여러가지 말을 하겠지만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 공개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주인이 나서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 지난기사에 대한 독자의 댓글 주인이 나서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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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무도 나서서 화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술한 시스템은 그 뿐이 아니다.

청구서가 없다

일을 해주고 돈을 받으려는 사업자는 정식으로 청구서를 보낸다. 그러나 방문요양은 대체로 그런 청구서가 없다. 보통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액수만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급자들이 청구서를 받아도 부정수급여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수급자는 전체 급여의 15퍼센트(경감을 받으면 7.5퍼센트, 6퍼센트 또는 면제 0퍼센트)를 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서 일한 날짜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며칠분을 더 청구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단은 시간표(또는 달력)를 눈에 띄는 곳에 항상 부착하게 하고 수급자들이 일한 시간을 꼼꼼히 기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또 보호자에게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보호자가 없는 치매환자, 글을 못 읽거나 시력이 나쁘거나 숫자에 약한 노인들은 공단에서 더 신경을 써 관리하고 이웃들과도 소통을 해야 한다.

이중청구 막아야

정확한 청구서를 받았다고 해도 부정수급은 생긴다. 수급자에게는 일한대로 정확히 청구했지만 공단에는 그보다 더 많은 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 다음 사례를 보자.

수급자 A가 공단에서 요양급여 내역을 확인한 결과 요양기관은 201*년 *월 1,120,400원을 기준으로 A에게 자기부담금을 청구했고, 공단으로부터는 1,216,410원을 받아갔다. 다음 달은 A에게 935,000원을 기준으로 자기부담비를 청구했고, 공단으로부터는 1,169,780원을 받아갔다.

201*년 *월의 부정수급액 = 1,216,410원(요양기관이 공단에서 받은 금액)-1,120,400원(실제 일한 청구내역) = 96,010원(약 8.6퍼센트)
다음달의 부정수급액 = 1,169,780원 - 935,000원 = 234,780원(약 25퍼센트)

실제 이런 부정수급이 일어났지만 A는 공단에서 급여내역을 확인하기까지는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이 점이 시스템의 맹점인데 공단은 장기요양기관이 공단에 청구한 내역을 수급자에게 발송하지 않는다. 일부러 공단을 찾아가 요양급여내역을 발급받지 않는 이상 부정수급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방지법

이런 유형의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공단에서 급여내역을 다달이 또는 정기적으로 수급자에게 발송하면 된다. 동시에 보호자들에게 이메일로 통지를 하고 인터넷으로 조회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릴 필요가 있다(인터넷으로 조회하는 방법도 많은 문제가 있다. 뒤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한 달분의 급여를 나누어 지급한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역서에는 월별 총액이 나와 있지 않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없다.
▲ 요양급여내역 한 달분의 급여를 나누어 지급한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역서에는 월별 총액이 나와 있지 않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없다.
ⓒ 수확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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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단에서 급여내역을 받아도 맹점이 있다. 위 사진은 A가 공단에 찾아가 받은 급여내역이다. 한 달 분의 급여내역이 쪼개져 있어서 그 달의 총액이 얼마고 자기 부담금 총액이 얼마인지 한눈에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자료를 준다는 건 너무 불친절하지 않은가? 계산기를 들고 일일이 계산해 보라는 건가?

 신고 들어오면 그 이전 부정수급도 조사해야 상식   

공단에서 수급자에게 청구서를 전혀 안 보내는 건 아니다. '장기요양급여 안내제도'라는 게 있다. 공단에서 임의로 선정된 일부의 수급자에게 최근 3개월간의 내역을 보내 불일치가 있으면 신고하도록 안내하는 제도다. 
분기당 한번씩 선정된 수급자에게 발송된다.
▲ 수급자에게 발송되는 급여내역 설명 분기당 한번씩 선정된 수급자에게 발송된다.
ⓒ 보건복지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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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동안 방문요양을 받았지만 한 번도 이런 안내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단에 문의를 해봤다. 분기당 1회 선정된 일부 수급자에게 안내서를 발송하는데 2017년 기준 수급자가 749,809명이었는데 1분기에 44,724명, 2분기에 78,414명, 3분기에 32,714명, 4분기에 29,083명에게 보냈다.
 
환수금액이 많지 않다.
▲ 장기요양급여내용확인서에 대한 회신 및 환수금액 환수금액이 많지 않다.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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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84,935건을 보내 40건의 부정수급이 적발되었고 환수 금액이 360만 원가량이었다. 이 경우 회신 1건당 평균환수금액을 계산해보면 9만 원이다. 환수금의 40퍼센트를 포상금으로 받으므로 회신한 사람은 평균 36,000원을 받은 것이다.

환수금이 평균 9만 원뿐인 이유는 안내문에 3개월분의 내역만 통지했기 때문이다. 3개월분의 부정수급은 표본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고된 기관에 대해 추가조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3개월 내역에서 부정수급이 발견되면 더 많은 부정수급이 거의 당연시되기 때문에 추가조사를 의무적으로 해야겠지만 '의뢰할 수도 있다'는 점은 너무 자의적이다.

또한 추가조사를 해서 더 많은 금액을 적발해도 포상금은 신고된 3개월 분만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수급자 입장에서 신고할 만한 동기는 매우 부족해 보인다. 업무 특성상 요양기관과 수급자는 매우 가깝기 때문에 용돈 수준의 포상금을 위해 큰 갈등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도를 대폭 수정하든지, 또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공단에서 모든 수급자에게 급여내역을 다달이 또는 정기적으로 발송하면서 신고를 유도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방지효과가 있을 것이다.

신고 시스템과 신고자 보호

신고자에 대한 보상과 신분보장이 철저히 지켜져야 신고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신고를 위해서는 신고자의 신분보장이 필수다.
▲ 신고자 포상금과 신분보장 신고를 위해서는 신고자의 신분보장이 필수다.
ⓒ 장기요양기관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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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단지 장기요양급여안내제도에 의해 회신된 신고자에게 평균 36,000원의 포상금이 지급되는 식은 너무 무성의하다. 위험부담에 비해 금액이 지나치게 낮다면 누가 신고를 하겠는가. 위 그림처럼 수급자나 그 가족, 일반인의 포상금 한도가 500만 원으로 정해질 이유가 없다. 신고하지 않았으면 사라졌을 돈을 신고를 통해 찾았다면 과감히 보상해주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더 중요한 건 그만큼 부정수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고 시스템. 이와 관련해 사례 하나를 요약해보자.

부정수급 -> 신고 -> 공단직원의 뭉개기 -> 소장에게 신고 -> 소장의 뭉개기

실제 사례다. 신고 후 한 단계라도 제대로 처리가 되었다면 이 기사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비리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고 그걸 막을 최소한의 시스템만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을 테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소장은 일처리를 하지 않고 인수인계도 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고, 새로운 소장이 왔다. 신고과정을 잘 알던 P는 새로 부임한 소장에게 이전 과정을 설명해주고 공단직원 F를 다시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장은 "잠깐만 기다려봐요"라고 말하더니 잠시 후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P : 누구세요?
? : F입니다.
P : 예? 소장님 좀 바꿔주세요.

P는 어이가 없어 F를 왜 자기한테 바꿔 주냐고 따졌다. F의 부정행위 여부도 조사해달라고 했더니 그 사람을 바꿔준 것이다. 만약에 최초 신고자의 신분이 직원 F를 통해 피신고자에게 유출되었다면 P의 정보 역시 유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게 아니어도 P가 F를 고발했다면 F에게 P가 고발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F를 배제한 상태에서 조사를 해야 하지 않는가? 새로 부임한 소장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소장 : 나 혼자 일할 수도 없는 거고 어떻게 직원이 모를 수 있습니까?

맞는 말인가? 그리고 소장은 나중에 한 마디 더 주옥 같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직원+소장 : (부정수급에 대해 신고하면) 여기는 지역사회다 보니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 소문이 나요. (누가 신고했는지) 당사자들은 감은 잡아요.

신고를 장려하여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나서서 신고하겠다는 사람은 다시 철회를 해야 하는 건가?

P는 신고를 뭉갰던 공단 직원에 대해 유착 및 신고자정보 유출에 대한 조사를 정식으로 청구했다. 최근에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확인해 봤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 결과 직원과 복지센터(요양기관) 간 유착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황이나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신고를 묵살한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도 취해지지 않았다. 신고를 여러 차례 하고 몇 달간 마음고생을 했으며 신원정보가 새나갔을까봐 불안해하던 신고자 A와 그에 대해 따졌던 P가 할 일은 '양지' 뿐이다.

*양지(諒知-살피어 알다): "그런 줄 알아라"라는 뜻임

통지서의 내용을 나름대로 번역해봤다.

"직원 F는 물론 공단 직원들이 앞으로 신고를 뭉개거나 신고자 정보를 유출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런 일이 또 발생하더라도 그런 줄 알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사례

앞의 사례에서 A는 공단에 가서 급여내역을 발급받았다. 그 날이 8월이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몇 달 후에 다시 급여내역을 확인해봤더니 놀라운 마술이 생겼다고 한다. 8월부터는 부정수급이 사라졌다. 어찌된 일일까?

첫째, 급여내역을 발급만 하면 저절로 부정수급이 사라진다.
둘째, 텔레파시가 통하거나 우주의 기운을 통해 A가 급여내역을 발급한 사실을 요양기관이 알았다. 그래서 이후에는 행동을 조심했다.
셋째, A가 급여내역을 받아갔으니 조심하라고 공단의 담당직원이 언급(좋게 말하면 경고)을 주었다. 

신고를 묵살한 직원을 조사해달라고 했더니 직원을 바꿔주는 소장의 친절함,
급여내역을 발급받았더니 저절로 부정수급이 사라지는 신비한 현상

이런 일은 이 지역에서만 생기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공단 직원들은 한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게 아니라 여러 지역으로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대한민국 전체가 이럴 리는 없다. 다만 혹시라도 대한민국의 건강보험공단이 허물어질 듯한 위험한 창고는 아닌지, 앞다투어 꺼내가는 사람이 임자인 건 아닌지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노인에겐 매우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노쇠하면 음식섭취도 어려워지고, 체력이 약해지고, 면역력이 부족해 각종 병에 걸리기 쉽고, 점점 더 거동이 불편해지고, 쉽게 넘어지고, 한번 다치면 잘 낫지 않고, 그러다 누워서 지내면 욕창이 생겨 밤낮으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고, 기저귀를 차도 대소변이 흐르거나 하면 피부병도 생기게 되고.

40대, 50대만 되어도 시간이 금방 흘러서 어느 순간 65세가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요양원에 가 있거나 방문요양을 받고 있게 된다. 부정수급을 말할 시간에 제대로 된 요양서비스를 연구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할지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3편에서 계속)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는 '비밀의 문'이 있다

태그:#노인장기요양보험, #허술한 시스템, #부정수급장기요양기관공개, #신고자보호, #시스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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