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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죄 짓지 말자

18.11.06 10:59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친구가 전화로 어디냐고 묻길래, 허리가 아파서 물리치료 받으러 왔다고 답했다. 다짜고짜 친구는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며 구박을 해댔다. 나는 운동하다 다쳤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운동은 똑바로 하는 게 중요하고, 근력 운동만큼 유연성 운동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별안간 요가의 위대함을 연설하기 시작했다. 6개월 전부터 요가를 다니더니, 요새 아주 요가 전도사가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스타그램에 '#요가남자'로 해시태그를 한 뒤 자신이 요가 동작을 구사하는 사진을 올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요가 간증에 열을 올린다.
 
요가를 하면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든지,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신체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점검하다 보면 욕심과 고민이 식은 고기국물 위에 둥둥 뜬 기름 찌꺼기마냥 떠오른다나 뭐라나.
 
확실히 지난 반년 동안 친구의 몸에 낀 기름은 육류 무게 단위로 말하자면 10근 가량이 빠졌다. 주중엔 요가, 헬스, 수영, 달리기, 주말에는 등산을 한다. 최근 20년간 감춰졌던 복근이 튀어나와서 그런지 인스타그램에 '#요가스타그램'과 함께 '#몸스타그램' 태그를 달고 자신의 상반신 나체 사진을 부지런히 올리고 있다.

친구는 모른다. 자신의 건강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난 정말이지 대문에 걸린 문패 마냥 얼굴 한 가운데 스마트폰을 들고, 3일 간 변비에 시달린 사람이 변기에 앉을 때처럼 배에 잔뜩 힘을 준 상태에서 찍은 친구의 나체 사진을 보는 게 너무 괴롭다. 그리고 친구의 요가 간증은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사람들이 말을 걸을 때만큼 거부감이 생긴다.
 
이 친구에게 운동은 곧 건강이고, 아프다는 건 곧 운동 부족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친구와 함께 운동과 건강을 주제로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최고의 과학기술로 엄청난 운동량을 자랑하는 운동선수의 경우 일반 사람들보다 아픈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물으면서 농구선수 출신인 서장훈과 축구선수 출신 안정환이 방송에 나와 온 몸에 성한 관절이 없다고 말한 영상을 증거자료를 내밀었다. 친구는 비교 대상이 너무 극단적이라면서 자신이 말하는 운동건강론은 선수가 아닌 일반 사람에게 해당 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에 질세라 나는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사람 열 명 중 일곱 명은 운동을 하다 부상을 당해서 보통 2주가량 치료를 받고, 부상을 당한 사람 중 열의 여섯은 운동을 그만 두거나 전보다 소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한다는 '스포츠안전사고 실태조사' 결과를 조목조목 읊었다. 허나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에게 올해 한국의 배추 가격이 금값이어서 김장 걱정을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요가남자' 이르길 자기처럼 여러 종목을 운동해서 근력, 유연성, 심폐지구력 골고루 야무지게 증진시키면 부상당할 일이 없다며 또다시 '도를 아십니까'마냥 '운동을 아십니까'를 시작했다. 나는 백기를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아픈 사람에게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자기관리를 소홀히 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병원에서도 처방을 받을 때 약 잘 챙겨먹는 것만큼 강조하는 처방전은 바로 운동이다. 운동은 건강에 탁월한 효과를 주지만 반대로 운동 때문에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초중고 체육수업에서 교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운동 효과 보다 다치지 않는 것(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강은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몸이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만,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몸이 아픈 건 아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운동은 운동 자체가 목적이 되는 운동이다. 건강에 연연하지 않고 운동을 하는 순간에 기쁨을 만끽하는 운동을 뜻한다. 그러니까 몸이 아픈 사람한테 운동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고 치료를 잘 받으라고 말하자.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잘못한 건 아니니까. 운동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야 말로 운동에 죄짓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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