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치기> 메인포스터 영화 <밤치기> 메인포스터

▲ 영화 <밤치기> 메인포스터 영화 <밤치기> 메인포스터 ⓒ 무브먼트


01.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영화에 기대하는 기본적인 구조를 벗어난 영화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뜬금없이 영화가 시작된다거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급작스런 장면의 전환이 일어난다거나, 열린 결말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지점의 이야기들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갑자기 끝난다거나 하는 것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전반부에서 펼쳐놓은 요소들을 모두 회수하여 하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집중하는 일반 상업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충격일 수도 있는 장면들이다.

정가영 감독의 이번 작품 <밤치기> 역시 유사한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시나리오 자료 조사를 핑계로 호감을 느끼던 진혁(박종환 역)과 만난 가영(정가영 역)이 키스와 자위, 첫경험 등의 수위 높은 질문들을 쏟아내던 중 '오빠와 함께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라는 대사로 속내를 드러낸 뒤 맞이하는 두 사람의 관계적 결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되는 대화, 그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것이 연출된 장면인지 실제 장면인지 헷갈릴 정도다.
 
영화 <밤치기> 스틸컷 영화 <밤치기> 스틸컷

▲ 영화 <밤치기> 스틸컷 영화 <밤치기> 스틸컷 ⓒ 무브먼트


02.

'원나잇 무비 토크', '거침없이 날리는 욕망의 속사포'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이 영화가 보여주는 수위를 고려하지 않는 성역 없는 대화와 동등한 관계에서 시작되는 자유분방함은 분명 이 영화의 포인트다. 당돌하고 도발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주목을 받았던 첫 연출작 <비치온더비치>(2016)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을 수식하는 단어가 도발적이라거나 유혹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들로 수식되기만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다.

두 장편은 물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 한국 단편경쟁에 출품해 진출한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만 보더라도, 정가영 감독의 힘과 매력은 그녀만의 특별한 시야와 개성,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자유롭지만 잘 짜인 연출력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밤치기>를 연출하게 된 계기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의 비참한 밤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목적을 어떤 기교도 없이 정확하게 달성해낸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들지만 가볍지 않은 까닭이다.

03.

정가영 감독의 작품에서 극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언제나 대화와 반응이다. 약간의 디렉팅도 없었을 것만 같은 인물들의 행동과 대화를 보고 있으면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존재하는 모호함이 스크린 안팎의 온도를 동일하게 맞춰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영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진혁의 반응이, 또 반대로 진혁의 물음에 응답하는 가영의 반응이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들 또한 마찬가지. 계속해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이런 연출이 가능한 것은 지금까지 연출한 모든 작품에서 정가영 감독이 각본과 연출, 연기를 모두 스스로 해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극 중 자신의 도발적인 대사들이나 사람을 당황시키는 말들을 잘 받아주는 상대의 역할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오롯이 공감한다. 그 말은 곧,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상대 배우를 만날 수만 있다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특별한 디렉팅 없이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대로 극을 직접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종환 배우를 만나 이번 작품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영화 <밤치기> 스틸컷 영화 <밤치기> 스틸컷

▲ 영화 <밤치기> 스틸컷 영화 <밤치기> 스틸컷 ⓒ 무브먼트


04.

작품의 흥행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에서 벗어나 정가영 감독만의 스타일이 국내 영화 산업에 던지는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영화 산업은 소위 예술영화, 독립영화, 저예산영화로 불리는 섹션의 작품들에 제대로 지원해주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상업영화에는 자본이라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나.

얼마 전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감독으로부터 예산의 한계 때문에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어야 할 '달리는 장면'조차 생각해 두었던대로 모두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에 없던 신선함, 괴물 같은 신인 연기자의 발굴, 눈물이 마르지 않을 감동과 같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았나. 재미 없을 테니 그런 것이라도 해야지. 하는 프레임을 씌워놓고.

그런 지점에서 정가영 감독이 지금 쌓아가고 있는 필모그래피에는 신선함을 넘어 새로운 방향성과 색깔이 분명히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정가영 감독이 언제까지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자신의 색을 뚜렷이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 <밤치기>는 정가영 감독이 왜 지금 독립영화 섹션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인지를 알게 만들어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참고 : 정가영 감독은 지난해 열린 제 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 <밤치기>와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를 장편 부문과 단편 부문에 동시에 진출시킨 바 있다. 또한, <밤치기>는 감독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영화 무비 밤치기 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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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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