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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설립자의 비리를 고발한 임미화 예원유치원장이 2일 오후 경기도 하남 예원유치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사립유치원 폐원 사태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가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의 유치원 운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의 비리를 고발한 임미화 예원유치원장이 2일 오후 경기도 하남 예원유치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사립유치원 폐원 사태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가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의 유치원 운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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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유치원은 아니잖아요. 아이들과 교사들이 있어야 유치원이죠."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주택가에 있는 예원유치원은 최근 설립자의 일방적인 폐원 통보에도 신입 원아가 계속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원생 60명에 불과한 작은 사립유치원이지만 2일 현재 입소 대기신청자가 43명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유치원이 주변 학부모들에게 인기를 끄는 건 지난달 터진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때문이다. 이 유치원도 이미 지난 4월 현직 원장의 내부 고발로 경기도교육청 감사 결과 방과후수업 지원비 횡령 등 비리가 드러나 지원비 3천만 원 환수 조치까지 당했다. 하지만 내부 고발 직후 학부모들이 교사들과 함께 설립자에 맞서면서 유치원 교육과 급식의 질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한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운영 주체가 되는 '부모협동형 유치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설립자의 일방적인 폐원 통보와 잇따른 원장 해고 시도에도 학부모들이 자신만만한 이유다.

사립유치원 내부 비리를 고발해 학부모들을 일깨운 임미화 예원유치원장을 지난 2일 오후 예원유치원 교무실에서 만났다. 임 원장은 지난달 말 설립자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이미 새 원장까지 부임한 상태였지만, 평소처럼 유치원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나 대부분 귀가하고 방과후 수업중인 몇몇 아이들만 남았지만 임 원장은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졸업사진 촬영 일정 등을 잡느라 1시간 남짓한 인터뷰조차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웠다.

사립유치원 비리 고발한 CEO 원장에게 응답한 학부모들
 

사립유치원 교사 '28호봉'(28년차)인 임 원장 역시 한때는 사립유치원 설립자였다. 전북 전주에서 사립유치원을 설립해 7년간 운영하다 재건축 때문에 정리한 뒤 외국 학교를 지원해 나갔다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CEO 원장(고용 원장)을 하고 보니 1970년대 새마을 유아원도 이렇진 않겠다 싶었어요. 정부에서 22만 원 (학부모) 지원금도 있고 교사 처우개선비, 원장 수당도 지원되는데도 유아교육의 질은 더 떨어져 있는 거예요. 누군가 칼질하고 있구나. 이렇게 가족들끼리 해먹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4월에 비리를 신고하게 됐어요. 비리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사립유치원을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선생님 인권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그대로 볼 순 없으니 도와달라고 한 거예요."
 
지난 2월 예원유치원에 부임한 임 원장은 지난 4월 방과후 수업비 횡령을 비롯해 급식 비리, 가족 채용 비리 등 유치원 내부 비리를 고발했다. 그러자 학부모들이 응답했다. 설립자는 내부고발 직후 임 원장에게 해고를 통보했지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예원유치원 학부모들은 원장 편에 서서 설립자와 맞섰다. 결국 설립자는 학부모들에게 사과했고 유치원 운영에서 손을 떼고 원장 해고 통보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설립자는 학부모들에게 일방적으로 폐원을 통보했다. 유치원 건물이 낡아 보수공사가 필요한데 비용을 대기 어렵고, 설립자 건강 문제로 유치원을 계속 운영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폐원 통보 직후 공교롭게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터졌지만,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종합대책을 발표한 다음날(10월 26일) 설립자는 또다시 임 원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설립자 폐원 통보에 부모-교사 손잡고 '부모협동형 유치원' 모색

때마침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학부모로 구성된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우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시설을 빌려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 운영규정)을 바꿨다. 지금까지 사립유치원은 다른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설립자가 유치원 건물과 대지를 모두 소유해야 설립할 수 있었다.
 
"정부 발표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10월 말부터 기적적으로 시행령이 개정돼서 탈출구가 생겼구나 싶었어요. 6살 아이가 와서 다른 유치원은 가기 싫다고, 선생님들이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울었어요. 그래서 학부모들과 뜻을 모으기로 한 거예요."
 
맞벌이 가족이 많아 유치원이 문을 닫으면 마땅한 대안이 없던 예원유치원 학부모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당장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달 초 '부모협동형 유치원' 설립을 결의했고, 현재 정부와 하남시, 경기도 등을 상대로 임대시설 등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사립유치원이 폐원하면 아이들을 두부조각 내듯 주변 다른 병설유치원에 나눠 보내려 하는데, 병설은 종일반도 운영 안 하고 아이들이 들어갈 자리도 없어요. 부모들이 정부지원금 빼고 사립유치원 예산 55%를 직접 부담하는 현실인데 대안학교 같은 사립유치원이 왜 안 나오겠어요. 예원 학부모들은 사회적 협동조합에 관심 많아 스스로 주체가 되는 유치원을 꿈꾸고 있어요."
 
예원유치원 학부모들도 5일 입장문에서 "협동조합은 의사결정의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므로 비리 문제가 사전에 차단되고 동시에 설립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면서 "무엇보다도 현재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뭉치는 것이어서 교육공동체가 보전된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공공건물을 임대해주면 인테리어나 모든 것들을 학부모 단체가 세팅하고 협동조합은 '에듀파인'(사립유치원으로 확장 예정인 국가회계시스템)도 필요 없는 투명한 사립유치원 운영 모델을 만들 거예요. 비싼 사립유치원 원비도 낮춰볼 생각이에요. 복지관, 노인복지시설 등 시가 가진 시설이 많더라고요. 빈 곳이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가서 채워줘야죠. 건물이 유치원은 아니잖아요. 아이가 없고 교원이 없으면 건물이 무슨 소용이에요. 아이들이 아프다고 하고 선생님과 떨어지기 싫다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무시해선 안 되죠."
 
임 원장은 그동안 사립유치원 설립시 건물과 토지 소유를 의무로 한 게 결과적으로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의 기득권만 보호해 왔다고 주장했다. 설립자가 원장을 겸하고 이른바 '가족 경영'을 하면서 온갖 비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이 과거처럼 건물을 소유하고 설립자 겸 원장 체제로 가면 계속해서 '인 마이 포켓'(횡령, 착복)하고 '우리가족 한마당 잔치(가족 경영)'처럼 돼버려요. 설립자가 원장을 겸할 수 있는 맹점을 이용하기 때문이죠. 앞으로 'CEO 원장'(고용 원장)이 더 많아져야 해요. 사회적 협동조합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들이 직접 원장이나 교사도 채용할 수 있게 돼요."
 
"사립유치원 교사 인권 침해 심각... 설립자들이 블랙리스트 만들어"
 
사립유치원 설립자의 비리를 고발한 임미화 예원유치원장은 "협동조합은 의사결정의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므로 비리 문제가 사전에 차단되고 동시에 설립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면서 "무엇보다도 현재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뭉치는 것이어서 교육공동체가 보전된다”고 설명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의 비리를 고발한 임미화 예원유치원장은 "협동조합은 의사결정의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므로 비리 문제가 사전에 차단되고 동시에 설립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면서 "무엇보다도 현재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뭉치는 것이어서 교육공동체가 보전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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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립유치원이 학부모와 아이들만 볼모로 삼은 건 아니었다. 사립유치원 교원들이 설립자에게 당한 인권 침해 상황도 심각하다.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요. 설립자들이 '블랙리스트' 만들어 다른 데 못 가게 막겠다고 하니 정의로운 일을 하면서도 나가면 두렵고 떨리는 거죠. 저도 블랙리스트에 올랐어요. 유치원 설립하면 되지만 이런 구조에서 하고 싶진 않아요. 정작 소리내야할 교사들은 설립자 겸 원장이 두렵고, 설립자는 교원회의조차 못하게 해요. 노조라도 만들까봐. 여긴 정말 폐쇄집단이에요."
 
임 원장이 지난 4월 온갖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부 비리를 고발한 것도 교사들의 인권 침해 때문이었다. 심지어 교사가 성희롱 당하는 장면까지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제가 왔을 때 교사들 출근하면 휴대폰을 다 뺏었어요. 자기들 비리 찍을까봐, '오병이어의 기적' 만드는 거 물증 남길까봐 그런 거죠. 제가 와서 그거 다 풀어줬어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우리가 정당하게 가르치면 아이들이 오게 돼 있다고 했어요. 실제 아이들 계속 오잖아요."
 
임 원장 자신도 며칠 전 해고 통보를 받을 때 원장 직인을 뺏으려는 설립자 쪽과 실랑이를 벌이다 손가락 골절상을 당해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신입 원아가 넘치면 폐원을 못하니 그걸 막고 있어요. 그래서 저를 어떻게든 내보내려는 거예요. 지금도 신입 원아들이 봇물 터지듯 오고 있어요. 전화해서 '여기 방송에 난 유치원이에요? 그럼 믿고 보낼 게요' 그래요."
 
학부모들이 지켜주는 '행복한 원장님'... "하남이 시작점 되길"
 
임미화 유치원장은 “협동조합 형태의 유치원 운영을 위해 지자체가 복지관, 노인복지시설 등 공공건물을 임대해주면 좋겠다”고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임미화 유치원장은 “협동조합 형태의 유치원 운영을 위해 지자체가 복지관, 노인복지시설 등 공공건물을 임대해주면 좋겠다”고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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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 지켜주셔도 괜찮아요. 교육청에서 계속 (확인)전화 받고 있어요."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말미에 한 학부모가 전화를 걸었다. 임 원장은 혹시라도 자신이 해를 당할까봐 원으로 직접 찾아오겠다는 학부모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임 원장이 부상을 당하고 며칠 전 한 방송에서 설립자가 원장에게 나가라고 외치는 영상이 나간 뒤 학부모들 경각심이 더 커졌다.
 
"설립자가 재택 근무하라고 대기발령했는데도, 가족음악회 준비하면서 학부모에게 가족 합창해달라고 기쁜 마음으로 전화하는 이유는 엄마들이 저를 지켜주고 있어서예요. 이젠 학부모들이 교육당국까지 찾아가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학부모의 열성에 화답하듯 임 원장도 시장이든, 대통령이든 만나서 '부모협동형 유치원' 설립에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예원이 모티브(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어요. 하남이 시작점이 돼서 건강하고 바르게 먹이고 좋은 교원들이 질 좋은 유아교육을 해야죠. 언제까지 매일 속이는 교육, 거짓말하는 설립자, 수박 한 통으로 50명을 먹이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곳이 나오면 안 되죠. 이젠 교육 프로그램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원장이 좋아서 보내는 시절은 끝났어요. 교육의 질을 고민할 때가 됐어요. 이제 사립은 외국처럼 정부 지원 받지 말고 순수한 사립으로 가고, 대신 맞벌이를 위한 공공형 유치원을 많이 늘리고 교육의 질도 높여야 해요."
 
스스로 '행복한 원장'이라는 임 원장이 꿈꾸는 건 이젠 유치원 설립자도 원장도 아닌 평범한 교사였다.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임 원장은 조심스레 자신의 역할을 내년 3월 '부모협동형 유치원' 설립 시점까지로 보고 있었다.
 
"빛이 드러나면 어둠이 사라지잖아요. 설립자와 같이 있으면서 나도 가짜가 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전 뼛속까지 유치원 교사예요. 할머니 돼도 종일반 교사 하고 싶어요. 지금은 정말 아파하는 사람들 있으니까 돌파구 찾고 있고요. 전 우리가 파장을 일으켰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유사한 사례가 다른 지자체에도 있을 거예요.

태그:#사립유치원비리, #예원유치원, #임미화원장, #부모협동형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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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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