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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부터 1박 2일간 남북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연대 및 상봉대회에 참석한 박도 시민기자가 생생한 참가기를 보내왔습니다. 남과 북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민화협 상봉대회는 어떤 일정으로 진행됐는지 전해드립니다. [편집자말]
 금강산 삼일포(2018년 11월 4일 촬영분).
 금강산 삼일포(2018년 11월 4일 촬영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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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김홍걸의 '금강산 연설', 온몸이 저릿했다>에서 이어집니다.)

[둘째날] 오랜만에 들어보는 '개 짖는 소리'

2018년 11월 4일 새벽 3시 40분에 잠에서 깼다. 지난밤 만찬 때 축배 또는 건배로 평양소주, 대동강 맥주, 포도주 등을 마셨지만 아주 가뿐했다. 감기 기운도 싹 가셨다. 맑은 공기 때문인가 보다. 북쪽 땅의 공기는 확실히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금강산관광특구 외에는 자동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곳 인민들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내게 배정된 방은 금강산 호텔 1106호였다. 2인 1실로 배정된 것으로 아는 데 혼자 썼다. 주최 측에서 배려한 듯했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베란다에 나가자 금강산 멧부리 위로 하늘의 별들이 유리알처럼 빛났다. 금강산의 새벽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 뒤 객실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다. 몇 개의 채널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주로 북측 선전 가요 프로그램이나 사극이었다.

곧 텔레비전을 끈 다음 지난 하루를 반성, 묵상했다. 그런데 창밖으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민가도, 군부대도 있다고 했는데 내 눈에도 보였다. 호기심 많은 늙은 아이는 카메라를 메고 산책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문득 2008년 박왕자씨 사건이 떠올랐다. 사이버 교육이나 안내원의 당부는 '돌출행동 자제'였다.

이전에 왔을 때는 금강산 온정리 야외온천을 즐겼는데 10여 년간 금강산 길 폐쇄 조치로 온천장이 준비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른 새벽 야외온천장에서 금강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극락이 따로 없었다.
  
마침 세면장으로 가자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졌다. '꿩 대신 닭'으로 그 물로 몸을 닦자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아침이 밝자 2층 연회장에 갔다. 조식은 뷔페식이었다. 반찬들과 여러 죽, 밥들이 아주 깔끔해 보였다. 반찬 곁에 적힌 이름이 예뻐 취재수첩을 꺼내 하나하나 기록해봤다. 

"무우초침, 고비나물, 청포무침, 김구이, 돼지장조림, 청어조림, 닭알장졸임, 모두부와 양념, 통배추김치, 무나박김치, 팥죽, 닭알죽, 녹두밥, 고구마밥, 배추장국, 미역국..."

죄다 조금씩 먹고 싶었지만 늘 가볍게 먹던 버릇이 있어 녹두밥과 배추장국 중심으로 먹었다. 입맛이 산뜻하고 마치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아침 식사 후 뜰을 산책하는데 그곳에서 아주 반가운 두 분을 만났다. 백범 김구 선생 맏손자 김진 선생과 백암 박은식 선생 맏손자 박유철 광복회장이었다. 마침 내가 이즈음에 집필하는 내용이 두 분 선대의 이야기라 그런저런 정담을 나눴다. 
 
 삼일포에서 바라본 금강산 멧부리(2018년 11월 4일 촬영분).
 삼일포에서 바라본 금강산 멧부리(2018년 11월 4일 촬영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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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포 관광

4일 오전 9시 30분, 삼일포 관광에 나섰다. 나는 출발 전 구룡연코스나 만물상코스 중 하나를 택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예상 밖으로 삼일포코스로 향했다. 아마도 300여 명에 가까운 대식구에다가 노년도 많고, 구룡연코스나 만물상코스는 많은 안내원을 배치해야 하기에 이 코스를 선택한 듯했다. 

가는 길에 북한 농촌의 늦가을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들판은 썰렁했다. 어디 남과 북뿐일까. 텅 비다시피 썰렁한 마을과 들판 사이로 띄엄띄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숲속의 삼일포소학교는 내 어린 시절 구미동부국민학교나 서부국민학교를 보는 듯 기와를 인 지붕에 단층 교실이 있었다. 장대로 만든 축구 골문이 있는 운동장은 소년 소녀들이 땅따먹기놀이나 고무줄놀이, 자치기 등을 하며 놀던 내 어린 시절을 연상케 했다.

삼일포 어귀 주차장에서 내린 다음 걸어서 삼일포로 향했다. 관광지는 사람이 붐벼야 제맛이 나는 데 사람이 없는 관광지는 더욱 썰렁하기 마련이다. 이미 10여 년 전에 두 차례나 둘러본 곳이었지만 새삼스러웠다.

북쪽 여성 안내원들은 모처럼 찾은 남쪽 관광객을 맞자 아주 신이 났다. 삼일포의 유래, 해금강 부부의 전설 등을 곰살맞게 들려줬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천이 아름답습니다. 산천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사람도 아름답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장의 사람들이 왜 북과 남으로 나뉘어 살아야 합니까? 하나 된 나라, 둘로 나눠진 민족이 하나로 될 때는 세계 최강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서로 손잡고 통일강국, 천하제일의 강국을 건설하지 않으렵니까?"

마침 유시춘 교육방송국 이사장이 여성안내원 말에 취해 그의 어깨를 다독거려줬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셔터를 눌렀다. 삼일포 쇠다리를 건너다가 김홍걸, 김영대 남북 민화협 지도자를 만났는데, 김홍걸 의장이 김영대 회장에게 나를 소개했다.

 
 민화협사진
 금강산 삼일포 안내원을 격려하는 유시춘 교육방송 이사장(사진 왼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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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삼일포 쇠다리 위에서 김홍걸 남측 민화협 의장, 박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영대 북측 민화협 회장.
 지난 4일 삼일포 쇠다리 위에서 김홍걸 남측 민화협 의장, 박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영대 북측 민화협 회장.
ⓒ 김선화(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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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러자 김 회장이 깜짝 놀라며 한마디 했다.

"스승님을 금강산에 모셔 오셨구먼요. 아주 보기에 좋습니다."

눈물

다시 온정리 금강산 호텔로 돌아와서 점심을 들었다. 아침과 비슷한 메뉴였다. 한복을 곱게 입은 안내원이 내 접시에 부족한 반찬을 이것저것 날라줬다. 그는 간밤 저녁에도 그랬다. 나는 떠나오면서 작별인사를 하자 그가 말했다.

"선생님,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되지요?"

나는 그 말에 얼른 대답하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는 한 마리 제비로 곧 봄이 오는 소식을 전하러 왔다. 분명히 이 땅에는 반드시 봄이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눈물도 흔해지는가?
 
 지난 4일 금강산을 안내한 북측 안내원들.
 지난 4일 금강산을 안내한 북측 안내원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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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낮 2시. 우리 남측 방문단 일행은 역순으로 입경했다. 북측사무소, 남측사무소에서 또 두 번의 소지품 검사와 통관 업무를 거쳐야 했다. 나는 옆자리에 있는 김홍걸 의장에게 부탁했다.

"금강산 방문사업을 재개한다면 남북으로 나눠진 사무실을 하나로 통합하도록 추진하게나. 언젠가는 이런 절차 없이 마음대로 관광할 수 있는 그날을 앞당겨 주기도 하고. 이 번잡한 절차가 싫어서 금강산 방문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네."

김 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금강산 행사가 치러진 이틀은 더없이 쾌청한 날이었다. 이는 하늘이 돕는 일로 거기에 땅이 좋았고, 방문한 남쪽 방문자들도 모두 흡족히 만족한 낯빛이었다. 4일 오후 4시, 남쪽으로 입경할 즈음, 옆자리 김 의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번 행사는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사람이 도와줬네. 더욱 자중자애하면서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한 민화협의 활동을 부탁드리네. 하늘에 계시는 자네 아버지가 큰 수고 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보낼 것이네."

4일 밤 9시 56분. 강남터미널에서 원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막 출발하려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김홍걸 의장이었다.

"선생님, 조심해 가십시오." 
 
 금강산(2007년 촬영분).
 금강산(2007년 촬영분).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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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만물상 기암괴석들(2007년 촬영분).
 금강산 만물상 기암괴석들(2007년 촬영분).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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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 일부 사진은 2007년 가족여행 때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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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