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계인은 정서적이거나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는 이들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동시에 '경계인'이라는 이름 아래 집결하여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목적지향적인 뜻을 담고 있어 이 명칭 자체가 하나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경계인을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인 '경계선 지능'이 처음으로 국내에 보도된 것은 2005년 9월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경계선 지능이란 용어조차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계선 지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경계인에게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오마이뉴스에 경계선급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그리고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기고할 예정이다. - 기자 주

[관련 기사]

☞ 덕후 이모티콘 작가로 데뷔한 경계선지능장애 청년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이다. 취업 빈곤, 헬조선이라 불리는 요즘 경계선급 어려움을 가진 청년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에서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10월 서울시가 발표한 '장애인자립생활지원 5개년 계획(2018~2022)'에도 중증 발달장애인 공공일자리 신설, 맞춤형 일자리 매칭 등 경제적 생활안정 지원을 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활발하다.

하지만 경계청년들은 그 혜택마저 받기 어렵다. 이들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 속하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취업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직장 내에서 심리적 어려움이 심해져 조기퇴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직 세상은 경계청년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어디에도 경계선지능을 가진 청년의 고용, 일자리 창출과 같은 그들의 자립을 돕는 정책은 보기 힘들다. 경계선지능 80만의 시대, 여전히 그들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런 상황에 경계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힘쓰고 있는 기관이 있다. 지난 기사에 소개한 '서울경계청년지원센터'이다. 2017년 10월에 3명의 직원과 함께 카페를 운영했고, 지금은 인턴 직원 2명, 추가 직원 1명을 고용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경계청년의 일자리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곳에서 1년간 근무하게 된 것이 기적이라는 한 청년을 인터뷰했다.
 
서울경계청년지원센터 배규하
 서울경계청년지원센터 배규하
ⓒ 배규하

관련사진보기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5세 배규하입니다. 현재 서울경계청년지원센터 활동가로 근무 하고 있으며, 센터 산하에 있는 경계인을 위한 소셜허브공간, 쉽게 말하면 만남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아자라마에서 바리스타 가디언(아자라마 카페 직원의 별칭)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경계청년지원센터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는 본인도 혹시 경계선급 어려움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자폐성 3급입니다. 지난번 기자님의 기사에 "경계인 그룹 중 하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로 지적인 어려움이 없고 가벼운 정도의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이들이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그에 따르면 저는 경계인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경계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긴 어려운 듯합니다. 관련 책을 보았는데도 저를 경계인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더라고요. 해당 여부는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 싶네요."

- 경계인, 이게 참 애매모호하죠. 경계인이라는 것 자체가 장애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두고 한 말인데, 장애 등급을 받으면 장애인으로 낙인찍힐까 두렵고, 또 받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걱정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목적이 명확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목적은 신체 혹은 정신 기능이 상당히 손상한 약자의 복지를 사회가 지원하기 위함입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낙인을 찍는 행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낙인이 아니라 복지지원을 위해 정해진 하나의 그룹 명칭으로 활용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경계인 청년 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해 주셨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현재까지 서울경계청년지원센터에서 2개 행사를 정례화했습니다. 홈 커밍 나이트(성장학교별 또는 스타칼리지 대안학교 동문회)와 경계인 청년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 홈커밍나이트 행사가 흥미롭네요. 경계선 지능 청년을 위한 모임, 페스티벌 이런 것들을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다른 곳에서도 이런 행사를 진행하나요.
"제가 확인한 바로는 없습니다."
 
홈커밍나이트 고민 코너 진행 중인 배규하
 홈커밍나이트 고민 코너 진행 중인 배규하
ⓒ 배규하

관련사진보기

 
- 경계인 청년들이 행사에 모여 주로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매달 주제가 다르지만 주로 근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장기 자랑을 진행해 서로의 개성을 뽐내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난달 홈커밍나이트 주제는 경계인 청년으로서 고민과 장래 희망 이야기하기 였습니다. 참여한 경계인 청년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경계인 청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함께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경계인 청년들은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감을 느낍니다."

- 경계인 청년들이 가지는 고민은 주로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다른 청년들과 똑같습니다. 주로 취업과 연애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 요즘 취업난이 아주 심각하죠. 하지만 규하씨는 여기서 아주 근무를 잘 하고 계신 것으로 보여요.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경계선 지능은 중증 장애가 아니라서 장애인 고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취업이 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현업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번에 제 생애 처음으로 근속 시간 1년을 초과 했습니다. 저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 축하합니다. 보통 1년 근무는 어렵지 않게 하곤 하는데... 제게는 참 놀라운 말이네요. 전 직장에서는 왜 1년 이상 넘기기 힘들었던 거죠.
"저는 극도의 분노 혹은 우울 끝에 전에 취업했던 여러 직장에서 퇴사를 반복했습니다. 누군가에겐 1년 근무가 쉬운 일이겠지만 제게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퇴사를 결코 쉽게 결정할 순 없었지만, 제 안의 감정들을 이기지 못해 결국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 그럼 아자라마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한 번 슬럼프가 있었고, 카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 퇴사를 결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카페 경영자 한 분이 제게 휴직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권고했습니다. 휴직 기간 해외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자꾸만 카페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결국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카페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제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시 힘을 내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경계선급 어려움을 가진 청년들은 간혹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문제로 인해 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나무라거나 안된다는 말 대신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함께 일하는 가디언들이 근무 시간을 함께 조율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더 애사심을 갖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상호존중하는 게 좋았습니다. 여기선 매주 '가디언 회담' 회의를 진행합니다. 운영, 행사, 메뉴, 매출 등 카페에 중요한 결정사항뿐만 아니라 경계청년지원센터의 행사도 가디언들이 주도적으로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진행합니다. 어떻게 하면 경계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도 고민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시켜서 한다, 명령한다와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스스로 제안하고, 함께 동의한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밴드와 같은 그룹형 SNS를 통해서 언제든지 불만이나 건의사항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최고결정자도 그런 이야기를 존중해줍니다. 누구의 제안도 경청하는 분위기가 좋습니다."
 
휴직 후 해외여행을 하며 촬영한 사진
 휴직 후 해외여행을 하며 촬영한 사진
ⓒ 배규하

관련사진보기

 
- 가디언 회담. 참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이 회담에서 결정된 것 중 가장 기억이 남는 게 있나요.
"'플라스틱 대 탈출 프로젝트' 캠페인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부에서 플라스틱 줄이기 정책을 발표하면서 아자라마 카페도 플라스틱 줄이기에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가디언들이 함께 모여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플라스틱을 카페 내에서 줄일 수 있는지 고민했고, 고객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가디언들이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써서 고객에게 나눠주었고, 종이빨대 100원 기부 캠페인 (플라스틱빨대 대신 종이빨대를 100원을 주고 구매하는 캠페인) 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1회용 잔과 빨대 사용 감소의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했습니다.

또 매번 메뉴페스티벌을 진행하는데 저는 그 행사를 무척 좋아합니다. 분기별로 1번씩 가디언들이 개발한 메뉴를 직접 선보이고 시음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지난봄에 제가 개발한 레몬 페퍼민트 차 판매가 결정되었는데 고객들에게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메뉴 페스티벌은 직원들의 상품에 대한 주체성을 길러주고 자존감, 책임감을 심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경계선 지능을 가진 청년 고용을 위해 사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누구에게나 꿈과 이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실감합니다. 직원이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난하기보다는 각자의 특성을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내가 이 사람과 오래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답변을 예상합니다. 결국 선택과 책임의 연속입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 최소한의 예의를 바랍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자' 라는 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많은 경계인 청년,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응원의 말이 있다면요? 
"삶의 고난과 역경을 혼자서 극복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혜와 용기의 연대를 제안합니다. 연대에서 얻는 감동과 교훈에 우리 진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이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태그:#경계선지능장애, #청년고용, #청년일자리, #아자라마, #자폐성장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