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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독립 출판물 이야기다.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독립 출판물 이야기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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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북적북적 동네 서점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딱히 동네 서점 창업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온라인 서점보다 오프라인 대형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는 내가 얼마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동네 서점을 둘러보다 생긴 호기심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늘 신간 소식을 챙겨보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우연히 들른 열 평 남짓 동네 책방에 진열된 책들을 보고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처음 들어보는 독립 출판사와 저자, 팬시용품처럼 소장하고 싶은 굿즈, 호기심을 자극하는 참신한 책 제목,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하는 발랄한 책 표지, 책의 진열 방식,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등 새로운 책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막연한 이유로 참여한 내게 마케팅부터 시작해서 독립 서점과 출판, 다양한 콘셉트의 서점 운영 등에 대한 강연은 동네 서점이 새로운 감성과 교감의 공간으로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특히 처음 접한 마케팅 교육은 정체된 사고와 감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어떻게 세밀하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놀라운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여려 사례를 들으니 마케팅도 단순 상술을 넘어 사람들의 욕구와 감성을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인상 깊은 강연자가 있었다. 그 강연자는 '일인 책 처방'이라는 차별화된 서점 모델을 기획하게 된 과정과 그것을 진행하기 위한 자신의 실험들, 효율적인 수익 모델의 다양화 등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눴다. 

예약제로 1시간에 한 사람만을 맞이하여 고객에게 현재 필요한 책을 처방해주는 그 서점은 고객에게 책을 매개로 'a special day'(스페셜 데이, 특별한 날)를 선사하는 것이라 했다. '일인 책 처방'이라는 낯선 전략을 그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방편쯤으로 여겼는데 차별화 전략도 '나답게 , 즐겁게, 지속 가능한 일'을 디자인하는 치밀한 자아 턈색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강연자는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서점이지만 개인적으로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라 얼마 전 서점을 접었다고 했다. 자칫하면 폐업(?)이라는 의구심 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강연자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지난 2년간 경험이 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서점을 기획할 것이라 말하며 "OOO 서점 시즌1 종료"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줬다.
 
북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unlimited edition
 북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unlimited edition
ⓒ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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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동네 서점' 교육은 내게 생소했던 독립 출판물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다. 벌써 10회째 진행 중이라는 독립 출판물의 책 잔치, 'unlimited edition'(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방문하고 내가 놀란 것은 그 공간을 가득 메운 젊은 인파였다.

마감시간에 임박해서까지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이 보여준 독립 출판물에 대한 관심은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 익숙한 내게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줬다.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부지런히 독립 출판물 부스를 기웃거렸다. 개성과 아이디어, 자신만의 소소한 취향이 한껏 드러나는 책들과 다양한 굿즈에 나는 어느새 지갑을 열고 있었다.

누구는 독립 출판물의 가벼움이 마땅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출간이 유명 저자와 대형 출판사에 의해 독점되고, 베스트 셀러 기획 잔치에 머물러온 관행에 '여기 어런 이야기도 있어요. 서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감정과 경험을 나누어 볼래요. 소소한 나도 소중하답니다. 함께 와서 놀지 않을래요?', 이렇게 손짓하듯 감성을 자극하는 책들의 출현은 통쾌한 구석이 분명 있다.

20대 젊은이들이 쓰고, 그린 독립 출판물이 50대인 내게 전적인 감응으로 다가오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에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얻었다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장의 호흡은 짧았고 문체는 쿨했지만, 글 이면에는 20, 30대 젊은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안과 무거움이 느껴졌다. 어쩌면 가벼움을 한껏 무기 삼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거움을 밀어내는 그들 나름의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북적북적 동네 서점 교육부터 시작해서 unlimited edition 관람까지 일련의 과정이 내게 준 것이 있다면 책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이전에는 내 취향과 기준에 따라 책을 평가하는 판단자의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세상 기준으로 하찮은 순간도 누구에게는 절박하게 존중받고 싶은 순간이라는 것, 쉽사리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누구의 언어, 글이라도 마음을 열고 글쓴이의 감정과 상황을 헤아려 보는 유연함이 생겼다고나 할까.

책의 가벼움에 역설적으로 마음이 겸손해진 셈이다. 글쓰는 행위가 인정 욕구이든 자기 과시든 글은 자신과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서툴더라도 글쓰는 고독함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은 타인의 가치 평가에 상관없이 소중하다. 또한 혼자만의 은밀한 일기로 감춰두지 않고 독립 출판물로 세상에 내어 놓음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적극적 의지이자 자존감을 쌓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수도권에만 400여 개의 작은 책방, 독립 서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온라인 구매와 대형 서점 순례에만 익숙한 다소 '올드한' 당신이라면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책방의 불빛에 한번쯤 이끌려 보았으면 한다.

다른 책 세상이다. 나의 취향과 독서 습관이라는 것도 어쩌면 대형 출판사의 유통망과 광고망에서 형성된 타인의 취향일 수 있으니... 잠시 기존의 취향은 내려놓고 유쾌발랄한, 때로는 음울하고 엉뚱한 독립 출판물의 현란한 어법에 한번쯤 흠뻑 취해 보기를.

태그:##북적북적 동네서점, ## 독립 출판, ## UNLIMITED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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