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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과 '뉴스타파'가 공개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전 직원 폭행 영상.
 지난 10월 30일 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과 "뉴스타파"가 공개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전 직원 폭행 영상.
ⓒ 셜록/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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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뉴스타파>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이 사무실에서 전 직원의 얼굴을 폭행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회사를 그만둔 직원이 게시판에 양씨를 비꼬는 듯한 댓글을 남겼다는 게 폭행의 이유였다. 바로 옆에서 수차례 폭행이 이어지는데도 직원들은 익숙한 일인 듯 미동도 없었다.

이 충격적인 보도가 나오자마자 '양진호'라는 이름은 하루종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그야말로 '뜨거웠다'. 인용보도가 쏟아졌고, 검찰 소환도 예정됐다. 양진호 회장의 엄벌을 촉구한다는 국민청원도 여러 개 올라왔고, 댓글에서도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갑질'은 개인의 인성이 나쁘기만 해서는 일어날 수 없다. '갑질'에 필수적인 것은 절대적인 권력이다. 양진호가 직원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머리를 총천연색으로 염색하게 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엄청난 권력 때문이었다.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양씨는 아내와의 내연 관계를 의심해 한 교수를 집단 폭행할 때도 자신의 재산 규모와 값비싼 차를 강조하며 피해자를 협박했다고 한다. 47세의 이 남성은 대체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었을까.
 
위디스크의 전직 직원을 폭행하고,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살아있는 닭을 죽이도록 강요하는 등 각종 엽기행각을 벌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을 수사 중인 경찰이 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양 회장 자택과 인근 위디스크 사무실, 군포시 한국미래기술 사무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위디스크의 전직 직원을 폭행하고,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살아있는 닭을 죽이도록 강요하는 등 각종 엽기행각을 벌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을 수사 중인 경찰이 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양 회장 자택과 인근 위디스크 사무실, 군포시 한국미래기술 사무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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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에게 칼을 쥐어줬나

양씨는 웹하드 업계 1위와 2위 회사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1위인 위디스크를 운영하는 (주)이지원인터넷서비스와 2위인 파일노리를 운영하는 선한아이디의 지분은 100% 한국인터넷기술원의 소유다. 그리고 <뉴스타파> 보도 등에 따르면 한국인터넷기술원의 실제 소유주는 양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양진호 회장이 소유한 위디스크, 파일노리의 3년간 총 매출액을 합치면 1100억 원에 이른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웹하드 업체는 공식적으로는 '플랫폼'의 역할만을 한다. 웹하드 사이트에서 이용자들이 저작권이 있는 영상을 구매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은 저작권자에게 간다. 그러나 저작권이 없는 영상의 수익은 웹하드와 업로더가 나눠가진다. 저작권 없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영상 종류가 바로 '국산 야동' 등으로 일컬어지는 불법촬영물이다.

실제 위디스크의 한 관계자는 <셜록>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양 회장 회사에서 돈이 되는 컨텐츠는 주로 저작권이 없는 비제휴 동영상이고, 그중 90% 이상이 음란물"이라며 "음란물 중에는 유명 연예인 관련 불법 유출 영상 등 성범죄 동영상도 포함돼 있다"라고 밝혔다.

불법촬영물이 많이 소비될수록, 웹하드 업체가 얻는 이익은 커진다. 웹하드 업체가 불법촬영물을 올리는 헤비업로더를 방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일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위디스크 회사 측은 헤비업로더와 꾸준히 접촉하고 수익을 더 챙겨주는 방식으로 이들을 '관리'했다.

이처럼 불법촬영물 유통을 방조하는 건 웹하드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경찰이 개입하더라도, 헤비 업로더가 개인정보를 거짓으로 입력하고 웹하드 업체도 이를 바로잡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 경찰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웹하드 업체들도 상당수 거짓 정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헤비업로더들은 주로 '국산 야동'이라고 불리던 불법촬영물을 찾아내 업로드한다. 이뿐만 아니다. 권미혁 의원은 중국의 불법촬영물에 일본어 자막이 달려 위디스크에서 유포되는 경우도 찾아냈다고 전했다. 촬영과 유포, 업로드와 수익 배분이 맞물려 돌아가는, 국제적이고 조직적인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그에게 칼을 쥐여준 것은 이 불법영상들을 소비해온 수많은 구매자들이다. 한 편당 50원, 100원에 팔리는 불법촬영물은 웹하드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단적인 예로, 2017년 부산경찰청에서 불법촬영에 대한 경각심을 심기 위해 일부러 제작해 배포한 '가짜 몰카' 영상은 2주 동안 2만6000번 다운로드됐다.

수많은 불법촬영물이 십수 년 동안 소비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매자는 셀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들이 불법촬영물을 싼값에 사는 동안 웹하드는 거액을 축적했고, 피해자들은 2차 피해와 모멸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부산경찰청이 만든 영상 중 일부. 불법촬영에 대한 경각심을 심기 위해 일부러 제작해 배포한 '가짜 몰카' 영상은 2주 동안 2만 6천 번 다운로드 됐다.
 부산경찰청이 만든 영상 중 일부. 불법촬영에 대한 경각심을 심기 위해 일부러 제작해 배포한 "가짜 몰카" 영상은 2주 동안 2만 6천 번 다운로드 됐다.
ⓒ 부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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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고통을 팔아 얻은 권력

양진호씨의 '웹하드 왕국'은 여성들의 피해를 먹고 자랐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여성가족부가 올해 4월부터 운영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100일간 접수된 피해건수는 2358건에 달했다. 피해자 1040명 중 여성이 총 916명으로 88.1%를 차지했다. 피해자 한 명 당 적게는 1건부터 많게는 1000건까지 유포 피해가 발생했다.

지원센터는 5956건의 유포물을 삭제했다. 미처 이런 제도를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 혹은 아예 자신의 영상이 유포된 사실조차 모르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불법촬영 피해의 정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의뢰를 받아 불법촬영물을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업체마저 양씨의 소유라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나를 찾아줘'라는 디지털 장의 서비스를 운영하는 뮤레카라는 회사는 저작권 침해 영상물 식별 기술을 이용해 불법 촬영물을 삭제해주겠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이 뮤레카의 실소유주가 양진호 회장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권미혁 의원은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뮤레카의 지분을 양진호 회장이 가지고 있고, 위디스크와 뮤레카의 주소지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앞에서는 피해자를 위한 삭제 사이트를 운영한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불법촬영물을 조직적으로 유포해 돈을 번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구조가 사실이라면, 웹하드는 불법촬영물을 '지우면 올리고 지우면 또 올리는' 마르지 않는 돈의 화수분인 셈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디지털 장의사 업체에 돈을 내고 삭제를 맡겼을 피해자들은 웹하드 업체에 두 번이나 기만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지원인터넷서비스의 한 직원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웹하드가 '먹고 살' 길을 터주기 위해 필터링 업체를 매입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어차피 필터링 업체에 돈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 수수료라도 싸게 하기 위해 뮤레카를 매입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법촬영물 유통구조를 뿌리 뽑아야

'양진호'라는 괴물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불법촬영 카르텔 위에서 막대한 돈을 벌었고, 그 권력을 토대로 '갑질'을 일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카르텔은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촬영물을 유포해 돈을 번 웹하드 업체, 헤비업로더, 그리고 이를 소비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씨의 폭행과 갑질에 분노하는 많은 이들이 그 뒤에 있는 불법촬영물 유통 문제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자신들도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며 이 카르텔에 기여하지는 않았는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양씨의 '엽기 행각'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그 행동을 가능케 했던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폭력만큼이나 불법촬영물을 끊임없이 유포해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도 심각하다.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도 반성해야 한다. 불법촬영 문제가 대두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근절을 약속하면서 여러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국회에 계류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만 132건에 이른다. 진선미 장관이 의원 시절인 2016년 9월 발의한 '보복성 영상물 관련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또한 2년째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양진호 회장의 문제가 불거진 것도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미 2011년 구속된 적이 있는데, 죄목은 불법촬영 유포나 직장 내 폭력이 아니라 저작권법 위반이었다. 그가 실제로 저지른 행동의 본질적인 문제로 처벌받지는 않았던 것이다. 당시 불법촬영이나 갑질 관련 대책이 제대로 마련됐다면 이후의 폭력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이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열린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 특별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이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열린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 특별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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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갑질 논란·웹하드 카르텔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약 두 달 전인 지난 8월 녹색당·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불꽃페미액션 등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수사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관련 기사 : "페미니스트 문 대통령,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하라").

이들은 당시 "디지털성범죄 영상물의 유통과 삭제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피해자를 기망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득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실소유자 양진호를 처벌하라"며 "디지털성범죄 유통 플랫폼, 디지털장의사, 숙박업소 관련 앱, 스튜디오 촬영회 등 디지털성범죄물을 생산, 유통, 삭제하는 산업화 구조 자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쳤다.

"웹하드가 이렇게 카르텔까지 이루게 된 지금까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제 정부가 답변할 차례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양진호 회장의 폭력 사건이 연일 보도되며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제한되고 있다, 이 문제가 사이버성폭력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문제임을 잊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6일 오전 다른 여성단체와 함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웹하드 카르텔 문제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가능했으며, 양 회장뿐 아니라 웹하드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던 공범이 누구였는지" 짚겠다는 계획이다. 

양씨의 행동이 세상에 알려진 지금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가담하고 국가가 방조해왔던 불법촬영의 유통구조를 뿌리 뽑을 적기다.

태그:#양진호, #위디스크, #불법촬영, #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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