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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미나토구의 한 식당거리.
 도쿄 미나토구의 한 식당거리.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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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고민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나이 50줄이 넘어 처음으로 혼자 자취생활을, 그것도 외국에서 하려니 제일 막막한 게 먹는 것이다. 아침은 식빵과 우유로 때우고,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먹는다지만, 저녁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매일 하는 고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나', 두 번째는 '오늘 저녁은 뭘 먹을 것인가'이다.

'왜 여기에 있나'는 질문은 아침에 눈을 떠 큰 방에 덩그러니 혼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면 자동으로 드는 생각이다. 멀쩡한 집과 가족을 뒤로하고 혼자 여기까지 온 이유를 되뇐다. 이건 그냥 머릿속으로 고민한 뒤 생각이 안 나면 내일 또 생각하면 되는 관념적 문제이지만, '저녁에 뭐 먹나'는 당장 해결해야 할 실존적인 문제다. 그러니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고민이 당장 더 중요하다.

대략 오후 4시쯤 되면 저녁 고민이 시작되는데, 집에 가서 뭘 해먹을지 잘 생각이 안 나면 학교나 집 근처 식당에서 사 먹든가 슈퍼나 편의점에서 파는 '벤또'로 해결해야 한다.

처음에는 식당도 잘 모르고, 뭔지 잘 모르는 음식을 사 먹는 게 겁이 나서 가급적 집에서 밥을 한 다음 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 편을 택했다. 계란이 있으면 프라이를 하나 부치거나 서울서 가져온 김 한 통을 곁들인다. 아니면 슈퍼에서 발견한 신라면을 끓여먹든지. 찌질하지만 이게 혼자 간편히 끼니를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근데 문제는 김치다. 아무리 간편식을 한다고 해도 입안의 느끼함을 씻어주는 김치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기무치, 기무치소스, 카쿠테키(깍두기) 등 동네 슈퍼에 진열된 한국 식품들. 그러나 모두 그림의 떡이다.
 기무치, 기무치소스, 카쿠테키(깍두기) 등 동네 슈퍼에 진열된 한국 식품들. 그러나 모두 그림의 떡이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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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서 발견한 기무치에 상처 받다

첫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들렀던 동네 슈퍼에서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통에 든 '기무치'를 한 통 구입했다. 요샌 일본 사람들도 김치를 많이 먹는다더니 동네 슈퍼에서도 팔 정도구나, 하며 반가웠다.

이튿날 저녁 '기무치'를 처음 개봉했다. 순간 내 혀를 의심했다. 세상에 이런 김치도 있나. 들큼하고 시큼한 맛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게 내가 한국에서 먹던 김치가 결코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한번은 슈퍼에서 '기무치찌개용 기무치'라고 쓰인 비닐상품을 발견하고 "지난 번 기무치는 잘못된 거겠지, 이번엔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고 샀다가 집에 와서 열어보고 그냥 다 버린 경험도 있다. 냄새가 지난번 거랑 거의 똑같은 데다 이번 거는 기무치도 아니고 기무치찌개 '국물'이었던 것. 봉투에 가타카나로 씌어 있는 '소스'란 글씨에 주의하지 못한 결과다.

요즘 일본의 웬만한 식당에는 반찬으로 기무치를 서비스하는 곳이 많다. 물론 돈을 따로 받고. 우리나라 김치가 바다를 건너가 기무치가 돼서 일본 사람들 밥상에 뿌리를 내리다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겐 그림의 떡이다. 김치에 설탕 듬뿍 뿌린 것처럼 단내가 풀풀 나는 걸 어떻게 먹나.

도쿄에는 김치찌개, 육개장, 순두부찌개, 갈비탕 등 한국 음식만 파는 한국식당도 많고, 한글로 '짜장, 짬뽕'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는 중화요릿집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잘 가지 않는다.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가게 주인장들은 한결같이 "우리 집은 한국에서 하는 것하고 똑같이 만들어요"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난 "정말 그렇네요" 하고 맞장구쳐주지만 솔직히 아니올시다다.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모양은 그럴 듯한 데 뒷맛이 쓰고, 갈비탕을 시키면 뽀얀 국물의 짜디짠 곰탕이 나오기 일쑤다.

이 분들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내줄 리는 없다. 일본에 오래 살다 보니 주방장의 입맛이 변했거나, 일본인 손님들이 많으니 그들의 입맛에 맞춰온 결과겠지. 아무래도 식재료가 다르니 잘 해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다 싶다.

서울 살 땐 한식, 일식, 중식 가리지 않고 뭐든지 잘 먹었고 외국에 가서도 음식 때문에 고생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처음 먹어본 기무치에 받은 트라우마가 그렇게 컸나. 한국 여행객들이 맛있다고 난리인 일본 음식도 아직까지 극소수를 빼놓고 손이 가지 않는다. 라멘, 우동, 소바... 서울에선 맛있던 것들이 왜 그리 맛없어졌을까. 그러고 보니 서울에선 없어서 못 먹던 스시, 사시미도 여기 와선 별로 당기지 않는 것 같다.

 
 도쿄의 한 한국식당 밖에 걸려있는 한국음식 메뉴판.
 도쿄의 한 한국식당 밖에 걸려있는 한국음식 메뉴판.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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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부족한 일본 음식, 그게 뭘까

일본 음식은 먹고 나면 항상 뭔가 부족하다. 어떤 심리학자가 그랬다. 일본은 '결핍의 문화'라고. 그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덕에 오늘의 경제대국, 문화대국이 된 거라고. 그게 맞는 얘긴지는 좀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일본 음식은 뭔가 결핍돼 있는 게 맞다. 다 먹고 나서도 뭔가 끝을 보지 못한 것처럼 맛도 양도 어정쩡하다.

뭔가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뭔가는 바로 '김치'다. 들큼하고 기름진 라멘. 거기에 김치 한 종지만 있었으면, 우동이나 소바에도 김치가 조금만 같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일본 음식 뭐가 나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일본 생활 7개월만에 체중 4kg이 줄었다. 전엔 주말마다 그렇게 북한산을 오르내려도 몸무게가 요지부동이더니. 다 뭔가 부족한 일본 음식 때문 아닐까.

잠시 서울에 들어가 만난 회사 후배가 내 고민을 듣더니 "선배가 좋아했던 건 회나 스시가 아니라 그 다음에 나오는 매운탕이 아니었을까?"라고 한다.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속이 뜨끔하다. 사실 회와 정종보다는 매운탕과 소주를 더 좋아했으니까.

매일 저녁 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빈 계란비빔밥을 먹으며 수도승처럼 살던 내게 한 줄기 햇빛이 내리쬔 것은 신오쿠보라는 곳을 알게 된 뒤부터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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