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랜디 커투어와 '천재 파이터' B.J.펜이 2004년과 2010년 두 체급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만 해도 격투기 역사에 남을 만한 커다란 사건으로 취급됐다.  다른 투기 종목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종합 격투기에서도 증량과 감량에 따른 핸디캡이 상당히 크게 여겨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미들급 전 챔피언 앤더슨 실바가 포레스트 그리핀, 스테판 보너 같은 라이트 헤비급 파이터들에게 승리했을 때 더욱 화제가 됐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현재 체급 변화에 대한 선수들과 격투팬들의 인식은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코너 맥그리거처럼 페더급과 라이트급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하는 선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웰터급의 평범한 파이터였던 로버트 휘태커는 미들급 전향 후 챔피언까지 등극했다. 지금도 크리스 사이보그와 아만다 누네스 맥그리거와 실바, T.J.딜라쇼와 헨리 세후도 등 체급을 뛰어넘는 여러 슈퍼파이트가 확정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가장 높은 피니쉬율을 자랑하는 라이트 헤비급과 헤비급의 현 챔피언은 다니엘 코미어다. 지난 7월 스티페 미오치치를 KO로 꺾고 역대 2번째 두 체급 동시 챔피언에 오른 코미어는 오는 4일(이하 한국시각) 뉴욕에서 열리는 UFC230에서 헤비급 1차 방어전을 치른다. 하지만 연말에 열리는 존 존스와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의 UFC 232 메인이벤트가 이미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전으로 홍보되고 있기 때문에 코미어는 이 경기에서 패하면 자칫 '무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UFC230에서 헤비급 타이틀 매치로 데릭 루이스(사진 중앙)와 경기하게 된 다니엘 코미어(사진 위)의 모습.

UFC230에서 헤비급 타이틀 매치로 데릭 루이스(사진 중앙)와 경기하게 된 다니엘 코미어(사진 위)의 모습. ⓒ 다니엘코미어 인스타그램 갈무리


존스 외의 상대에게는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사나이

UFC에는 화려한 아마추어 레슬링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많지만 코미어는 좁디 좁은(?)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세계 레벨에서 활약하던 '월드클래스 레슬러'였다. 코미어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까지 진출했지만 3-4위전에서 패하며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미국 레슬링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강력한 메달 후보로 꼽혔음에도 감량 과정에서 신장에 이상이 생겨 출전을 포기했다.

2009년 9월 스트라이크 포스를 통해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코미어는 압도적인 레슬링 실력을 바탕으로 연전연승을 벌였다. 아마추어 레슬러 시절 -96kg급에서 활약했던 코미어는 종합격투기에서 -120kg의 헤비급으로 활동했다. 국내 격투팬들에겐 무명에 가까워던 코미어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와 알리스타 오브레임, 파브리시우 베우둠 등이 참가하며 화제를 모은 스트라이크 포스 헤비급 토너먼트(2011~2012년)였다.

코미어는 이 대회에서 표도르를 KO로 이긴 안토니오 실바를 3분 56초 만에 KO로 제압했고 결승에서도 전 UFC 헤비급 챔피언 조쉬 바넷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포스가 UFC에 흡수되면서 코미어는 2013년 4월 UFC 데뷔전을 치렀다. 코미어는 스트라이크 포스보다 수준이 높은 UFC에서도 프랭크 미어와 로이 넬슨을 연파하며 헤비급의 쟁쟁한 파이터들을 긴장시키는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코미어는 2경기 만에 라이트 헤비급 전향을 선언했다. 코미어의 소속팀 아메리칸 킥복싱 아카데미에 당시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케인 벨라스케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레슬링 대표팀 주장이었던 코미어는 팀워크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함께 땀 흘리는 소속팀 선수와의 경쟁 대신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감량을 선택했다. 코미어는 라이트 헤비급 전향 후 패트릭 커밍스와 댄 헨더슨을 가볍게 제압하고 타이틀 도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당시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은 무적의 존 존스였다. 코미어는 존스를 상대로 경기 초반 적극적인 압박으로 대등한 경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고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효과적이었던' 존스의 눈찌르기 공격을 당하며 경기 흐름이 뒤바뀌었다. 여기에 3라운드 이후 코미어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결국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종합격투기 데뷔 후 15연승을 이어오던 코미어의 커리어 첫 패배였다.

역대 2번째 두 체급 챔피언, 루이스에게 잡히면 다 잃을 수도

코미어에게 존스는 종합격투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벽이었지만 존스는 '자체하자'가 너무 많았다. 존스는 음주운전과 뺑소니, 코카인, 마리화나 등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되며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지난해 7월에 열렸던 코미어와 존스의 2차전도 존스가 3라운드 KO로 승리했지만 곧바로 금지약물이 적발되면서 무효경기가 선언됐다. 존스와의 설욕전만 생각하던 코미어도 그 즈음부터 존스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시작했다.

코미어는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후 구스타프손과 앤서니 존슨, 볼칸 우즈데미르를 차례로 제압하며 존스가 없는 라이트 헤비급을 완전히 평정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헤비급 챔피언 미오치치와의 경기에서 1라운드 KO로 승리하며 맥그리거에 이어 두 체급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역대 2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존스와의 1차전과 반대로 경기 도중 코미어의 눈 찌르기 반칙 논란이 있었지만 미오치치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경기 후 코미어를 도발했던 브록 레스너, 징계 후 헤비급으로 올라올 것으로 예상되던 존 존스 등이 코미어의 헤비급 1차 방어전 도전자로 지목됐지만 최종적으로 코미어의 상대는 데릭 루이스로 결정됐다. 루이스는 작년 6월 마크 헌트에게 4라운드 KO로 무너진 후 마르친 티부라, 프랜시스 은가누, 알렉산더 볼코프를 차례로 꺾고 헤비급 랭킹 1위에 오르며 타이틀 도전권을 따냈다.

사실 이 경기의 예상은 코미어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종합 격투기 데뷔 후 존 존스 이외의 상대에게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코미어의 화려한 전적은 차치하더라도 루이스는 지난 10월7일 볼코프와 경기를 치른 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1라운드 초반에 가볍게 승리한 것도 아니고 3라운드 종료 11초 전에 나온 역전 KO승이었다. 루이스에게는 상대를 분석하긴커녕 체력을 온전히 회복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물론 코미어에게도 부담은 매우 크다. 오는 12월 30일로 예정된 존 존스와 구스타프손과의 2차전이 이미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전으로 홍보되고 있기 때문에 헤비급 타이틀전 결과와 상관없이 코미어는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 반납이 불가피하다. 자칫 루이스에게 덜미를 잡혔다간 두 체급 동시 챔피언에서 하루 아침에 '무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던 만 39세의 노장 파이터가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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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C 230 다니엘 코미어 데릭 루이스 헤비급 타이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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