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답변하는 박상기 법무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안녕하세요 장관님. 저는 늦은 나이에 지방의 한 로스쿨에서 공부 중인 '로줌마'입니다. 

지난달 25일 장관님은 네이버 법률판과 한 인터뷰에서 "현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9.9%로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질문에 "그건 거짓말이다, 팩트체크를 해라, 80% 넘는 학생들이 다 합격한다"고 답했습니다. 이 말에 저는 멘붕에 빠졌습니다. 제 과거의 직업 때문입니다.

저는 교사였습니다. 10여 년 간 고등학교에서 사회과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시간 동안 행복하면서도 괴로웠습니다. 첫째는 제가 도대체 교사인지 학원강사인지 알 수 없어 괴로웠고, 둘째는 부족한 정교사 자리 때문에 자격이 있음에도 정식교사가 될 수 없는 비정규교사의 문제로 괴로웠습니다.

학원강사가 된 교수, 고시생이 된 학생

저는 사회과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법 단원 수업에서는 세상을 바꾼 판례를 조사해 발표하는 활동을, 언론 단원 수업에서는 다양한 논조의 신문기사들을 비교하며 열띤 토론하는 활동을, 정치참여 단원 수업에서는 시민단체 활동 등 사회참여를 해보고 그 경험을 나누는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원강사가 되었습니다. 초임시절에는 밤새 영상자료를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구상했지만 얼마 못 가 저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학교가 제게 진정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수능시험이 코 앞인 학생들을 모르는 척 저만 좋다고 참교사놀이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하면 인터넷으로 '일타강사' 강의를 듣고 그 암기비법을 전수받아 수업시간에 전달하고, 교과서는 팽개친 채 수능기출문제집으로 진도를 나갔습니다.

잊지 못하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날, 의미 있는 계기수업을 고민하다가 이내 접었습니다. 고3 교실에 들어가 단 한마디도 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기출문제집을 풀고 또 풀었습니다. 그러다 한순간 어느 학생의 가슴에 매달린 검은 리본에 시선이 닿았을 때, 저는 황급히 판서하는 척 뒤돌아 눈물을 벅벅 닦고 다시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고3 사회과 교사의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아이들은 경주마처럼 시야가리개를 하고 그저 한 길로만 달려야 하는데 내가 자칫 딴 길을 열어버리면 아이들이 흔들린다고, 쟤들은 고3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후 교사로서 참 많은 일을 겪고 또 교직을 떠난 뒤,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초기 일부 로스쿨은 인맥에 의한 입학이나 사실상의 나이제한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인맥도 나이도 고려하지 않은 한 지방의 국립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길에서 저는 놀랍도록 과거와 닮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험적합성이 떨어지는 수업이라며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 극소수의 학생들만 앉아 있는 교실. 거기서 '법학의 기초를 세워야 바른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업하는 교수님. 그의 눈빛에선 탄식이 보였습니다. 비록 시험에 직접 출제되지는 않아도 법학도로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믿으며 열심히 학설을 설명하지만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수험서에 밑줄을 긋는 학생들. 그들을 바라보는 교수님의 얼굴에선 자괴감이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몇몇 교수님들은 종전과 달리 변호사시험 대비 수업으로 수업내용을 바꾸셨습니다. 또 시험에 나오지 않는 부분은 언급하지 않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가득찼지만, 수업을 하시는 그분들 얼굴에서 저는 '예비법조인을 양성하는 보람된 교육을 하는 이'의 즐거움이 좀처럼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장관님, 저는 감히 장관님의 수업을 여쭙고 싶습니다. 연세대학교 로스쿨 교수님 시절 장관님의 수업은 어떠셨나요?

혹시 장관님께서도 오로지 수험적합성만으로 장관님의 수업을 평가하며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 단 몇 명만 앉아 있는 교실에서 '기본을 모르고 수험스킬만 익혀서 무슨 법조인이 된다는 것인지'하며 개탄하신 적은 없으셨는지요? 혹시 장관님께서도 문제풀이식 수업을 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여기는 학교일까 아니면 학원일까' 하며 한숨이 나온 적은 없으셨는지요?

"변호사시험에 이해 따위는 필요 없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협의회 소속 학생들이 2014년 3월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총회를 갖고 정부에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를 요구하고 있다.학생들은 합격률이 현저히 낮아지면 로스쿨 도입 취지도 살릴 수 없다며 자격시험화 등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자격시험화는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협의회 소속 학생들이 2014년 3월 3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총회를 갖고 정부에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를 요구하고 있다.학생들은 합격률이 현저히 낮아지면 로스쿨 도입 취지도 살릴 수 없다며 자격시험화 등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자격시험화는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금 중고등학교 공교육에서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줄세우기 위한 암기식 입시위주교육에서 벗어나자며 또 부작용으로 양성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자며 교육계는 답을 찾으며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구체적 해법에는 다양한 의견이 대립되지만, 적어도 '수능시험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잠식해 교실에서 교육다운 교육을 수 없다', '반드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만큼은 교육계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로스쿨 역시 넓은 의미의 공교육기관입니다. 그런데 왜 로스쿨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걸까요? 사법고시중심사회에서 벗어나자며 설립된 로스쿨은, 초기에는 시험위주 교육이 아니라 실무위주 교육과 다양한 전문법조인양성교육을 위해 나아가던 로스쿨은 도대체 왜 급속도로 고시학원이 되고, 교수님들은 학원강사가, 학생들은 고시생이 되어버린 걸까요?
     
동기가 판례의 법리가 이상하지 않냐고 하면 저는 말합니다. 시험에서 이해 따위는 필요 없다고. 영혼 없이 암기하고 기계처럼 답안지를 채우면 된다고. 주제넘게 법리를 고민하거나 시험에 나오지 않는 법적 이슈는 관심 같지 말자고.

제자 또래의 동기가 힘겨워하는 모습을 봅니다. 외국에서 토론과 에세이식 공부에서 뛰어났던 동기는 판례 암기 공부, 오지선다형 답찾기 공부에 적응 못해 괴로워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도 수험생이라고, 저 아이가 붙고 내가 떨어질 수 있는데 누가 누굴 위로한답시고 저 아이를 안아주냐고.

교사인 친구들이 교육과 법의 충돌 문제를 물어보면 저는 말합니다. 나는 그냥 고시생일뿐이니 시험에 나오지 않는 건 묻지 말라고. 나는 전문적 법교육을 받은 바 없다고.

장관님. 왜 저는, 교사 시절 경험한 '일그러진 공교육의 민낯'을 전문교육기관인 로스쿨에서 다시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로스쿨 설립 초기인 2005년 장관님이 <로이슈>와 한 인터뷰 속에 있습니다. 장관님께서는 "합격률 80%가 되면, 학생들은 합격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합격률 80%가 깨어질 때 교육을 통한 법조인양성은 실패한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2018년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49.35%입니다. 지난 25일, 장관님은 "합격률은 80%"라고 하셨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장관님은 '합격률 80%'의 이유로, '(특정년도에) 불합격해도 다음에, 그다음에 등에 합격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장관님, 대체 어떤 자격증시험 내지 국가고시가 '첫 시험응시부터 마지막 시험응시까지'를 기준으로 합격률을 판단하나요? 당장 의사고시나 회계사시험 등의 합격률을 검색해봐 주십시오. '올해 응시자 0명 중 0명'이 아닌 장관님과 같이 '누적'을 고려해 그 시험의 합격률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지.

이례적인 합격률 산정을 하시는 이유가 무얼까. 아무리 다시 생각해보아도 합격률 49.35%는 '로스쿨이 정상적인 전문교육기관이 아님의 반증'임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장관님이시기에 그와 같이 진실을 감추었단 결론에 닿았습니다.   

의료 전문교육기관을 거친 의사, 간호사 등이 그 자격을 취득하려면 각 분야의 지식과 기능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필기시험의 경우 "전 과목 총점의 60% 이상, 매 과목 40% 이상 득점"이 그 기준입니다. 이는 의료법 제9조의 위임을 받아 법규의 효력을 갖는 동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의2]에 분명하게 쓰여 있습니다.

반면 변호사시험의 근거규정엔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변호사시험법 제10조는 그저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 취지를 고려'하고 '대한변협 등의 목소리를 들어' 그 자격을 부여한다고만 규정합니다.

이 얼마나 눈에 걸고 코에 걸기 좋은 기준인지요. 그럼에도 전문대학원의 본질, 사람의 신체적 생명 또는 사회적 생명을 다룬다는 공통분모 등을 간과한 채, 로스쿨 설립 10년이 지난 지금껏 의료법 시행령 제2조와 같은 '절대평가 내지 자격시험화'의 기준을 마련하는 법령개정 등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를 추진해야 할 법무부의 수장이 거짓된 팩트 뒤에 숨어버린 것은 보다 심각한 문제이고요.  

저는 사실 이른바 '사법고시 낭인'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고시 공부하느라 스펙은 못 쌓은 채 나이가 많아졌거나 등록금이 없어 로스쿨에 입학 못한 그들의 기회를 박탈한 현 제도에 대체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요. 왜 같은 고시 공부를 하는데 누구는 시험을 볼 수 있고, 누구는 못 보는 것일까요. 바로 그 점에서 저는 로스쿨에 재학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미안합니다.

정말 너무도 이상한 나라의 법조인자격시험, 이상한 나라의 로스쿨입니다. 

차라리 "변호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라고 하시죠

모든 로스쿨생들이 제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재학생이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중에는 '합격률이 더 높아지면 지금도 사법고시 출신과 차별받는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더 X값 된다.', '하위권이 변호사 되면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을테니까요.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나 소나 변호사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법조인으로서 소정의 자격'은 필요하지만, 변호사의 몸값을 유지하기 위해 그 숫자를 가급적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개도 소도 자격을 갖추면' 변호사가 되어 자신의 전문성과 결합된 법조분야를 개척하도록 만드는 한편, 그로 인해 국민들이 좀 더 가깝고 전문적인 법조서비스를 받도록 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로스쿨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기간제교사 시절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은 저의 로스쿨 입학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저는, 현재에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는 비정규직교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교직사회의 평등화에 기여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로스쿨이 이렇게 무너지면 비정규교사의 문제, 카스트제도화된 교직사회의 문제에 있어서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과반수에게 자격증을 주지 않는 로스쿨은 그저 실패사례일 뿐, 교육 영역은 물론 그 어떤 전문교육기관의 모델도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교사자격증은 받았지만 정규교사가 될 수 없어 신음하는 비정규교사나 3년간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했어도 변호사자격증을 받지 못한 변시 낭인이나 똑같이 불행하고 모두가 답이 아닌 겁니다. 
 
전국 11개 시험장에서 제58회 사법시험 1차 시험이 열린 2016년 2월 27일 서울 중구 한양공업고등학교에 차려진 고사장에서 응시자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법시험은 현행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될 전망이다.
 전국 11개 시험장에서 제58회 사법시험 1차 시험이 열린 2016년 2월 27일 서울 중구 한양공업고등학교에 차려진 고사장에서 응시자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법시험은 현행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될 전망이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장관님,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장관님, 졸업반인 저는 지금 70일도 남지 않은 시험에만 전념하며 판례 문구를 하나라도 더 암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장관님이 연락을 주시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달려가겠습니다. 

로스쿨 공교육의 붕괴는 기득권 변호사들의 이익을 위해 방치해도 되는 작은 문제요, 몇 달 전 자살에까지 이른 변시낭인 문제도 사회적 문제라 할 수 없음에도, 이를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 한 로스쿨생들의 스승님이셨고 지금은 전국 로스쿨생들의 스승님과도 같은 장관님께 다정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2010년 한 임용고시 수험생이 임용고시 직전에야 선발 인원을 결정, 고시하는 교육부의 선발방식이 부당하다며 이주호 교육부장관님께 러브레터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교육부장관님은 흔쾌히 데이트에 응하셨고, 결국 임용고시 사전예고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저는 과거 교육부가 예비교사에게 귀를 기울였듯 현 법무부도 예비법조인의 목소리를 지나치지 않을꺼라 믿습니다. 더욱이 언제나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던 교수님이셨는데, 이렇게 실명으로 띄우는 편지를 모르는 척 하지는 않으실꺼라 믿습니다.

그럼 로줌마는 설레는 마음으로 장관님과 만남을 고대하며 오늘부터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익명으로 쓴 첫 번째 편지가 <법률저널>에 실렸습니다. http://omn.kr/1c722


태그:#로스쿨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