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닐숨

거닐숨 ⓒ 강선영

  
가을이 깊어가던 지난 10월 21일, 나는 싱어송라이터 '거닐숨'이 살고 있는 부암동의 '역'이라는 독특한 옷가게에 방문하여 라이브영상 촬영을 먼저 진행하고, 장소를 옮겨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아무래도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이니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장소여서 촬영 장소로 추천해 주신 건지, 살짝 여쭤보니 이번 촬영을 위해서 직접 컨택 메일을 여러 군데 보내시고 흔쾌히 촬영 허가를 해주셔서 이 장소에서 진행하게 된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어인 스스로의 불찰이 아닌가,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던 이래로, 거닐숨의 이미지는 늘상 이런 느낌이었던 거 같다. 얼핏 보면 조용하고 수더분하게 보이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안에 잔잔하게 흐르는 짙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 담담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음악을 하나씩 쌓아 올려가는, 그런 뮤지션.

인터뷰 내내 여러 번 말을 멈추면서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작은 것 하나 하나를 되짚어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가던 그 모습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거나 가사 하나 하나를 꼭꼭 씹어 뱉는 듯했던 거닐숨의 작은 습관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의 음악과 닮은 느낌이었다. 거닐숨의 음악에는 거대한 체념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안에 단단한 어떤 힘이 느껴진다.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거닐숨의 음악을 이미 알고 있다면, 어쩌면 낯설지 않을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 Vol. 3 거닐숨  

- '거닐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어떤 뜻인지 설명 한번 부탁드릴게요. 
"뜻은 생각을 안 하고 만든 이름이고요. 만든 경위랄까 그런 건, '푸른 새벽'을 좋아했는데, 푸른 새벽의 '호접지몽'이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 '빈 방을 거닐던 내 긴 한숨은 꿈으로'라는 가사라서 거기에서 두 단어를 조합했죠." 

- 필명의 뜻에 대한 질문이 많았을 것 같아요.
"'생각을 많이 하고 지은 이름인 것 같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한 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잘 없죠. 말로 하면 '권씨'에 '닐~' 같은 사람 이름처럼 받아들이셔서, 앞으로 어디 소개해야할 때는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서 보여주거나 하는 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웃음)"
 
 거닐숨

거닐숨 ⓒ 강선영

 
- 활동을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2013년에 이런저런 공연장들에서 한 오픈마이크가 시작이었죠. 그때는 오픈마이크가 뮤지션들의 등용문이라기보다는 직업적으로 생각 안 하고,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고 그런 분들이 많은 분위기였어요. 오픈마이크의 본래적인 의미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죠. 실질적으로 처음 공연한 건 디디다나 카페 언플러그드에서였고, '술'이라는 노래의 반응은 그때부터 좋았고요."

- 어떤 음악을 하고 계신지, 간략하게 소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포크라는 장르를 그렇게 신경 쓴 거 같진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포크는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만으로 완성되는 음악이 포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우에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항상 완성된 버전을 생각을 하고 곡을 쓰니까. 그러나 제가 밴드를 하진 않고 혼자 공연을 하니까, 여건상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포크라기보다는 대충 록과 재즈와 클래식이 근본 없이 섞이면 이렇게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네요."
 

- 영상을 보면, 세션과도 자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자주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 유튜브에서는 최근 영상을 걸러줘서 그런 것 같은데.. 주로 세션과 했던 건 작년에 반 년 정도 드러머 송민섭씨와 같이 했던 시기였죠. 제가 군대 전역을 하고 나서 다시 공연을 하러 다니던 때였고, 그래서 변화를 꾀하고 싶었어요. 

휴가 때 사운드마인드에서 본 공연에서 송민섭씨가 초이씨랑 기타랑 스네어 드럼만으로 함께 연주를 했는데 그 조합이 되게 괜찮았어요. '풀 세트가 아닌데도, 저런 간결한 사운드가 나올 수 있구나' 눈 여겨 봤고, 그 때 뒷풀이 자리에서 제가 "연락드릴게요"라고 했고, 전역하고 진짜로 연락을 했죠."

- 빈말을 안 하시네요. (웃음)
"그래서 6개월 동안 재밌게 같이 했어요. 혼자 할 때 머릿속으로 대충 어떻게 할 지 상상은 하지만, 그게 실제로 구현이 되는 걸 들으니까 재밌었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민섭씨가 줬고. 그런데 저는 취직을 했고, 민섭씨는 독일에 가셔서... 그때가 제가 세션이랑 고정적으로 한 유일한 기간이었고, 앨범 발매 쇼케이스 때는 1부에 저 혼자나 둘이서 할 수 있는 곡들을 하고, 2부는 풀 밴드 섭외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 반짝 잠깐 했어요."

- 여건이 되시면 아무래도 풀 밴드를 하고 싶으신가요?
"웬만하면 그렇죠. 제가 저의 곡을 생각하는 상에 가장 가까운 그런 형태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아까 잠시 얘기하기도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도 그렇고... 저는 밴드를 거의 못해봤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한데, 제가 지금 만드는 것들은 어쨌거나 저의 곡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요, 뭔가 평소에 밴드와 같이 하는 게 필요한 건가, 싶기도 해요. 

머릿속에 만들어놓은 것을 변경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는 거겠죠, 아마도."

- 정규앨범을 내기 전인 2013년 10월에 EP <차가운 힘>을 오프라인으로만 발매하셨죠?
"<차가운 힘>이라는 EP는 사실 EP라기보다는 데모로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론 EP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긴 했으나. 거기 4곡이 들어있었죠. '열린 회로', '피로', '술', '자장가'였는데 그 중 '열린 회로' 빼고는 정규앨범 <악수>에 다 들어갔고요. '열린 회로'는 다음 앨범에 넣을 생각입니다. 

음, 그 EP를 만들게 된 경위는 그 당시에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눈에 띄는 뮤지션을 섭외해서 시리즈로 조그맣게 데모건, EP건 내주자는 그런 기획이 있어서 그 첫 타자가 곽진언씨였고 그 다음이 저였을 텐데. 저 이후로는 나온 걸 들어본 적은 없고요. 하여간 그래서 되게 부랴부랴 내게 됐어요. 사실 정규앨범 <악수>에 대한 상은 음악하기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차가운 힘> EP의 경우에는 중간에 EP를 낼 생각은 전혀 없다가, 만들어주신다니까 할 수 있는 걸 갑자기 한 거기 때문에, 사실 그 EP는 지금 저한테 그렇게 큰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 정규 앨범 전에 데모 녹음 경험 정도의 느낌이셨나 보네요.
"네, 그런 거였죠. 사실 그 때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일하시던 디자이너 누님이 공력을 들여서 표지와 가사집까지 만들어주셨던 거에 비하면 제가 너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거닐숨 정규 1집 앨범 <악수> 커버

거닐숨 정규 1집 앨범 <악수> 커버 ⓒ 거닐숨

 
- 그런데 반면 군대를 가시기 전인 2014년 11월 20일에 발매하셨던 정규 1집 앨범 <악수>의 경우에는 음악을 하시기 전부터 상이 있으셨다고 해서, 인상적이네요.
"음악을 하기 전부터는 좀 과장이었으려나...? 그러니까 앨범을 정규로 내야겠다는 생각은 했던 거 같아요. '나는 언제나, 웬만하면 정규로 내야겠다.' 그건 사실 지금도 그렇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죠. 네다섯 곡의 EP만 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여건이 되고 있으니까, 점점. 그런데 아직까지 저는 앨범이란 단어를 생각했을 때 항상 뭔가 좀 풀 랭스 형태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3~4분 안의 곡들에 사실 뮤지션으로서의 특색이 그렇게 제대로 담기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담고 싶어요. 계속." 

- 아무래도 리스너로 들으실 때도 앨범 단위로 많이 듣고 그러시나 보네요? 
"네, 그렇기도 하네요. 리스너로서도 싱글만 찾아듣는 경우는 잘 없어요. 앨범 단위로 계속 듣게 되고."

-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라고 생각하세요?
"음, 앨범이라는 형태를 인식한 건 열아홉 살 때쯤...? 그때 제가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1년 반수를 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안 다니고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왜 어쩌다가 홍대 음악을 듣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아무튼 그 때 푸른 새벽도 알게 되었던 것 같고, 그전에 한때는 힙합을 들었죠." 

- 어, 정말요? (웃음)
"네, 10대 시절에 힙합을 들었고 랩도 쓴 적이 있고...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러다가 어쩌다가 혼자 반수하던 시절에 홍대 음악을 듣게 됐고, 마이 앤트 메리, 푸른 새벽 등을 그때부터 알게 됐던 거 같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찾아서 듣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그때부터도 곡 단위로 듣지는 않고 항상 앨범을 사서 듣거나 그랬어요."

- 주변에 영향 주는 친구나 선배가 있거나 그랬나요?
"그게 정말 전혀 없었어요. 가족 중에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도 전혀 없고, 친구도 없고... 10대 시절을 생각하면 전혀 없어요."

- 그런 보수적인 마인드는 아무래도 주변의 형들이 가르쳐준다거나 (웃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여쭤본 건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시네요.
"네, 되게 어릴 때부터 뭔가 음악을 하고 싶었고, 언젠가는 음악에 발을 들여놔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어요. 정말 어릴 때부터도. 그런데 주변의 환경이, 관심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학교 밴드에 들어간다거나 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악기를 만져보겠다는 생각도 거의 못하고 그러다가 학교에서 나오고 나서 혼자 홍대 인디음악을 듣게 됐고, 정말로 진지하게 음악을 생각하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서,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들어가면서부터였어요. 

그 동아리가 정식 명칭은 '클래식 기타 합주단'이에요. 오케스트라인데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기타로 되어있는 거죠. 그러니까 기타를 위한 곡을 많이 연주하기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기타 오케스트라에 맞게 알아서 편곡을 하는 그런 동아리였거든요."

- 쉽지 않게 들리는데요. 따로 악보가 있었나요?
"클래식 악보야 인터넷에 저작권 만료된 것들이 많이 돌아다니니까요. 정식으로 배우는 게 아니고 학생들이 알아서 배우는 거라 수준이 높을 수는 없었죠. 그래도 역사가 오래된 동아리고 하니까, 노하우 같은 것들이 좀 있었고... 그래서 그때, 그전부터 악보는 읽을 줄 알았지만, 사보하는 프로그램들도 다룰 줄 알게 되고 그걸 지금 출판사에서도 써먹고 있고... (웃음) 

아무래도 음악을 듣는 태도라거나, 그런 것들이 더 섬세하게 됐죠. 그 동아리에서는 손가락이 줄을 어떻게 지나가야 한다거나 그런 거까지 세세하게 가르쳤으니까. 그런 연주 방법부터 뭔가 어느 부분에서 어떤 느낌을 표현할 때는 이만큼 커졌다가 이만큼 줄어들어야 한다, 이런 세세한 부분을 굉장히 집요하게 듣고, 치도록 훈련을 하다 보니까. " 

- 부원들이 많이 있었나요?
"제가 있을 때는 굉장히 많았죠. 한 학기에 한 60~70명이 들어왔으니까. 최근에 소식을 듣기로는 많이 죽었다고 들었으나, 옛날에는 그랬어요. 그 동아리에서 제가 지휘도 했었는데, 그 때 제가 하던 합주단이 50명 됐을 거예요. 그러니까 상당히 많은 숫자였죠. 물론 그 모든 인원들이 그 이후까지 남는 거랑은 별개였지만, 그래도."

- 지휘면 악기가 기타만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다른 악기들이 더 섞인 거였는지?
"그러니까, 그냥 진짜 클래식 오케스트라처럼 하는데, 제 앞에는 다 기타만 있는 거예요. 그 모든 악기들이 다 기타가 돼서 제 앞에 있고, 저는 그냥 지휘하고, 그랬죠."

- 그런 식이면 지휘하기도 힘들었을 거 같은데요. 어쩌다 지휘도 하시게 되셨나요?
"저는 동아리를 정말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까지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교 때는 공부에 쏟은 공력을 모두 기타에 쏟은 거 같아요. 그래서 신입생 때부터 동아리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제가 지휘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냥 동기들이 저희 학번이 지휘할 때가 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저보고 다음 합주곡 뭐 할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웃음)"
 
 거닐숨 라이브영상 촬영 장면

거닐숨 라이브영상 촬영 장면 ⓒ 강선영

 
- 시작하신 시점의 이야기들을 들었고, 정규앨범 <악수>를 만들던 당시에 기억나시는 에피소드라거나 과정을 좀 더 얘기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음, 돌이켜보면 되게 재미가 없어요...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어요. 그냥, 쭉 이렇게 나온 느낌인데. 2013년 되자 공연을 했고, 2014년에 앨범이 나왔죠. 2014년 한 해가 <악수>에 힘을 쏟은 해였죠. 2014년 초에 제가 맥북으로 대강 드럼 찍고, 베이스 찍고 해서, 데모를 만들고 그 다음에 세션을 섭외를 했고. 그런데 아무래도 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하니까, 드럼 같은 경우에는 그냥 제가 찍은 걸 넣은 거였어요."

- 드럼이 크게 위화감은 없던데요.
"엔지니어분이 잘 만져주셨어요. 그리고 필요한 세션을 최소한으로만 섭외했어요. 같이 활동하던 대현이 형이라던가. 그리고 지니가던 조씨 형이 '술'에서 까혼을 쳐줬죠. 그리고 인터넷에는 공개가 안됐는데 그 앨범 히든 트랙으로 넣은 '농담'이라는 곡에 레이디버드 누나가 노래를 같이 불러주셨어요. 사실 '농담'이라는 곡은 더 잘 만져가지고 이후 앨범에도 넣으려고 했던 건데, 괜찮은 곡인데 안 넣기는 좀 아까웠어서... 그런데 되돌아보니 곡이 아깝네요.
 
실질적인 녹음은 7월부터 8월까지였으니까, 그렇게 오래 걸린 건 아니고요." 

- 일정을 꽤 몰아서 하셨나 보네요. 
"네, 최소한으로 레코딩 비용을 잡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었죠, 아무래도. 그래서 드럼이나 건반을 제가 찍거나 쳐가지고 파일로 가져갔고, 거기에 맞춰서 베이스가 들어오고. 일렉 기타도 제가 쳤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제가 하고, 최소한으로만 세션을 섭외하고, 그걸 가져가서 믹싱 엔지니어님한테 부탁을 하고. 빨리 빨리 나왔어요, 되게. 그리고, 마스터링은 10월쯤에 했는데, 그 남는 기간 동안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해가지고 리워드 선물 준비하고, 어쨌건 저는 <악수>가 가을에 나오면 좋겠다, 고 생각해서, 여유 있게 일정을 진행했어요, 그보다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재미없게 착착 진행이 됐고, 11월 한 달 연습하고 쇼케이스 하고 그랬습니다. 

그게 즐겁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이미 녹음했을 때 악수에 들어간 곡들은 저한테 오래된 곡들이었고, 너무 옛날에 했던 걸 계속 들여다보면 좀 그렇잖아요? 뭐든지. 그게 앨범 만들 때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은 원인이었고, 그 기억이 가장 남아요. 다음 앨범에 들어갈 곡들도 사실 <악수> 나오기 전부터 만든 곡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요즘 곡을 일부러 안 쓰고 있기도 해요." 

- 아무래도 정리부터 하고 싶으신 걸까요?
"앨범 제작 기간하고 곡이 나오는 기간이 너무 차이가 크면 좋지 않아서, 그 기간을 줄여보고 싶어서, 올해는 딱 한 곡만 썼네요." 

- 정규앨범에 실린 곡들이 아무래도 실패나 상처 등 주로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곡들이 많다보니, 스스로가 그에 대한 답변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일단 어려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나의 노래가 그 어려움들을 보여 준다면 좋겠다"라고 얘기하셨던데, 그러한 곡을 쓰는 태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시는지, 최근에는 어떤 식으로 곡을 쓰시는지 궁금하네요.
"긍정적인 주제로 노래가 안 나오는 건 지금도 똑같은 거 같고요. 기본적으로 항상 저를 자극하는 문제들은 부정적인 데서 나오는 것 같네요."

- 다른 사람 말 할 처지는 아닌데... (웃음) 왜 그러신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침묵)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어쨌거나 밝은, 열심인 분들도 많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진짜. 긍정적인 것도 분명 느낄 때가 있죠, 저도 당연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그것들이 곡의 소재가 되는 일은 정말 드무네요." 

- 긍정적인 주제로 쓰셨다고 생각되는 곡이 있나요?
"클래식 기타 합주 그 동아리 내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된 커플들이 많아요. 그래서 축가를 써주고 불렀죠. 그게 정말 유일한 것 같아요. 행복하게 살아라, 하고 바라는 것. 그 곡을 앨범에는 못 넣을 것 같아요. (웃음) 왜 그럴까요." 

-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런 걸 잘 합리적으로 설명은 못하겠어요. 어떤 성격의 곡을 넣든 어떻게든 할 수 있는데, 그런 쪽으로는 아직도 마음이 잘 가질 않네요." 

- 거닐숨님 음악들은 곡조 자체는 어두우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내시는 그런 느낌인데요.
"네, 그런 건 있죠. 과장된 걸 천성적으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항상 뭔가 제 곡들은 일정한 범위 내에 다이나믹이라거나, 템포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극단적인 그런 상태로 가는 걸 의식적으로 꺼리기도 하고, 마음으로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항상 어느 정도로는 유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도 뭔가, 클래식을 진지하게 들어서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 그래서 그런지, 곡들이 기승전결이 명확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곡을 쓸 때 항상 기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규칙은 최소한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부분과 부분 간에 연결 같은 거를 생각하게 되네요. 오늘 연주했던 'O(오)'를 예로 들면 그 곡은 일단 곡의 큰 줄기가 되는 대상이 두 분이 있고, 각각의 A들 사이에 B가 있고, 처음으로 시작했던 데로 다시 돌아오는 그런 느낌으로 끝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별도의 인트로를 붙인 거고, 그러나 그 인트로가 마음대로 되면 안 되니까, 물론 아무렇게 만들어도 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규칙이 있으니까 최대한 본 곡에 있는 코드들을 최대한 조합을 하자, 그러나 특이하게 연결을 해서 다른 식으로 들리게 만들자, 라는 식으로 합니다."

- 곡 하나를 쓰시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인가요?
"다른 분들이 곡을 쓰시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잘 몰라서... 새 곡이 나온 지가 오래 됐고. 그런데 점점 더 곡이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하루 만에 쓴다거나, 그런 적은 없고 이틀 사흘이 아마 가장 빨랐던 거 같고요. 한두 달 정도 걸리는 게 평균인 거 같네요.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대단한 곡을 쓰는 것 같지만. (웃음)" 
 

- 이런 태도가 곡 자체의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서 궁금했습니다.
"네, 그렇죠. 만족되어야 하는 규칙을 뭔가 항상 생각하고 있어서. 분명히 저만 알아볼 수 있는 규칙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다는 강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걸 탈피해보려고 했던 게 '여름 아침'이라는 곡인데, 그건 정말로 구조 같은 건 생각 안하고 처음이랑 끝을 다르게 끝내버리고 싶었어요. 

그 곡을 2014년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끝을 내지 못하다가 전역 이후인 2017년에 완성을 했죠. 그런데 결국, 그런 무(無) 구조에 실패하고 수미상관으로 끝나버리죠. 아직까지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가 되지는 않네요. 잊어버리고 순간에 확 나오는 게 전 거의 없는 거 같아요."

- 공연 때 보면 피아노와 기타를 둘 다 능숙하게 다루시던데, 악기는 언제부터 처음 시작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기타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들어간 스무 살 때부터,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치긴 쳤거든요. 길게는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그게 여섯 살, 일곱 살 때라고 생각하고 어머니께 여쭤봤는데 어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을 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때 학원도 안 다녔고 어머니가 가르치시는 바이엘을 보고 따라 쳤겠죠, 아마.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돼서 졸업할 때쯤이 되니까, '내가 다른 악기들도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실용음악학원에 찾아가서 배웠어요. 오래 배우지는 않았고, 두 달 정도. 나머지는 제멋대로 했어요. 능숙하게 다루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할 줄 아는 걸 하는 거죠."
 

 
광화문

제 집을 등 뒤에 두고도 쫓겨난
대왕은 아무 말 없으시네
그 산만한 세월, 별별 못 볼 꼴들
어찌 지났는지 모르시네
당신의 발 아래, 어엿븐 사람들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수만 번
둥둥 떠 다니던 파라핀 냄새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광장엔 아직도
차게 식은 영정, 열을 맞춘 군화
그 모두가 남아 있으니 외로워 마소서

잿빛 도로 중간, 섬처럼 뜬 땅은
예서 저 끝까지 잘 보이네
덩그러니 솟은 멍한 가건물은
일회용으로는 거대하네
궁색한 글꼴의 한글 간판들과
하루 두 번씩 바뀌는 수문장께서는
목적도 잃었고 예쁘지도 않아
버스 안의 시선조차 붙잡지 못하나
하얀색 현판은 곧 바뀐다 하니
얼마나 더 부끄러울까 두려워 마소서

- 거닐숨, '광화문' 중에서 

- 그래서 한편으로, 2018년 5월 18일에 공간 비틀즈에서 하셨던 공연에서 '광화문'이라는 신곡을 아무런 악기 없이 아카펠라로 부르시는 게 더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그 곡은 혹시 어떤 식으로 쓰시게 됐던 건지 궁금하네요.
"정말 극단적으로 단순한 곡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 곡은 정말 목소리로만 하는 곡으로 만들자고 생각하고 그렇게 만든 거였고, 올해 쓴 유일한 곡이 그거에요. 1도, 4도, 5도, 딱 3개에다가 중간에 6도 하나 들어가고, 정말 그렇게 단순하되, 단순해서 간결하고 힘이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 제가 가장 느끼는 건 '권태'에 관한 문제라서. 자잘하게 새로운 일들은 일어나는데, '왜 분명히 나는 군대도 갔다 왔고, 취직도 했고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변화가 없는 거 같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그리고 아마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가장 크게 느꼈을 변화는 정권교체였을 텐데, 그게 정말 그렇게 큰 변화였을까...? 한번 물어보고 싶었던 거죠. (살고 있는) 부암동이 광화문과 가깝고, 주말에 집회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고 하니까, 제가 느끼기 쉬운 주제이기도 했고. 그래서 최대한 단순하게. 그 곡의 코드 멜로디는 하루만에는 아니지만 빨리 나왔고, 가사가 오래 걸렸어요. "

- 아카펠라 형식의 곡을 쓰신 건 이게 처음이었나요?
"네, 처음이었죠. 저도 재밌었어요. 편하기도 하고, 정말. 몸이 악기를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생각 안 하고 머리로만 쓸 수 있는 곡이었으니까." 

 - 정규앨범을 발매하신 이후에 군대를 가시면서, 꽤 오랜 기간 공백기가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한 공백기가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하네요.
"그게 음악에 미친 영향은... 딱히 없는 거 같아요. 누가 제가 군대 있을 때가 표정이 제일 편해보였다고 그랬는데, 맞아요. 그 부대가 편한 부대이기도 했고, 좀 안 좋은 일은 있었으나. 제가 되게 늦게 들어가서, '애들 보는 거 재밌다' (웃음) 그랬던 거 같아요." 

- 작업에 대한 갈증이나 그런 건 없으셨나요?
"그때 곡을 많이 쓰지는 못했어요. 처음에 들어갈 때는 되게 열심히 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길다는 생각은 했는데, 갈증은 의외로 그렇게 안 느껴지더라고요."

- 공군이라서 자주 나오셔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아, 그래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좀 더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악수> 쇼케이스 끝났을 때부터 공연에 대한 욕구가 확 줄었던 거 같아요. 그전에는 연주가 되게 즐겁고, 좋고 그랬는데, 앨범 영향이 좀 크게 있었으려나...? 힘이 빠지게 된 건지. 아무튼 그 이후로는 집에서 연습을 할 때 안 되는 것들에만 자꾸 주목을 하게 되고, 예전에 기타 잘 칠 때는 정말 날아다녔는데, 군대가 확실히 제 연주 능력을 떨어뜨리게 한 건 맞아요. 

그러니까, 어떤 공연 섭외가 들어오면 그 기간 동안 앨범 작업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겠는 거예요. 섭외를 받아서 공연 준비를 하고 연습을 하면, 연주가 맘에 안 들어서 너무 많은 힘을 쏟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공간 비틀즈에서 딱 한 번 한 거고, 기획자 권형씨가 아니었으면 그것도 안 했을 거 같아요. 작곡에 영향을 미친 건 없는 거 같은데, 연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 원인은 됐겠네요."
 
 거닐숨 라이브 영상 촬영 장면

거닐숨 라이브 영상 촬영 장면 ⓒ 강선영

  
- 2017년 7월 29일에 지금은 사라진 염리동의 '바닥'이란 공간에서 '권태로운 꿈'이라는 타이틀로 단독공연을 하시면서, 공연을 하기 전에 연재하셨던 여섯 편의 에세이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 공연과 에세이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 싶네요.
"공연이 2017년 7월 말이었고, 제가 전역을 2017년 5월에 했으니까 그 무렵이 '어떤 식으로 공연을 다시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죠. 일단 배경은 그렇고, 전역 직전에 제가 휴가 때 '바닥'에 갔어요. 원래 '바닥' 공간의 주인분이 예전에 연남동에 '토끼바'라는 다른 공간을 하셨는데, 그때 거기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 공간이 문을 닫고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다가, 그쪽에 다시 열었다고 해서 '최성호특이점'이라는 재즈 밴드가 공연을 해서 보러 갔어요.

그 때 다음 달에 공연해주시라고 하시면서 뭔가 좀 특이한 게 있으면 좋겠다, 는 주문을 사장님이 하셨어요. '최성호특이점' 그 분들은 관객들이 어떤 짧은 글을 써서 건네면 그걸 즉흥으로 연주를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걸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면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전 즉흥으로 하는 건 못하고, 미리 준비되는 건 할 수 있으니까 공연 전에 뭔가 주제를 잡아가지고 그거에 대한 에세이를 연재해보면 어떨까요?" 하니까 괜찮겠다고 하셔서, 했죠.

사실은 전역 전부터 그랬던 것 같지만, 전역하고 다시 공연을 하려고 하던 때였으니까, '어쩌다가 음악을 하게 됐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고. 그때부터 '권태'라는 문제를 생각했어서, 음악하면서 느꼈던 즐겁지 않은 감정들에 대해서 글을 썼어요."

- 에세이들이 개인적으로 다 좋았는데, 마지막 편인 '꿈'에서 "일상의 전부를 음악에 쏟는 게 가능하다는 건 좋은 일일까. 반대로 음악을 아예 그만둔다면 살지 못하게 되기라도 할까. 양 극단과 그 중간의 어떤 지점을 생각해 봐도 늘 제자리에 있을 것 같은 권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말 혁명적인 세계가 도래하면 권태는 사라질까. 그건 좋은 일일까"라는 질문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래도 요즘은 음악과 생활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뮤지션들이 많다 보니까, 현재의 다른 여러 인디뮤지션들에게도 와닿는 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더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안 해봐서 상상이 안 되는 걸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뭔가 좋을 거 같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그런 말을 적은 거죠." 

- 저도 '음악만 하는 삶이 꼭 좋은 걸까..? 하지만 일만 하며 사는 삶에 만족을 못하니까 내가 음악을 하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서, 이런 '권태'는 어떤 게 원인일지 생각해보게 됐네요.
"제가 일 때문에 음악에 쏟을 시간이 부족한 건 맞아요. 일단 맞는데, 그래서 일 생각 안하고 음악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치만 일이 저한테 동시에 힘을 주는 게 있거든요, 분명히.

아무런 일이 없는 생활과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의 양극단을 비교하면 저한테는 후자가 좋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분명히 피곤하고, 변화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나, 이 생활이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닌 거죠."

- 혁명적인 세계란 건 아무래도 환경이 아예 그렇게 바뀐다면, 그런 의미이신지?
"그러니까 정말 그렇게 일의 제약이 없는 날이 오면, 제가 생각하는 이런 권태는 아마 없어지겠죠. 하지만 다른 형태의 권태로 변하게 될 것이고. 그건 그러면 맘에 들겠느냐, 하는 질문을 저한테 해본 거였죠. 별로 그럴 거 같진 않아요, 저는. 음악만 했을 때 얻어지는 자극이랄까, 활력이랄까, 그런 거. 연주를 많이 줄이게 된 게 그런 부분에서의 회의 때문이기도 한데, 그러니까, 연주를 하면서 나에게 돌아오는 뭔가 자극이나 피드백을 생각하면 인디 음악을 하는 희망이 없지 않나요..? (웃음)

저도 시작할 때는 그런 반응 같은 거라거나,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미칠 영향이라거나, 그런걸 되게 많이 생각했던 거 같은데, 그게 어떻게 되나요? 들어주러 오는 사람이 없는데 (웃음) 그러니까 점점, 음악 자체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하게 되는데 음악 활동이라던가, 음악계라던가, 내 음악이 누구에게 미칠 영향이라거나, 그런 거에 대해서는 점점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 활동만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자극이랄까, 그런 게 저로서는 지금 상상이 잘 안돼요. 다른 일을 함으로써, 뭔가 어쨌거나 삶이 굴러가게 되는 건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이게 또 없어지면 안 되는 그런 거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 지금 답변들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현재 음악 외에 출판사에서 일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 일과 음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출판사는 처음부터 생각하신 직종이었나요? 
"음, 아니었죠. <악수>를 발매하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문화 예술계 쪽에서 정규직으로 돈 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정말 유일하게 그런 직종에서 직장에 다닌다는 개념이 잡힌 데가 출판사밖에 없는 거 같더라고요.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였어요. 그랬는데 지금은 이것도 잘하면 좋겠구나, 생각을 하고요. 

출판 편집과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가장 다른 건 아무래도 노래를 만드는 건 온전히 제 거죠. 그러나 편집하는 건 편집자의 것이 아니에요, 저자의 것이죠, 분명. 뭔가, 메이저 한 데서 다른 아티스트들한테 곡을 주는 작곡가라면 다를 수가 있는데, 저는 그래본 경험이 없으니까, 성격이 되게 다르더라고요. 물론 글을 잘 쓰는 게 편집자의 중요한 능력이지만, 그거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업무는 주로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제가 아직 입사한 지 1년도 안 됐기 때문에 뭐라 하기 그런데, 일률적으로 뭔가 정의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만드는 책에 따라 역할이 달라져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작년에 전역 직후에 한겨레 문화센터에 출판 편집 학교라고 있거든요, 그 프로그램을 수강을 했는데, 사실 거기에서 배운 게 그렇게 많진 않았어요. 인쇄소도 견학하고, 일반적인 걸 배우긴 배워요. 그런데 그 일반적인 게 그 형태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아예 없어요." 

- 실무는 아무래도 많이 다른가 보네요?
"그죠. 어떤 책이냐에 따라 성격이 정말 다르고, 안 생기는 일이 생기니까요. 지금 회사에서 오선보를 능숙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아마. 그래서 클래식 음악 다루는 교양서 일을 제가 담당하고 악보 제작하는 분과 연락 주고받으면서 조정하고 있고 그래요. 다른 특이한 책을 만드는 경우에는 다른 고유한 일이 있겠죠. 그러니까 그건 정말로, 어떤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만드는 책의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그걸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 되게 힘든 일인 거 같아요." 

- 그런데 마침 어떻게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시게 되었네요?
"운이 좋았죠. 채용 공고를 볼 때 보니까 구체적으로 써 있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미술, 음악, 과학 등에 대해서 같이 공부할 편집자를 구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었어요. '그러면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을 하겠지'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긴 들었어요. 촉이 왔어요(웃음)."

- 그러면 클래식 음악 시리즈 책들이 거닐숨님이 참여하시는 첫 번째 시리즈인 거죠?
"네, 그렇죠. 다음달에... 나와야 할 텐데요.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웃음)"  

- 그래도 보람이 있으실 거 같네요. 
"네, 되게 있어요. 저희 팀 팀장님은 이걸 7년을 해 오셨다는 게, 대단하신 분입니다."
 
 거닐숨

거닐숨 ⓒ 강선영

 
- 음악 외에 최근에 갖고 있는 다른 취미나 관심사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네요.
"프랑스어를 배워요. 사실 그렇게 오래 안 됐어요, 저번 달부터 한 거라. 아무래도 미술이고 음악이고 과학도 사실 그렇고, 유럽에서 많이 온 거고 하니까, 영어 말고 다른 유럽의 언어를 배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게 되었고, 사실 프랑스어는 제2외국어로 고등학교 때 대충 배우고 10년 만에 다시 했어요. 사실 학원에 가기 전에 EBS 수능 특강을 혼자 보긴 했거든요. 복기를 좀 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선생님은 영어랑 비교하는 게 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말씀을 하시긴 하지만, 저는 비슷한 것도 보이고, 차이도 보이고 하면 재밌어요. 뭐랄까, 영어는 다른 유럽어에 비해서 인칭 변화가 적고, 성/수 그런 구별도 적은 편이고, 하지만 영어는 철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규칙이 없는 언어인데, 프랑스어 같은 경우에는 되게 잘 맞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비교하는 게 재밌어서, 앞으로도 좀 오래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프랑스어 위키피디아를 이해할 정도가 되는 게 우선 목표입니다." 
 

- '최근의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곡을 골라서 라이브 영상을 찍기로 했었는데 'O(오)'라는 곡을 골라주셨습니다. 노래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노래를 군대에서 만들었어요. 2016년에, 군대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의 노래고. 되게 오랜만에 나온 곡이였어요. 뭔가 힘이 안 들어간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곡의 주제는 제가 좋아하는 어떤 두 뮤지션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에요. 그러니까 좀 조심스러운데 최근에는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특질과 작품을 자꾸 분리해서 바라봐서, 많은 문제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아직까지 저는 일단 그게 그렇게 연결되는 건지, 좀 회의가 있어요. 아직까지도 저는 좀 별개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거든요. 쓰레기 같은 인간도 좋은 작품을 만들긴 만들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니까요. 

아무튼 그런데, 제가 'O'를 생각하고 만들었던 그 대상이 되었던 그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을 때는 비합리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우울함을 연기로 만들 수 있나?' '개인적인 우울함이 넘쳐흘러서 곡에 담긴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데 그 분들이 요즘 앨범이 나오는 게 뜸하고 그래서, '뭐하고 계실까? 그분들은. 좀 너무 우울해지지 말고, 잘 사셨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을 담았고. 

그분들의 음악이 그렇게 복잡하거나 뭔가 구조 같은 걸 생각하는 그런 음악하고는 약간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단순하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그런 류의 음악 같거든요. 옛날에는 되게 그런 음악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내가 저 정도는 넘을 수 있지' 뭔가 그런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고. 그런데,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에요. (웃음)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도 좀 있는 그런 노래인 거죠."

- 이 노래 안에 꽤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 있네요.
"제가 음악을 시작했을 무렵 같이 활동하던 홍대 씬의 다른 많은 음악가분들도 안 보이는 게 사실이고 하잖아요. 그런데 누군가한테는 저도 요즘 공연을 안 하고 있으니까, 음악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어쨌든 음악을 안 한다고 하기에는 그렇긴 하거든요, 분명히 저는. 그러니까, 어떤 상태로든, 어디서든, 음악을 하고 계시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을 안 하면 그게 실패한 삶도 아니고. 

그러니까, 결국 '저도 어쨌든 음악을 하고 있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의미로 골랐습니다." 
 
- 최근에 본인 음악 말고 즐겨듣거나, 추천하고 싶으신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으신다면?
"가을이라 취향이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는데, 다시 클래식 기타 음악을 듣게 되는 것 같아요. 피아졸라(Astor Piazolla)가 기타 하나만을 위한 독주곡으로 쓴 '로맨티코(Romantico)'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을 오랜만에 듣고 있습니다. 로베르또 아우셀(Roberto Aussel)이라는 연주자의 버전으로 듣고 있고. 

제가 닮고 싶어 하는 뮤지션 중에는 티아고 요르크(Tiago Iorc)라고 하는 브라질 출신의 싱어송라이터가 있으신데, 옛날에 그 분이 한국 무슨 드라마에 곡이 삽입돼서 반짝 잠깐 유명했어서, 3집까지는 라이센스 돼서 나왔다가 4집부터는 안 나왔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을 되게 좋아해요. 뭔가, 앨범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더라고요. 1~2집은 영어로만 나왔고, 3집은 영어랑 포르투갈 반반으로 나왔고, 4집은 포르투갈어로만 나왔는데, 그중에서 3집을 제일 좋아하고, 일단 그분도 어쿠스틱 기타가 위주가 되긴 하는데 3집이 되게 묘한 그런 느낌이 있어요. 어쿠스틱 기타로 쓴 곡인데, 완성된 음악은 뭔가 엠비언트스럽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되게 재미있게 들은 앨범인데 그 앨범을 요즘에 다시 듣고 있습니다. <제스키(Zeski)>라는 앨범입니다."

 - 본인의 음악 중에서 추천하시고 싶은 노래를 3곡 꼽아주세요.
"오늘 연주한 'O(오)'. 제가 만든 곡 중에서 가장 편한 거 같아요. 실제 물리적으로나, 제가 생각하는 마음으로도. 다음에 '손톱'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제가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쓴 노래가 잘 없는데 그게 입대한 지 얼마 안 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랑 떨어져 있는 감정으로 되게 자발적으로, 흔하지 않게 나왔던 노래에요. 어쩌다보니까 그게 저의 이십대 초반과의 작별과도 같은 노래가 된 거 같기도 하고요. 

나머지 하나는 '권태 인정'이라는 노래로 하겠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붙여서 표기되고 있지만, 저는 띄어 쓰고 싶습니다. (웃음) 그 곡의 상황은 카페 알바와 손님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적의에 대한 이야기." 
 

- 아르바이트를 실제로 하셨을 때의 이야기인 건가요?
"재구성이죠. 음, 그렇고, 그 곡의 스타일은 어쨌거나 라틴 리듬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라틴 리듬인 거 같지는 않은데, 최대한 신나는 리듬으로 지루한 곡을 써보고 싶었어요." 

- 상반된 느낌을 담고 싶으셨나보네요?
"네, 특이한 리듬이긴 하나, 그게 지속되면서 변화가 잘 없고 쭉 이어지고 되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런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나름대로는 어느 정도 된 거 같아서, 제가 좋아합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공연, 음반 등)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내년 초에 2집을 내는 것이 목표인데, 제가 그동안 활동을 너무 안 하고 발이 좁다보니 프로듀서를 찾는 것이 힘듭니다. 웬만하면 내년 초에 발매를 했으면 좋겠어요. <악수> 때처럼만 작업을 하면 가능은 할 건 같은데... 정말, 정말, 이걸 더 끌고 싶지 않아요."

- 지금도 곡들이 좀 오래된 느낌이 있으신가 보네요?
"네, 정말 만들고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서, 프로듀서를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게 일단 가장 급한 계획입니다. 그 다음의 일은... 어떻게든 되겠죠, 뭐. (웃음) 별로 생각안합니다." 

- 일단 음반으로 하나 하나 정리해버리는 게 목표이신 거 같네요.
"네, 일단 그게 제일 급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곡을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21세기포크싱어송라이터 인디뮤지션 싱어송라이터 거닐숨 음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때때로 글을 쓰기도 하는 작업자.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중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