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못난 놈들의 낙원 '참프루'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는 에세이집 제목에 감탄했다(정작 책은 안 읽음). 나와 친구들을 너무 잘 표현한 문구 같아서. 그리고 서울 마포구 망원동 '참프루'는 못난 이들을 위한 낙원이었다.

그곳을 처음 찾은 것은 2015년 겨울이다. 출판사에 다니던 친구가 우연히 받은 명함을 들고 어두운 골목을 헤매다 힘겹게 찾았다. 가뜩이나 추운 날 같은 자리를 수차례 뱅뱅 돌다 약이 바짝 오른 나는, 초면에 "왜 이렇게 찾기 힘든 데에 술집을 열었죠?"라고 물으며 사장에게 성을 냈다. 그날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됐다.

그곳은 주점이자 한 사람의 집이었다. 사장 변익수(30)가 직접 치수를 재고 구글 스케치로 설계한 책장을 열면 사적인 생활공간이 드러났다. 2층 침대, 독서실 책상, 신발장, 옷장, 세탁기 등이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주점 손님들에 의해 사생활은 자주 침해당했다. 그곳에 진입해야 화장실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평상과 간판 같은 큼직한 시설부터 잡지, 달력, 스티커 같은 작은 것까지, 공간 구석구석 사장의 손길이 닿았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그 과정을 통해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성향이 반영되기도 한 결과였다고 그는 말했다.

공간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작고 느려서 성격 급한 나의 인내심을 자주 시험했지만, 둥글고 선한 성정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재빠르고 약기보다 즐거움을 좇으며 느긋하게 살아갔고, 그 때문인지 음식과 술이 제공되는 속도 역시 매우 느렸지만 대신 가격이 저렴했다. 덕분에 주머니가 가벼운 친구들과 나는 그곳에서 자주 만났다. 그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도 그날 하루만큼은 친구가 됐다.

참프루는 쓸쓸하고 차가운 냉대로 가득 찬 하루를 온기로 덮으며 마무리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밥이나 술로 몸의 열기를 돋우는 곳. 낯선 이와도 불쑥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딱한 사연의 누군가에게 선뜻 술을 사주는 호인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에 들어서면 뭔가 다른 시공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지난 9월의 마지막 주, '참프루'를 나와 망원역을 향해 걸었다. 밤공기가 차가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제서야 '참프루'의 마지막 영업 주간이라는 게 덜컥 실감나 슬퍼졌다.

당장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었다. 10월 동안 참프루를 전시회장 '뱅가드(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1가 청파로 320-11)'에 재현한 것이다. '참프루 시체전'이라는 이름으로. 참프루가 건물주에 의해 죽임 당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참프루 시체전 입구
 참프루 시체전 입구
ⓒ 최서윤

관련사진보기


참프루 시체전

'못난 놈' 변씨는 선의를 가지고 대하면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이웃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음식을 나누었고(나도 그 수혜자다), 연말연초에는 직접 만든 스티커나 달력을 선물하곤 했다. 달력에는 '웃음 판매' '술 시중' 따위의 농담이 쓰여 있었다. 문구가 무색하게 그는 최근 몇 개월 동안 전혀 웃지 못했지만.
 
 참프루 달력
 참프루 달력
ⓒ 최서윤

관련사진보기

   
처음 참프루를 찾기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가 다 있었다. 참프루가 입점한 곳은 당시 망원동에서 '공방길'로 불리던 곳이다. 골목시장이 있었으나 망원시장에 주도권을 뺏기며 사람들이 다니지 않게 됐고, 빈 점포가 많이 생겨 어둡고 조용한 '망한 상권'이었다. 덕분에 임대료 시세는 저렴했다.

그런데 점점 거리가 밝아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찍혀 올라올 만한 것들을 파는 음식점과 카페, 옷집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상권이 활성화된 것.

그러자 참프루 주인인 변씨에게도 불행이 닥쳤다. 건물주가 자기 아들 보고 장사하게 할 테니 나가 달라고 통보한 것이다. 2014년 9월에 계약을 했으니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통보 후 대화에도 응하지 않던 건물주는 변씨가 내용증명으로 서류를 보내고 나서야 대화를 했다. 하지만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한 뒤였다. 건물주와 같은 건물에서 영업을 하던 터라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던 변씨는 손해를 감수하고 그곳을 나오기로 했다.

결국 변씨는 인테리어에 투자한 비용도 회수하지 못한 채 단골손님들의 도움을 받아 쓸쓸히 짐을 실어 퇴장했다.

참프루는 활력 있는 상권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돌아다니기 무섭고 어두웠던 거리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바뀐 건 세입자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건물주는 그게 세입자 덕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그냥 자연발생적인 줄 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열심히 일하며 바꾼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변씨의 사연을 듣고 공분하며 널리 알려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성정이 게을러 전시회 마지막 날(10월 30일) 글을 완성하고 말았다. 못난 놈이라 미안해… 참프루의 '시체'를 전시하는 기간이 끝나도 변씨는 전시회장 2층에 머물 예정이고, 라이터 '강매' 및 중고물품 판매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니 모쪼록 계속 찾아 주시길...
 
 참프루 전시회 기념 라이터
 참프루 전시회 기념 라이터
ⓒ 최서윤

관련사진보기

 
'소유권'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

일 년 전, 참프루를 비롯한 5개의 주점을 소개한 <합니다, 독립술집>이라는 책은 지금 '데스 노트'가 되어버렸다. 책이 나온 지 1년이 안 되었는데 이 중 80%의 주점이 문을 닫았거나 닫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중 과반수가 임대료 상승 및 건물주 갑질과 관련 있다.

올해 상가임대차법의 모순에 대해 고발하며 한국사회에 충격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궁중족발'의 사장과 건물주의 분쟁이었다. 건물주가 297만원이었던 월세를 1200만 원으로, 3000만 원이었던 보증금을 1억원으로 올린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임대료 책정은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는 일을 요원하게 하고,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로 쫓겨나면 권리금은 건물주의 몫으로 흡수된다. 상가임대차법의 모순과 그것을 너무나 '잘' 이용하는 건물주 때문에 세입자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 사건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필요성에 많은 국민들이 주목했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모순을 완화하는 개정안이 추석을 앞두고 통과됐다.

환산보증금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고, 일부 건물주에게 조세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는 모순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기존의 5년보다 긴 10년 동안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법이 바뀐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있던 법도 안 지키는 건물주들의 사례를 상기하면, 법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또한 바뀔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 중 머릿수로 따지면 건물주보다 세입자들이 많은데 왜 한국 사회에서는 건물주의 입장에서 사건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과 논리가 더 많이, 더 자주 보이는 것인지 늘 의문이었다.

건물의 소유권을 가졌다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게 아니라는 것, 공간을 가꾸고 활동하며 가치를 높인 세입자에게도 권리가 있으며 건물주가 그런 세입자의 덕을 볼 때가 많다는 점을 더 많은 이들이 깊이 공감했으면 한다. 일부 천박한 건물주의 '법이고 뭐고 상관 없이 내가 건물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태도를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프루시체전
 참프루시체전
ⓒ 최서윤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월간잉여>를 편집· 발행했다. 18호까지 발간된 <월간잉여>는 현재 휴간 중이다. 그래서 휴간 중인 본진 대신 오마이뉴스에 글을...

이 기자의 최신기사 김밥에 계란 없다고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