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캐릭터 원작자가 만들지 않았음에도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익명이 캐릭터 인쇄소 스티커.
▲ 작가가 만들지 않았음에도 유통되고 있는 익명이 캐릭터 인쇄소 스티커 캐릭터 원작자가 만들지 않았음에도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익명이 캐릭터 인쇄소 스티커.
ⓒ 익명이 작가

관련사진보기

 
다이어리 꾸미기 덕후인 윤나연(22)씨는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인쇄소 스티커 쇼핑을 한다. 그래봤자 한 달에 약 5만 원이다. 비용에 비해 만족감은 크다. 윤씨는 "10장에 천 원 정도 한다"라며 "다이어리와 일기장에 붙이고 나면 8장 정도가 남는데 박스에 모아두고 보면 너무 예쁘다"라고 했다.

인쇄소 스티커란 인쇄소에 의뢰해 제작하는 스티커를 말한다. 줄여서 '인스'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스티커는 인쇄된 캐릭터 주변에 칼 선이 나있어 별다른 도구 없이 스티커를 하나하나 뗄 수 있다.

반면 인쇄소 스티커는 칼 선이 없어 칼이나 가위 등으로 오려서 써야 한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칼 선이 없다보니 인쇄소 스티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제작할 수 있다. 스티커로 사용하고 싶은 그림을 인쇄소에 보내면 1주일 정도 후에 스티커 1000장을 받을 수 있다.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만 원 안팎으로 스티커를 만들 수 있다.

인쇄소 스티커의 문턱이 낮다보니 웹툰작가들은 물론 일러스트레이터 등 많은 창작자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직장인 김혜리(26)씨는  최근 자체 캐릭터로 인쇄소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작년부터 다이어리 꾸미는 게 한창 유행이었다"라며 "인쇄소 스티커를 사서 쓰다가 내 취향의 스티커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했다. 김씨는 이어 "아무래도 칼 선이 있는 스티커보다 제작방식이 쉬운 편이고 가격도 저렴해서 시작하게 됐다"라고 했다.

다양한 캐릭터·그림 스티커를 '싸고 많이' 살 수 있다 보니 인쇄소 스티커는 10대, 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김혜리씨는 "문구 행사 등에 가보면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인쇄소 스티커를 사러 온다"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김아무개(11)군은 "지난 5월 친구들과 유튜브를 보다가 인쇄소 스티커를 알게 됐다"라고 했다. 그는 "일반 스티커에 비해 더 예쁘고 가위로 자르다보면 캐릭터를 더 자세히 보게 돼서 좋다"라며 "고양이, 강아지, 고래 등 캐릭터 인쇄소 스티커를 사서 다이어리 꾸미는데 사용한다"라고 했다. 유튜브에 '인스 만들기'를 치면 수십편이 나온다. 구독자가 126만 명에 달하는 유튜버 헤이지니도 인쇄소 스티커를 다룰 정도다.

윤나연씨도 "자체 캐릭터나 디자인을 가지고 계신 작가님들의 인쇄소 스티커가 늘어나면서 독특하면서도 질 높은 스티커를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라면서 "인쇄소 스티커는 잘라서 사용해야 하다 보니 일반 스티커보다 크기가 커서 다이어리나 일기장 꾸밀 때도 좋다"라고 했다.

'불법 인스' 판쳐... 작가도 모르는 스티커가 버젓이 유통
 
웹툰 달고나 일기 캐릭터를 도용한 인쇄소 스티커
▲ 웹툰 달고나 일기 캐릭터를 도용한 인쇄소 스티커 웹툰 달고나 일기 캐릭터를 도용한 인쇄소 스티커
ⓒ 달고나일기 작가 제공

관련사진보기

 
인쇄소 스티커 유행 속에서 불법도 판을 치고 있다. 자신의 창작물을 스티커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성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해 스티커로 만든 뒤 판매하는 10대들이 많다는 게 창작자들의 설명이다. 만화가 재수(36)씨는 지난 2016년 자신의 다람쥐 캐릭터인 '다람이'가 그려진 도안이 판매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한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다람이 그림을 도용해 팔고 있었다. 재수씨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몰랐다, 용서해달라'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재수씨는 "다른 캐릭터들의 그림을 그려 스티커 도안으로 만드는 '도아너'(도안과 '∼하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er의 합성어)들이 있더라"라며 "도아너들은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했다"라고 했다. 재수씨는 이어 "그들이 피카추, 보노보노 등 기존에 나와 있는 유명한 캐릭터들을 따라 그려 도안을 만든 뒤 스티커로 찍어서 판매하고 있었다"라며 "그 결과 짱구, 둘리, 스누피, 호빵맨 등 온갖 캐릭터가 한 장에 섞여있는 인쇄소 스티커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달고나 캐릭터 도용한 인쇄소 스티커
▲ 달고나 캐릭터 도용한 인쇄소 스티커 달고나 캐릭터 도용한 인쇄소 스티커
ⓒ 달고나 작가 제공

관련사진보기

 
웹툰 <달고나일기> 작가 서아무개씨도 캐릭터 도용 피해자다. 서씨는 "스티커, 메모지 등 문구류를 파는 마켓이나 페어에 가면 본인이 구매할 목록을 메모지에 적어와서 '이거 있냐'고 묻는 중·고등학생들이 있다"라며 "목록을 확인하려고 메모지를 본 순간 제가 인스로 만든 적이 없는 달고나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이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 후다닥 자리를 떴다"라고 했다.

조악한 그림체의 '달고나' 도안이 온라인 장터에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제보도 많이 받는다. 서씨가 "도용하지 말라는 내용을 SNS에 올리자, 자필로 쓴 반성문들이 왔다"라며 "반성문에는 '친구들이 다 하니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중학생이어서 몰랐다', '어려서 몰랐다' 등이 적혀있었다"라고 했다.

작가들이 '도용 금지'를 강조해도 저작권 인식은 나날이 옅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씨는 "마켓에서 제품을 팔다보면 구경하던 친구들이 '이거 그대로 스캔 떠서 (인쇄소에) 맡기면 되겠는데', '이 정도면 나도 따라 그리겠다' 등의 말을 하면서 지나간다"라고 했다. 서씨는 "캐릭터가 도용된 인스를 보는 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라며 "이마가 뜨끈뜨근 해지고 두통이 몰려온다"라고 했다.

시장 전체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서씨는 "도용이 늘어나면서 원작자가 있음에도 그림체가 공공재처럼 여겨지고 있다"라며 "마켓에 앉아있다 보면 '이 마켓은 그림이 다 똑같다', '이거 저기서도 팔지 않았나?', '굳이 여기서 살 필요 없겠는데?'라는 말을 하면서 지나가는 손님들을 하루에도 수없이 본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이던 2010년부터 인쇄소 스티커를 즐겨 사용했다는 전아무개(20)씨는 "구매한 인쇄소 스티커를 나누는 오픈채팅방이 열리면 짱구, 지브리 등 저작권이 있는 캐릭터들의 스티커가 많다"라며 "채팅방에서 불법이라고 말하면 몰랐지만 가지고 싶으니까 산다고 하거나, 파는 사람이 문제지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라고 했다. 그는 "소비자가 있으니까 불법으로 도용한 제품이 계속 나오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없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타인의 캐릭터를 도용해 스티커를 만들어 무단으로 판매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김종휘 마스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타인의 저작물을 스캔하거나 따라 그린 스티커를 상업적으로 유포하기 시작하면 2차적 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라며 "저작권법 136조 1항 1호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태그:#인스, #인쇄소스티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