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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시에서 살고 있는 손영자 씨. 가난했던 삶을 뒤로 하고 늦었지만 한문과 성경을 써 가며 행복을 찾고 있다.
 충남 당진시에서 살고 있는 손영자 씨. 가난했던 삶을 뒤로 하고 늦었지만 한문과 성경을 써 가며 행복을 찾고 있다.
ⓒ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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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3일은 멀다 하고 토끼 같은 손자들이 할머니를 찾는다. 주말이면 부르지 않아도 아들 가족들이 찾아와 시끌벅적해지곤 한다. 다복하면서도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그 역시 삶과 죽음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는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삽교천에 빠져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단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했던가.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특별한 것도,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단다.

생·사의 갈림길

충남 당진 신평면 남산리에서 살고 있는 손영자씨(67)는 23세에 결혼했다.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둘과 함께 살았다. 아들 셋을 낳았지만 잠시도 쉴 수 없었다. 갖고 있던 재산도 하나 없었고 돈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편 대신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소매를 걷어야만 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고 말했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밭이며 논이며 몸 사릴 새 없이 뛰어 다녔다. 공장을 전전했을 때도 있었고 청소 일을 하거나 지인과 식당을 동업하기도 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앞섰기에 집 벽이 곰팡이로 까맣게 물든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 새도 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도 힘든 삶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일단 오늘 바르게 살고, 내일 죽는다면 죽자"고 굳게 마음먹었단다.

"엄마 빚이 얼마야?"

"성경에 보면 '금은 뜨거운 용광로를 들어갔다 나와야 반짝이고, 인간은 뜨거운 시련을 겪어야 참인간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와 닿았어요.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마음먹으면,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세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을 무렵 막내아들이 물었다. 엄마 빚이 얼마냐고. 대학만 졸업하면 이 빚은 빚도 아니라며 엄마 손씨를 위로했다. 정말로 아들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생계를 책임졌다.

까맣게 슬었던 곰팡이 벽지가 아닌 하얗고 깨끗한 벽지가 발라졌으며 환한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거실도 생겼다. 또 5명의 손자까지 본 그는 이제는 누가 봐도 다복한 모습이다. 그는 "지금도 역시 돈 많지 않다"며 "그래도 매일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손영자 씨가 쓴 한자와 성경
 손영자 씨가 쓴 한자와 성경
ⓒ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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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배움의 길

한편 손씨는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배움을 그만둬야 했던 손 씨는 못 배운 한이 가슴 속 깊이 남았단다.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천자문을 펼쳤고 한 자씩 익혀갔다. 수년을 쓰고 읽으니 이제는 웬만한 한자는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또한 시간을 쪼개가며 매일 같이 성경을 쓴다. 합덕읍 신리 출신으로 천주교 순교자의 후손이기도 한 그는 직접 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벽장 안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현재는 송악실버프리요양원에서 8년간 근무하고 있다. 3교대로 일을 하면서도 새벽이며 저녁이며 항상 성경, 한자와 대화하는 그다.

"글을 쓸 때 행복해요. 지금도 한자 하나를 쓰고 혼자 해석하곤 해요. 늦엇지만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에 게재됐습니다.


태그:#당진, #글, #공부, #만학,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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