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백범 김구 선생
 백범 김구 선생
ⓒ 백범기념관

관련사진보기

  
<백범일지>

나는 요즘 어린이용 '백범 김구의 생애'를 쓰고자 <백범일지>를 정독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 인생역정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오늘 아침 <백범일지> 222쪽 세 번째 투옥과 고문 편을 읽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백범이 황해도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1911년 정초(양력 2월 3일) 신민회사건으로 일본 헌병에게 연행됐다.
 
… 나의 혀끝에 사람의 생사가 달렸다는 것을 각오하였다. 어느 날 또 끌려 신문실에 갔다. 왜경(일본 경찰관)이 물었다.

"네 평생 친구가 누구냐?"
"평생 친구는 오인형이오."


왜놈이 반가운 낯으로 물었다.

"그 사람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오인형은 장련에서 살았으나 연전에 사망하였소." 하니 그놈들이 또한 정신을 잃도록 가혹하게 고문하였다.
"학생 중에 누가 너를 가장 사랑하더냐?" 하는 말에, 졸지간에 내 집에 와서 공부를 하던 최중호(崔重鎬)를 말하고선 혀를 끊고 싶었다.

'젊은 것이 또 잡혀오겠다'고 생각하였으나,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벌써 언제 잡혀왔는지 반이나 죽은 것을 끌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도진순 주해 돌베개 출판사 <백범일지> 222쪽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박도

관련사진보기

  
뜻밖에 미국에 가다
 

나는 그동안 40여 권에 이르는 책을 펴냈는데 그중 한국전쟁 관련 사진집만 다섯 권이다. 이 사진 자료들은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버지니아 주 남쪽 항구 도시 노퍽에 있는 맥아더기념관에서 그동안 네 차례 약 70여 일 드나들면서 수집해 온 것들이다.

사실 나는 학교 다닐 때 영어성적이 가장 뒤떨어졌다. 그래서 고교입시에서도, 대학입시에서도, 영어시험 성적이 밑바닥이라 후기 고교와 대학을 다녔다. 대학원 시험에서도 영어를 잡쳐 진학을 못한, 영어는 먹통이다. 그래서 지금도 "화장실이 어디입니까?"라는 말도 영어로 할 줄 모른다.

이런 내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맥아더기념관을 드나들면서 2000여 점의 한국 근현대사 관련 사진을 입수해 온 것은 나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도 운전 면허증이 없는 대중교통 마니아로 자동차가 신발인 미국의 동부지방을 헤집고 다닌 것도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내 지난 이력을 잘 모르는 사람은 영문과 출신이거나 미국에 가족이 있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국문과 출신이요, 미국에는 혈육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자료들을 수집해 왔으며, 미국에서는 어떻게 NARA에 출퇴근할 수 있었을까?

그 정답은 2004년 백범 김구 암살 배후의 자료를 찾고자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성원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재미동포 박유종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분은 정말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줬다. 그때 당신은 생손앓이를 하면서도 단 하루도 약속을 저버린 일이 없이 내 곁에서 손과 발이 돼 도와주셨다. 
   
백범 암살 배후 진상규명 자원봉사 재미동포들(왼쪽부터 정희수, 권헌열, 주태상, 권중희, 이선옥, 박유종, 이재수 선생)
 백범 암살 배후 진상규명 자원봉사 재미동포들(왼쪽부터 정희수, 권헌열, 주태상, 권중희, 이선옥, 박유종, 이재수 선생)
ⓒ 박도

관련사진보기

   
그물코처럼 맺어진 인과관계
 

어느 하루, 나는 그 점이 궁금해 물었다. 그 답은 당신 외할아버지와 백범 선생 때문이었다. 당신 외할아버지는 최중호(崔重鎬)로 김구의 애제자였다. 김구 선생 때문에 경찰서에 불려가 모진 고문을 받아도 끝까지 스승을 고자질하지 않아 평생 돈독한 사지지간으로 독립운동을 하게 되고, 외가는 상하이임시정부까지 가서 김구 선생 밑에서 일했다.
백암 박은식 선생
 백암 박은식 선생
ⓒ 박유종

관련사진보기


그런 연유로 같은 독립운동가인 백암 박은식 선생과 최중호 선생은 사돈이 된 바, 박은식 선생 아들과 최중호 선생 딸이 혼인하여 당신(박유종)이 태어난 것이다. 박유종의 형은 박유철로 현 광복회장이다.

그때 당신 어머니가 어린 시절 상하이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학예회 전날 행사 때 입을 옷을 마련치 못해 울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백범 선생이 넌지시 옷감을 끊어 보내 새 옷을 해서 입고 학예회에 갔다는 얘기를 박유종은 귀에 익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백범 선생을 돕는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신발 벗고 나선다는 점과 당신 할아버지 백암 박은식 선생은 역사학자로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했는데, 국어와 국사, 곧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분이라고 했다.

백암 선생은 어떤 나라가 망해도 그 나라 백성들이 말과 역사만 보존하면 언제든지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역설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박유종 선생은 국어 교사를 하고 우리 역사를 공부하는 나를 도와준다는 말씀을 했다. 지난 해 10월 이맘 때 제4차 미국 NARA를 찾아갔을 때도 고령임에도 발 벗고 도와주셨다.

그때 헤어질 때 다음 미국 방문은 일없이 와서 당신과 함께 캐나다 국경 나야가라 폭포에서부터 미국 남부 플로리다 마이애비까지 동부 관통여행을 하자고 약속했건만 아무래도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박유종(왼쪽 NARA 앞에서 2017. 10.)
 박유종(왼쪽 NARA 앞에서 2017. 10.)
ⓒ 박도

관련사진보기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도 운명도 달라지는 걸 체험했다. 김구 - 최중호 - 박은식 - 권중희 - 박유종 - 박도 이렇게 인과관계가 이어질 줄이야...

태그:#백범일지, #김구, #박은식, #최중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