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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고민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둘째 산들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녀석이 기가 막힌 질문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역시나 녀석의 남다른 감수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엄마, 엄마는 시간이 빠른 거 같아? 어떤 거 같아?"
"빠른 거 같네. 벌써 10월이라니."
"그치? 나도 시간이 참 빠른 거 같아."


여기까지는 무난한 대화였다. 나 같았으면 10대에는 10km/h로, 20대에는 20km/h로, 40대에는 40km/h로 가는 게 바로 세월이라며 사족을 달았을 테지. 그러나 녀석의 진짜 질문은 그 뒤에 이어졌다.

"시간은 빠른 거 같은데, 어른이 되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걱정이 돼. 내가 잘 커서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엄마, 내가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걱정어린 질문이 많은 편인 산들이
 걱정어린 질문이 많은 편인 산들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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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둘째는 질문이 많은 편이다. 뉴스를 보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이 이해할 때까지 집요하게 묻곤 한다. 다른 어른들 같았으면 이제 그만하라고 핀잔 줄만도 하지만 나는 가능한 만큼 질문에 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어렸을 때 둘째만큼 질문을 많이 했던 아이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학교 선생님이 어머니와 상담 시간에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해서 힘들다고 이야기했을까.

그러나 문제는 질문의 성격이다. 어렸을 때 마냥 호기심이 많았던 나와 달리 둘째의 질문은 걱정 어린 것들이 많다. 앞서 적은 것과 같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이 부족해서 던지는 질문들이다.

남들은 둘째가 다 그렇다고 넘겨짚지만, 부모로서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둘째가 가지는 서러움을 알기에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더 표현하고 마음을 쓰려고 애썼지만, 그것 역시 부족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아이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아이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해야 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자주 보는 유튜브도 같이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왜 이것을 보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때가 태반이니 원.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제목인즉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이었는데, 영화를 통해 질문을 함으로써 성장기의 아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시해 놓은 책이었다. 영화를 통한 세대 공감. 과연 영화를 통해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화로 인문학을 하라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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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영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저자는 영화가 인문학과 맞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영화 장면을 통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화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인간 중에서도 '나'에 주목한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항상 붙어 있으며, 가장 들여다보기 쉬운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핵심은 나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각도를 달리하여 내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따라서 영화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영화를 나누는 행위이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어떤 장면에 감동하는지, 영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등을 살펴보면 내가 누구인지 한층 더 알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위인전을 읽으면서 꿈과 희망을 품었지만, 이제는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특별하다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훌륭한 사람을 본받기보다 내 안의 잠재력을 발견하고자 한다. 부모들이 위인전이 아니라 영화를 보며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이다.

자, 그럼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나

저자는 <쿵푸팬더>에서부터 <스파이더맨>, <인생은 아름다워>, <마션> 등 16편의 영화를 제시하며 그 속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인식시키는 방법이다.

그 중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 인문학은 바로 <스파이더맨>이었다. 저자는 영화 <스파이더맨>을 이야기하며 이 시대의 게으름에 대해 일갈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세대가 자녀들을 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기성세대가 정답인양 하기 때문이다.
 
슈퍼거미에 물린 다음날 주인공이 겪는 변화는 마치 청소년기 아이들이 겪는 변화와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몸에 관심이 많아지고 예민해지고 주변의 평가에 신경을 쓰며 무모한 시도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실제보다 자신의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보다 자신의 힘을 더 부풀려 생각하기도 한다. - 46p(스파이더맨)

중2병은 어느새 사회적 용어가 되어 중2라고 하면 으레 따라붙는 말이 되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서 초4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한 어른으로서 무척이나 죄책감을 느꼈다. 성장하는, 그리고 찾아가는 그 과정을 '병'으로 지칭하는 이 사회의 '게으름'에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래가 불안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병'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게으르다는 증거다. – 49p(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중2병은 없다
 스파이더맨, 중2병은 없다
ⓒ 월트디즈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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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끔했다.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중2병을 언급해오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건데 중2때 나 역시 매우 심각했다. 격월로 유서를 썼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했으며,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해 끝도 없이 고민했다. 가끔 그 시기의 일기장을 들쳐보면 손가락이 오그라들곤 한다. 그랬던 내가 아주 간편하게 중2병을 거론한다면 그것은 꼰대가 다른 세대와 소통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밖에.

저자는 또한 <쿵푸팬더>를 보고서는 팬더를 용의 전사로 만든 것이 무엇이었을까 질문한다. 그것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나'의 의미를 찾는 아이들에게 어른인 내가 건넬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용의 전사는 우연이나 행운,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믿는 힘을 깨달을 때 탄생되는 것이다. 이것이 용의 전사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특별하다'는 '다른 사람보다 더'의 의미이거나 '특별하지 않은'의 반대말이 아니라 자신 안에 담겨 있는 잠재력과 존재가치의 힘을 믿는 것을 말한다. – 39p(쿵푸팬더)
 
영화에서 팬더의 오리 아빠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없는 것이 곧 비법이요, 없어서 내가 나를 믿는 것이 비법이다. 팬더는 어처구니없어 하지만 이내 깨닫고 만다. 내 자신이 곧 해답이라는 것을.

이는 아직 자기 확신이 부족한 아이에게 부모인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너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그러기에 아름답다는. 그것은 저자가 <몬스터 대학교>에서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무엇이 되는가와 상관없는 우리 모두의 존재가치이며, <마션>에서 언급한 우리가 끊임없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긍정이 곧 행동이라면 그것은 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이제는 우리가 꿈과 진로에 대해서 마주해야 할 철학이 있다. 바로 '무엇이 될까?'에서 '무엇이 되든 상관없이'로 옮겨가는 것이다. 무엇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이 되든 상관없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사회가, 어른들이 들려주고 물려줘야 할 때다. – 104p(몬스터 대학교)

진짜 긍정이란 긍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인 '마음'도 아닌 그냥 행동이다. 움직이고 실행하지 않으면 긍정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분명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해도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그 마음이 어떠하냐보다 더 중요한 긍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81p(마션)
 
이 밖에도 저자는 다양한 영화를 통해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해 놓고 있다. 인사만 하고 방문을 콕 닫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 영화가 묻고 내가 답하는 영화 인문학 질문법

원은정 지음, 착한책가게(2017)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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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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