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궐> 포스터

영화 <창궐> 포스터 ⓒ (주)NEW


과거 조지 로메로 감독은 '좀비'라는 괴물과 그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회 속 부조리를 전달했다. 감독은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었던 공포 영화의 틀을 빌려 소비만을 쫓는 우매한 대중의 행태와 고위 관직자의 독선을 고발했다.

그렇게 처음 창조된 좀비라는 괴물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B급 공포영화의 범주에 속했다. 공포 장르의 특성상 사람을 뜯어먹는다는 설정이 잔인할 수밖에 없었고,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좀비라는 존재가 초기에는 공포감을 줬지만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영화적으로는 박진감이 많이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좀비'들이 2000년대 들어 달라졌다. 좀비들은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2002),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2004)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박진감과 속도감은 좀비들이 대중적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무엇보다 2013년 마크 포스터 감독의 영화 <월드워 Z>는 잔인한 화면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규모를 키우면서 좀비 영화를 블록버스터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한국 공포 영화는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TV에서 비롯된 <전설의 고향>(2007), <곤지암>(2017), <링>(1999) 같은 영화들은 모두 초자연적인 귀신을 영화적으로 표현했다.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데뷔작인 <부산행>(2016)은 좀비 영화 불모지인 한국에서 좀비 영화 장르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부산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빠른 속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행태를 선과 악으로 비교적 선명하게 구분하여 관객들이 쉽게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데에 있다. 연상호 감독은 사회고발적 요소를 최대한 낮추면서 영화의 박진감을 높이는 데 공을 들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좀비 영화 <창궐>
 
 영화 <창궐> 장면

영화 <창궐> 장면 ⓒ (주)NEW


최근 개봉한 영화 <창궐>은 '좀비'라는 설정을 조선시대로 가지고 갔다. 사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영화에는 속도감을 내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부산행>은 대부분의 장면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데, 중간에 내릴 수 없는 기차라는 공간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폐쇄적인 긴장감을 유발한다.

대다수 좀비 영화는 현대의 도심이 배경이기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거나, 건물의 다양한 구조물을 이용하여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배경이 과거 중세시대나 조선시대라면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을 활용하기 쉽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2017)는 서양 중세시대로 좀비라는 설정을 가져갔지만, 영화 전개가 과거의 상황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김성훈 감독은 <창궐>에서 기존 좀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특성들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일단 사회고발적 요소를 영화의 뼈대로 설정했다. 과거 조선시대의 왕이었던 이조(김의성)의 폭정을 고발하면서 왕권을 다시 올바르게 세우려는 세자(김태우), 이청(현빈)을 통해 백성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리고 왕권을 탈취하려고 하는 김자준(장동건)을 등장시켜 영화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영화는 이조나 김자준이 나라를 통치하는 방식과 세자나 이청이 나라를 통치하는 방식을 대조시키는데, 후자는 백성의 목소리를 좀 더 듣고 그들을 위하려고 하는 반면, 전자는 권력부 주변에만 시선을 둬 많은 백성들의 희생을 양산한다.

충돌하는 직렬과 병렬의 캐릭터 

영화에서 주로 대립각을 세우고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이청과 김자준이다. 영화는 이청을 통해 백성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현빈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초반에 다소 껄렁한 모습을 보이고 이기적인 캐릭터인 듯 묘사되지만 종국에는 백성의 목소리를 광장, 즉 궁궐의 큰 안마당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역할을 한다.

왕위 찬탈을 노리는 김자준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누구라도 죽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인데,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시 말해서, 이청은 많은 백성과 함께 넓은 광장에 펼쳐져 있는 병렬적인 힘을 보여준다면, 김자준은 그 상황을 직선적으로 돌파하는 직렬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후반부에 직렬과 병렬의 힘이 완전히 맞부딪힐 때 관객들은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김자준이 권력 찬탈을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면서 이용하는 것이 야귀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좀비다. 김자준의 책략에 활용되어 창궐하게 된 이 좀비는 제물포 주변 백성들에게 퍼지게 된다. 그런데 이 야귀는 기존 좀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좀비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감염되면 몇 시간, 또는 하루 이내에 좀비로 변하고, 물려서 전염된다는 설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여기에 태양이 나오면 활동하지 못하고 음지에 숨어어야 한다는 특성을 추가했다. 그리고 이들을 죽이려면 반드시 머리를 자르거나 심장을 찔러 죽여야 한다.

이런 설정은 기존 좀비의 속성에 흡혈귀의 속성을 합친 것이다. 조선시대라는 배경의 특성상 힘이 세고 평지에서 빨리 달리는 좀비는 평면적인 구조물만 존재하는 넓은 공간에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영화 <창궐>은 야귀들에게 이러한 몇 가지 약점을 더 부가시켜 영화 전반에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영화적 배경을 제물포와 궁궐 내로 한정시켜 그 안에서 다양한 액션 시퀀스를 구성하였다. 

멋진 아이디어로 재탄생한 좀비와 액션 시퀀스 
 
 영화 <창궐> 장면

영화 <창궐> 장면 ⓒ (주)NEW


특히 궁궐에서 벌어지는 야귀와의 액션 시퀀스는 꽤나 멋지게 연출되었다. 감옥, 지하 시설 등을 활용해 긴장감을 높이고, 여러 가지 문을 활용하여 야귀를 막고 무찌르는 모습을 통해 속도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청이 주로 보여주는 검을 이용한 액션이 돋보이며, 덕희(이선빈)가 보여주는 활 액션도 중간중간 적절히 활용되었다. 야귀들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부산행>에서 우리가 봤던 그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수많은 야귀가 한꺼번에 덤벼들 때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영화에선 다양한 연기파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김자준 역할을 맡은 장동건이다. 그가 보여주는 강렬한 직렬의 캐릭터는 영화의 균형을 맞추고 끝까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조우진, 김의성, 현빈, 정만식 등의 주조연 배우들도 영화에 잘 녹아들어 현실감을 키운다. 

영화 <창궐>은 '뛰어난 좀비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부산행>과 같이 속도감에 집중하여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을 끌고 가는 영화는 아니다. 물론 중반부 이후 영화의 속도가 더해지면서 전속력으로 달려가게 되지만, 121분의 러닝타임 동안 다소 느슨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창궐>은 좀비 영화 장르 본연의 특성에 좀 더 충실했다. 결국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회 비판적인 시선에 집중하고 야귀와 벌이는 다양한 액션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좀비 영화 특유의 거친 액션도 두루 선보인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영화 속 캐릭터의 특성을 명확하게 직렬과 병렬의 대립 형태로 구성해 균형추를 잘 맞춘 부분이다. 지난 추석 때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크리처 무비 <물괴>(2018)와 비교했을 때, 장르의 전통적 요소를 유지하면서 영화적 긴장을 끝까지 가져간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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