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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도심 한 가운데서 시인을 만나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 김용택 시인과 함께하는 빅 북 토크콘서트 깊어가는 가을, 도심 한 가운데서 시인을 만나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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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가을이면 으레 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2018수주문학제>가 열리는 경기도 부천 시청 잔디광장으로 향했다. 산에서 보는 단풍도 좋지만 다양한 콘서트와 이벤트, 그리고 특히 문학상 시상식이 거행된다는 소식에 도심 한복판에서 시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7∼1961)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맹현(孟峴, 정독도서관 근처)에서 태어났다. 태생은 서울이지만 그의 집안은 대대로 부천 고강동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의 호 수주(樹州)는 오늘날의 부천 지역을 아우르는 고려 때의 지명이다.

지금 나이 사오십 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라면 대개 학창시절 그의 시 「논개」를 배웠을 것이기에 지금도 변영로 하면 가장 먼저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로 시작되는 시 「논개」가 떠오를 것이다.

변영로는 시뿐만 아니라 수필가, 번역가, 언론인, 대학교수 등으로도 걸출한 업적을 남겼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가 107일 동안이나 옥고를 치른 일이며, 1924년 시집 『조선의 마음』을 출간했다가 곧바로 판매금지 및 압수조치가 취해졌던 일, 또 1936년 잡지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동아일보를 떠나게 된 사건 등등은 엄혹한 일제치하에서 끝까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몇 안 되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지사적 면모를 엿보게 한다.

친일문학 연구가인 임종국 선생은 그를 "일제강점기 지식인 중 지조를 지킨 몇 안 되는 문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작가" 15인의 명단에 포함시켰다. 수주가 남긴 작품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가 왜 부천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 되었는지, 또, 부천의 작가들이 지향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행사장 한쪽에 문학창의도시 부천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부천지역 작가들의 저서 행사장 한쪽에 문학창의도시 부천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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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에서 내려 부천시청 잔디광장에 들어서니 마침 <시인과 함께하는 빅 북 토크콘서트>가 한창이다. 출연자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술을 안 해서인지(본인 말씀) 젊은이 못지않게 피부가 팽팽하다.

시인들과의 만남에서 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은 '시란 무엇인가?'하는 다소 상투적인, 그렇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해답을 갈구하는 물음이다. 뭔가 속 시원한 해답을 구해보는데 시인들의 대답은 늘 못 미친다. 어떤 이는 인생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철학이며 종교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늘이고 바람이고 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슴 한 쪽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는다.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흡사 "도(道)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같다. "도(道)를 도(道)라고 하면 이미 도(道)가 아닌 것인 것처럼, 모든 시인들이며 비평가들이 말하는 시는 아직 내가 구하는 답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시는 나에게 있어 너무 어려운 것이 돼버렸다. 평론가들의 도움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너무도 많고, 심지어 어떤 것은 평론가의 해석마저도 너무 자의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건 순전히 나의 무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변영로의 <논개>에 비추어 볼 때 현대의 시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운 장르가 되었는지, 혹 이런 요인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시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김용택 시인의 대답은 간명하다. 시란 심심함을 즐길 때 나오는 것이고 쓰다 보면 무슨 수가 생긴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콘서트가 끝나거든 행사장 뒤쪽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가서 저녁 햇볕에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잎처럼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들여보라고 권한다. 나는 시인의 말대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가서 한동안 햇볕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살짝 추웠다.

이윽고 열린 <제20회 수주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장정욱 시인이 「빨랫줄 저편」이라는 작품으로 영예의 시상대에 올랐다. 수주문학상을 노크한지 십여 년 만에 거둔 결실이라 하니 그 근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상금은 1천만 원, 여기저기서 "앗, 저 돈 내 돈인데..."하는 탄성이 웃음소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올해로 15회를 맞는 부천신인문학상은 유네스코창의문학도시 부천의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됐다.
▲ 제15회 부천신인문학상 수상자 올해로 15회를 맞는 부천신인문학상은 유네스코창의문학도시 부천의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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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15회 부천신인문학상>에는 소설 부문 최아영(「서울 사람 김쌍자」), 시 부문 박조은(「B존재의 감정」), 동시 부문 최운선(「참 그렇다」), 동화 부문 윤선영(「금빛 해바라기 씨앗」), 시나리오 부문 이희수(「구름 공포 클리닉」) 등이 수상자로 선정되어 소설 부문 2백만 원과 기타 분야 각각 1백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지금껏 부천지역 문인단체 주도로 이루어지던 「수주문학상」 제도를 올해부터 부천문화재단 주관 <수주문학제>로 격상하여 규모를 확대한 것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의 위상에 걸맞는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다만 다양한 각종 이벤트에 비해 시민들의 참여가 지나치게 적었다는 것은 다시 내년 대회를 준비하기에 앞서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해야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그나마 시상식 뒤풀이 행사에서 소리꾼 김민영이 창으로 들려준 조지훈 시인의 시 「사모」와 변영로 시인의 시 「논개」는 <2018수주문학제> 중에서도 가장 <수주문학제> 다운 기획으로 많은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시는 역시 노래 가락에 얹어 불러야 제 맛이 나는가 보다. 거기에 변영로 시인이 평소 즐겨했다는 막걸리도 한 잔 있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내년을 기대해 본다.

 
전주에서 올라온 소리꾼 김민영이 조지훈의 시 <사모>와 변영로의 시 <논개>를 창으로 들려주었다.
▲ 소리꾼 김민영의 열정적 무대 전주에서 올라온 소리꾼 김민영이 조지훈의 시 <사모>와 변영로의 시 <논개>를 창으로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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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주문학제, #현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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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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