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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두정동 공간사이에서 진행된 <충남 여성 라이브> 북 콘서트 현장.
 천안시 두정동 공간사이에서 진행된 <충남 여성 라이브> 북 콘서트 현장.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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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은 감정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불편해도 고객을 위해 참아야 한다. 밥줄이 끊길까봐 부당한 갑질을 견뎌야 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을'의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되곤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서 감정 노동자로 일하는 여성들은 '을 중의을'이다. 직장 상사로부터 수시로 성희롱을 당하거나 여성 비하 발언을 듣기도 한다. 유니폼 치마를 입고 일하는 그들은 웃음마저 강요당한다. 종종 남성 고객으로부터 '시선 강간'(마치 강간하듯 상대를 음란하게 보는 행동)을 당하고 불쾌감을 느끼지만 항변할 수도 없다. 회사는 언제나 "참고 인내하라"며 직원이 아닌 고객 편에 서기 때문이다.

"감정 소진된 감정노동자들... 동료들끼리 북돋아 주지도 못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고 있는 라온주(가명)씨는 책 <충남 여성 라이브>를 통해 감정 노동자로 살면서 고립감과 외로움 심지어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감정 노동으로 받은 스트레스와 상처는 결국 인간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제가 왜 성당에 다니려고 했나면요, 사람들을 그만 미워하고 싶었어요. 처음 보는 손님들, 같이 일하는 동료들, 관리자들, 그 모든 사람들을 그만 미워하고 싶었어요. 감정이 이랬다가는 내가 또라이가 될 것 같은 거예요."(라온주)
 

책 <충남 여성 라이브>의 한 구절이다. 책의 부제는 충남 여성들의 삶에 대한 구술 기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제목이 충남으로 한정 되어 있을 뿐 책의 내용은 우리 사회 여성들이 흔하게 겪고 있는 이야기이다. 책에는 여성장애인, 성소수자, 감정 노동자, 일반 직장 여성들의 삶의 한 조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술 기록이다 보니 책에 담긴 문장은 다소 울퉁불퉁 투박하게 느껴진다. 인터뷰를 통해 십대부터 오십대 사이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옮겼다. 물론 장점도 있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책의 내용이 선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책은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인권교육활동가 모임 부뜰에서 펴냈다. 부뜰 회원인 정인식, 바람(이진숙 부뜰 대표), 시연(필명), 정연희 씨가 구술 기록을 맡아 엮은 것이다.

지난 26일 충남 천안시 두정동 공간사이에서는 <충남 여성 라이브> 북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콘서트에는 책을 엮은 부뜰 회원들과 구술에 응했던 인터뷰 당사자들 등 10여 명이 참여했다.

사실 세상은 쉼 없이 불편을 호소하는 투덜이들이 바꾼다. 요새 말로는 '프로 불편러'들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갑질은 불편함조차 제대로 토로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온다. 고객이니까, 상사니까, 어떻게든 관계 유지를 해야 하니까 참아야 하는 갑질도 꽤 된다.

감정 노동자 라온주씨를 인터뷰했던 시연 활동가는 "책에 다 담지 못하고 삭제된 부분도 많다"면서 "감정을 문자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감정 노동자들은 이미 감정적으로도 많이 소진된 상태"라며 "동료들끼리도 서로 북돋아 줄 에너지조차 없다"고 말했다.

을과 을이 서로 아옹다옹 하는 사이 감정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연 활동가는 "노동자들끼리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현실이 눈물겹다"며 "사회구조의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자신을 탓하거나 동료의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이 반복 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시군도 못 넘는 장애인콜택시, 장애인은 가까운 곳만 가라는 건가
 

장애인들의 불편한 삶도 재조명됐다. 오십대 장애인 여성을 구술한 정연희 활동가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고 들는 것이 너무 좋았다"며 "장애인들은 우리의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들의 속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 콜택시가 지역에서만 운행되는 것은 문제로 보인다"면서 "장애인 콜텍시의 경우 같은 충남임에도 시군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 장애들은 여행을 가도 근거리로만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충남 여성 라이브> 북콘서트 현장.
 <충남 여성 라이브> 북콘서트 현장.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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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들의 소감도 이어졌다. 정인식 활동가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구술자들은 직업과 나이, 처지가 모두 다르다"면서 "하지만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차별 받고 있는 상황도 모두 같았다. 정체성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구술자와 기록자들은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되면서 입장차도 많이 좁혀졌다"면서 "서로 깊이 연결이 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진숙 부뜰 대표는 "책을 기획할 당시 만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에 있는 이야기는 어느 하나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단순히 책으로 발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담긴 내용이 회자되고 토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충남 여성 라이브 , #북콘서트 , #인권활동가 부뜰 , #부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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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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