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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 옆에 위피한 성북동의 달동네 북정마을 전경이다.
▲ 성곽옆 북정마을 서울성곽 옆에 위피한 성북동의 달동네 북정마을 전경이다.
ⓒ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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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의 날씨는 말 그대로 타들어갈 기세가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날씨에 에어컨 바람을 뒤로 한 채 예매한 영화를 보러가는 것엔 적잖이 용기가 필요했다. 왜 하필 가장 더운 오후1시 반에 예매를 했을까? 스스로에게 멍청이라고 바보라고 툴툴대 봤지만 더운 열기는 뒷목을 더욱 사정없이 지져댈 뿐이었다. 하필이면 또 예술독립영화였다. 바쁜 시간을 쪼개 어렵게 짬을 냈는데 재미없어 뵈는 독립영화를 왜 예매했을까? 매력적인 포스터의 마법에 걸렸던 걸까? 극장으로 가는 내내 까맣게 달궈진 아스팔트로부터 올라오는 복사열은 짜증스런 마음의 게이지를 수직상승 시켰다.
  
영화관에 도착하니 바깥과 달리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이마를 '후후' 불며 마음의 화를 식혀준다. 영화에 대한 반감도 함께 날아가는 것 같고 느낌이 괜스레 좋아진다. 그제야 영화에 관심이 가고 궁금해졌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내가 봐야할 영화의 제목이다. 얼굴도 아니고 얼굴들이라니. 주인공도 남녀 젊은 주인공이 아닌 젊은 남자와 지긋한 나이의 노파가 주인공이다. 이번 기회로 생애 첫 독립영화 관람이라는 딱지를 떼는 느낌은 어떨지 기대감인지 뭔지 마음이 복잡했다.

상영하는 내내 영화는 따듯하며 담담하게 다가왔다. 젊고 늙은 두 명의 사진가들이 외딴 지방을 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드리워진 삶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굉장히 크게 인쇄해 피사체가 된 이들의 동선 어딘가에 그 굉장한 크기의 사진을 붙여놓는다. 마치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계속해 응원하겠다는 선물인 것 같다. 두 작가는 계속해 외딴마을을 돌아다니며 이러한 포퍼먼스를 이어간다. 그런데 그들이 여행하던 외딴마을을 보니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성곽 옆 북정마을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방배동 2층집 단독주택에서 북정마을이라는 듣도 보지 못했던 동네의 단칸방 판잣집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왔을 때, 내 앞에 열린 추락이라는 문 앞에서 온전히 생으로 받아 내야 할 가난이라는 현실에 벌써부터 어깨가 시큰거릴 만큼 무겁게 얹혔다.

다음날부터 일상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매일 마주쳐야하는 동네 거친 또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온갖 눈치를 보며 도망 다녀야 했고 걸레가 돌덩이처럼 얼어버리는 단칸방 안에서 아랫목을 차지하기 위해 동생과 싸워야 했으며 부엌에 있는 음식을 도둑고양이로부터 매일 지켜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영화를 감상하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옆에서 하늘과 맞닿을 만큼 높고 외딴 북정마을로 영문도 모른 채 용달트럭에 실려 가던 어린 나와 만났다. 나는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어린 나의 눈을 지그시 맞춰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곤 영화 속 주인공들과 여행을 함께 하며 떠나기 시작했다. 여정 중 눈이 마주치면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어디든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 어떠한 상황이든 희망은 네가 보려는 곳 어디든 손닿을 곳에 쉽게 숨겨져 자라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절대 겁내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전했다. 한 시간 반의 여행이 끝나고 앤딩크레딧을 보며 다시 한 번 내 손을 가볍게 꼬옥 감싸 쥔다. 에어컨 바람이 춥지는 않았지만 잡은 두 손의 온기가 고스란히 온몸을 타고 돌았다. 내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영화관에 불이 켜진 후 화장실로가 안경을 벗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본다. 40대 초반 남자의 얼굴. 나는 마음속 사진기로 내 전신을 찍은 후 거울 속 벽면이 가득 찰 만한 크기로 뽑아 붙였다.

"고맙다. 여기까지 잘 버텨줘서. 계속해서 부탁할께."

내려놓았던 안경을 집어쓴다. 영화관 밖으로 나서자 햇살이 눈부시다. 영화는 괜찮았냐고 묻는 것 같다. 집으로 가기위해 지하철로 가는 내내 영화의 여운에 더위가 거슬리지 않았다. 환한 햇살과 맞닿을 만큼 높은 곳에 외딴 섬 마냥 놓여있던 북정마을이 궁금했다. 지하철이 승강장에 도착하고, 내 마음과 마을을 길게 둘러싸 포근히 안아주던 성곽의 그리움을 함께 담아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만의 여정을 부추긴다.

태그:#북정마을, #어린자아, #달동네,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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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소소함을 수집하여 이야기로 나누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수입니다. 쓰고 그린책으로 ‘굿바이, 플라스틱 바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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