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시선

다큐 시선 ⓒ ebs



남북 정상은 9월 평양 공동 선언을 통해 빠른 시일 안에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개소하기 위해 면회소 시설을 조속히 복구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이산 가족 상봉의 정례화, 그 물꼬를 텄다. 그에 앞서 8월 20일에서 26일에는 2015년 10월로 부터 무려 2년 10개월 만에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상시적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한 양국 정상의 '선언', 그에 앞서 모처럼의 이산 가족 상봉 행사까지. 이렇게 남북 이산 가족의 오랜 해원이 정치적 해빙과 발 맞추어 풀려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즈음에 지난 25일 EBS <다큐 시선>은 '70년의 기다림'을 통해 왜 우리가 이산 가족 상봉을 서둘러야 하는가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들어갔다. 바로 '2%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상봉 가족들의 또 다른 아픔을 통해서다. 

조속한 이산 가족 상봉이 필요한 이유는?
 
 이산가족 사망자 통계

이산가족 사망자 통계 ⓒ 이산가족 정보 종합 센터

 
 이산 가족

이산 가족 ⓒ 이산 가족 종합 정보 센터

 
교동도. 강화도 북서부에 있는 섬인 이곳은 북으로부터 불과 2~3km 떨어져 있다. 갓난아기의 엄마는 시체들이 즐비한 북에서 도망쳐 수심이 낮은 때에 배도 없이 이 섬 저 섬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배를 타면 금세 북에 닿는 곳이다. 지척에 있는 이곳으로 '잠깐' 피신한 것인데, 어느새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족과 함께 피란 온 소년은 '고향집에 숨겨둔 놋그릇을 가져오겠다'며 돌아간 어머니와 누님을 그때 이후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들과 헤어진,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동도에 남겨져 있다.

고향이 그리워 '북'쪽으로 창을 내고 그곳으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어도 영 꿈에서 조차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 다 큰 아들은 그 어머니가 그리워 여전히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부르며 70년 전 일곱 살 아이처럼 뒹군다. 하지만 이제 낼 모레 팔십을 바라보는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향이 바라보이는 망향대에 올라서는 일 뿐이다.

그렇게 잠깐일 줄 알았던 세월이었건만... 이산가족 1세대 중 많은 이들이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최근 이산가족 상봉자로 정해졌던 사람들은 93명이었지만, 그중 4명이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북쪽 가족들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7월말 기준 생존해 있는 이산 가족들은 5만 6000여 명이다. 하지만 생존해 있는 이산 가족들 중 85% 이상이 70대가 넘는 고령이다. 지금처럼 한 번에 90~100명씩 상봉을 한다면, 600회 가까이 진행되어야 남은 생존자 모두가 한 번씩이나마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고령의 생존자들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2%의 기적, 그 휴유증

보통 이산 가족 상봉을 '2%의 기적'이라 한다. 신청한 사람들 중 2%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상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을 이룬 사람들은 여한이 없을까? 하지만 상봉 가족들에게 찾아온 뜻밖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예순아홉 살인 황보우영씨, 그가 갓난아기였을 때 그의 누나는 돈을 벌기 위해 원산 방직 공장으로 향했고, 그러는 사이 38선이 막히고 말았다. 황보씨 기억엔 정한수를 떠놓고 누나가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비는 어머니의 모습이 또렷이 남아 있다.

그런 누나를 황보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만났다. 자신의 기억에는 없던 누나였지만, 만나고 돌아온 뒤 황보씨는 몸무게는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건강이 나빠졌다. 찰나와 같은 만남의 아쉬움이, 다시 볼 수 없다는 그리움이, 누님에 대한 걱정과 함께 황보우영씨를 우울증에 빠져들게 했다.

스무 살 새신부였던 이순규(87) 할머니는 겨우 7개월 남짓의 결혼 생활을 한 남편과 헤어져야 했다. 남편은 "몇 달간만"이라던 말이 무색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순규 할머니의 뱃속엔 당시 3개월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아이는 기특하게도 7살 무렵 "왜 아버지는 오시지 않냐"는 질문 한 번을 끝으로 아버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아들이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모자는 남편, 그리고 아버지 제사도 지냈다. 한 켤레의 구두로만 남은 남편과 아버지의 추억... 그런데 기적처럼 북쪽의 아버지 오인세씨의 생존이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 간의 만남 후 돌아온 아들은 헤어나올 길 없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한번도 못 봤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자신만의 생각으로 그렸던 아들은 막상 눈 앞에서 만난 쪼그라든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40년간 그리워했던 마음은 '화병'처럼 돌아왔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기적의 시간을 가진 이산 가족 상봉자들, 하지만 그 결과는 '기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안부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는 '행사'의 시간들... 그 시간을 꿈처럼 겪어낸 가족들은 대비하지 못한 만남의 휴유증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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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적십자사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봉 후 불면증, 무력감, 건강 악화, 우울증 등 후유증을 앓는 가족들이 24%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봉 후 기쁘지 않다는 답을 한 가족들도 39%에 달했다. 그 이유는 자신은 그래도 남한에서 편하게 사는데 고생하며 사는 것 같은 모습에, 안부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었던 짧은 만남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이별의 아픔이 상봉 가족들을 다시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그저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사전에 상실감 등 휴유증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만으로 다시 생이별의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을까? 결국 답은 하나다. 그동안 '정치적 목적'으로 치러졌던 이산 가족 상봉이 '인도적 차원'의 이산 가족 상봉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 며칠간의 만남이 아니라, 보고싶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상시적인 만남이 시급하다. 그렇기에 이산 가족 상봉 정례화는 더 늦기 전에 구체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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