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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청사 내부 모습.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청사 내부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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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교감에 따라 통합진보당의 재산가처분을 결정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과거 법원 내부에서 판사들이 이미 재판거래 등 관련 문제 제기를 했던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이에 법원행정처가 내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청와대와 교감' 사실을 은폐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6년 12월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 게시판에는 '김영한 비망록'과 관련한 법원행정처의 해명을 반박하는 일선 판사의 글이 올라왔다.

재경법원 A판사는 이 글에서 "각종 의혹에 대한 처장님의 공지말씀을 봤다, 그런데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라며 "법원행정처에서는 일선 판사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것 같다"라고 반박했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고영한 전 대법관이다. 그는 최근 검찰이 제출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사법농단 사건 '공범'으로 적시됐다. 

'재판거래' 의혹, 2016년부터 법원 안팎에 퍼져있었나

'김영한 비망록'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작성한 메모로 사법부와 관련해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론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다 찾아서'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박근혜 정권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을 이용해 사법부를 '길들이기'하려 한 것이라는 의혹이 법원 안팎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청와대 교류는 전혀 없었다"라며 "사법부 독립과 법원 신뢰를 해하는 어떠한 일도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이후 A판사는 코트넷 글에서 "나는 그야말로 재판업무만 할 뿐인 일선 판사이고, 행정처에 직접적으로 아는 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판사도 아래와 같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재판은 물론 통합진보당 재산가처분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했다. 최근 검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재판거래 의혹을 당시에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는 법원 일선에서는 이미 관련한 여러 의혹이 확산돼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A판사는 먼저 "행정처 심의관들이 민감한 사안의 재판이 계류 중인 법원의 법원장에게 전화해 원만히 처리될 수 있도록 부탁했고, 일부 법원장은 재판 담당판사에게 그 말을 전했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이전에 대한민국이 각 지역정당의 재산에 가압류·가처분을 구하는 신청을 했다"라며 "(소송 성립 여부에) 회의적인 담당판사들이 많았는데 이례적으로 행정처 심의관이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냈고, 통일적으로 처리해줄 것을 당부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의혹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분명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주변 판사들은 모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더 이상 부끄러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일어난 재판개입, 사실 은폐에 급급했던 윗선

당시 A판사가 우려했던 여러 의혹은 최근 검찰 수사로 실제 일어났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을 결정한 후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의 재산 처분에 관심을 두자, 법원행정처는 내부 협의로 가처분 신청사건 처리방향을 결정한 뒤 전국 법원 18개 재판부에 이메일과 전화로 이를 지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법에 따라 통진당 재산 국고 환수 조처로 가압류·가처분 신청을 했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영한 당시 민정수석에게 이를 챙겨보라고 지시한 상태였다.

사법농단 수사팀은 김영한 수석의 지시를 받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검토 요청을 했다는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행정처 지시로 억지로 했다"라는 재판부 진술 또한 확인했다고 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심의관들이 판단해 작성한 일이고 난 모르는 일", "난 중간결재만 했을 뿐"이라며 '모르쇠' 전략을 세웠다고 전해졌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고영한 전 대법관은 아직 검찰 수사를 받지 않았지만 그동안 자신이 연루된 사법농단 의혹에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관련 기사 : '사법부 신뢰' 남아있다 생각하는 퇴임 대법관들).

태그:#임종헌, #양승태, #사법농단, #고영한, #재판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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