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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시타마치 이리야의 주택가. 쭉쭉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에 비슷비슷한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도쿄의 시타마치 이리야의 주택가. 쭉쭉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에 비슷비슷한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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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야의 뒷골목. 한낮인데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이리야의 뒷골목. 한낮인데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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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와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처음 만난 사람들이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근데 어디에 사세요?"

"이리야(入谷)에 산다"고 말하면 한 번에 대답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 들어본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우에노에서 히비야선 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돼요"하고 말하면 대부분 이해한다.

그런데 가끔 미묘한 웃음을 띠며 "아, 이리야! 알아요. 시타마치(下町)군요"라며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에(上)마치가 아닌 시타(下)마치라. 시타마치라면 '아랫동네'란 말 아닌가. 살짝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그래서 일부러 인터넷에서 시타마치의 어원을 찾아봤다.

전국시대의 마지막 승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견제를 받아 대대로 영지로 삼고 있던 나고야 인근 미카와 지역을 떠나 지금의 도쿄지방으로 쫓겨왔을 때 이곳은 몇 사람 살지 않는 한적한 어촌이었다.

그때 좀 높은 지대는 에도성과 주택가로 쓰고, 낮은 습지지대는 오랜 전국시대가 끝나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을 동원해 간척사업을 벌여 일반 서민과 상공업자들을 살게 했다. 그 낮은 습지지대가 시타마치인 것이다. 그러니 글자 그대로 잘 사는 사람들이 살던 지역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시타마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못 사는 지역에 사는 열등감보다는 자신들이 수백년간 이어온 도쿄의 옛 모습을 잘 지켜오고 있다는 긍지가 더 크다고 한다. '시타마치 이발소', '시타마치 제과점' 같이 가게 이름에도 많이 쓰고, '시타마치 마츠리'처럼 간혹 열리는 마츠리(지역축제)에도 꼭 '시타마치'를 붙여 강조하는 것을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이쯤 되니 태어나 잘 사는 동네에 살아본 기억이 없는 나는 왠지 동질감마저 느끼려 한다.

도쿄 동부를 가르는 스미다가와강 양 옆에 위치한 시타마치의 범위는 의외로 넓어 지금 니혼바시, 간다, 아사쿠사 등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 상당수가 시타마치다. 필자가 살게 된 이리야는 아사쿠사와 우에노의 중간쯤 되는 곳에 해당한다.

요즘 TBS-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시타마치로케트'가 우주로켓 발사엔진 부품을 만드는 시타마치의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보면, 시타마치에는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알짜 기업들도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네 산책 하려다 3시간 헤맨 이야기
  
 이리야의 한 와인가게 건물. 그냥 봐도 100년은 더 돼보인다.
 이리야의 한 와인가게 건물. 그냥 봐도 100년은 더 돼보인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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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출소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일본 경찰관들.
 파출소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일본 경찰관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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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다음날 구청, 은행 등을 돌며 이런 저런 서류작업을 끝내고 저녁을 간단히 해먹은 뒤 동네 구경을 나섰다. 나름 길치인지라 멀리 가는 게 두려웠지만, 길이 내가 살던 서울 강북의 주택가처럼 구불구불하지 않고 모두 바둑판처럼 쭉쭉 뻗어있어 일직선으로 쭉 걸어갔다가 적당한 곳에서 그대로 돌아오면 되겠지 하고 나갔다가, 역시 큰 어려움 없이 1시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듣던 대로 일본의 거리는 깨끗했다. 그리고 조용했다. 서민 주택가인데도 길가에 어정쩡하게 세워둔 차도, 무심코 내다버린 쓰레기봉투도 안 보인다. 술집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가도 술에 취해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가 낯설지만 신기했다.

그리고 둘째날.

첫날 산책에서 무사히 집을 찾아오는 데 성공(?)한 나머지 자신이 붙어 이날도 저녁을 먹고 전날과 같은 방향으로 가다보니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어제보다 배 이상 더 가버렸다. 옥탑방 옥상에서 건물 사이로 가늘게 보이던 스카이트리(도쿄 스미다구에 있는 세계 최고의 전파탑. 634m)가 바로 눈 앞에 들어왔다. 골목을 하나 지나면 새로운 절이나 신사가 나타났다. 멋도 모르고 들어간 골목길이 신사의 정문인 걸 알고 황급히 돌아나오기도 했다.

예사롭지 않게 크고 화려한 절이 나타났는데 담도 없고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들어가봤더니 관광객들이 엄청 많아 놀라기도 했다. 나중에 이곳이 도쿄에서 가장 큰 절이라는 아사쿠사의 '센소지(淺草寺)'인 걸 알고 또 다시 놀랐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 집에서 거의 일직선 상으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던 길과 전혀 느낌이 달라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마 센소지를 뒷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으로 나오면서 방향을 잃어버린 듯 싶다. 짐작이 되는대로 한참을 걷는다고 걸었는데도 교통표지판에는 '이리야(入谷)'가 나오지 않았다.

교차로에 있는 동네지도를 보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급기야 한번 지났던 절을 다시 만나고, 아깐 분명히 오른쪽에 있었던 스카이트리가 왼쪽에 보이지 않는가. 동네를 뺑뺑 돌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길에서 밤을 새우는 게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스마트폰 구글지도가 생각났지만 와이파이가 안 되는 길거리인데다 아직 전화 개통도 못하고 있으니 데이터가 없어서 길 찾는데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럴 땐 사람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고 교차로에 서있는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앞을 가리키며 아마도 30분은 더 걸어야 할 거라고 한다. 그가 가르쳐준 길로 가다보니 또 이상해서 길모퉁이 파출소에 들어갔다.

이리야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니,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 씩~하고 웃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며 사무실 안쪽에서 지도를 몇 권 가지고 나왔다. 세상에 길을 모르는 경찰이 다 있네.

씩 웃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리버리한 외국인이 또 하나 왔네 하는 제스처일까, 명색이 경찰관인데 길도 못 가르쳐줘서 미안했던 걸까. 그리고 나선 참 열심히도 찾는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 모자도 벗지 않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급기야 안에 있던 다른 경찰관 2명이 합세했고, 다행히 한자가 깨알같이 적힌 지도 속에서 이리야(入谷)를 발견했다. 어벙벙한 표정의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새 지도를 꺼내 빨간 사인펜으로 선을 그어 손에 쥐여줬다.

그렇게 해서 집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동네산책 한번 하려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리야의 거리를 산책하다보면 무심코 골목에 숨어있는 신사의 입구로 들어가곤 한다.
 이리야의 거리를 산책하다보면 무심코 골목에 숨어있는 신사의 입구로 들어가곤 한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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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쿠사의 갓파도구거리에서 보이는 스카이트리. 너무나도 일본적인 은은한 색깔의 불빛이 주민과 관광객들의 등대 역할을 한다.
 아사쿠사의 갓파도구거리에서 보이는 스카이트리. 너무나도 일본적인 은은한 색깔의 불빛이 주민과 관광객들의 등대 역할을 한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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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타마치의 밤거리를 아직도 헤매고 있는 이유

지금은 좀 나아졌냐고? 많이 나아졌지만 안타깝게도 난 아직도 이런 식으로 동네를 헤매고 있다.

핸드폰도 개통됐고 구글지도도 볼 수 있지만, 일부러 켜지 않는다. 새로운 길을 한번 개척해보려고 가보지 않은 옆길로 살짝 들어갔다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더 걷기도 하지만, 그렇게 헤매다 지도에 없는 새로운 가게나 절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구청이나 구립도서관, 혹은 공원을 향해 걷다보면 어젠 없었던 슈퍼나 가게, 술집, 이발소들을 매일 새로 발견한다. 아니, 새로 발견한다기보다는 익숙하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겠지.

시타마치는 특히 모든 가게나 가정이 불을 끄고 휴식에 들어간 늦은 밤이 매력적이다. 가로등만 환히 켜져있고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는 거리를 혼자서 걷다가 신사의 입구임을 가리키는 도리이를 마주치면 일본 영화의 세트장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도쿄에 잠깐 여행 오는 많은 분들에게 밤 늦게 숙소에서 나와 인근 주택가를 한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낮에는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고 저녁엔 맛집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밤에 도쿄의 주택가를 걷다보면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와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싶으면 눈 앞에 마주친 사람들에게 주저말고 물어보라. 안 그러면 나처럼 3시간 헤맬 수 있다.
 
 심야 산책길에 마주친 동네 신사. 누구에게 뭘 비는 곳일까.
 심야 산책길에 마주친 동네 신사. 누구에게 뭘 비는 곳일까.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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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건너 시타야 지역의 흔한 심야 주택가 모습.
 길 건너 시타야 지역의 흔한 심야 주택가 모습.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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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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