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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스 모델 밀크가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모습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강아지 이름은 밀크. 나이는 6살. 직급은 대리입니다. 애견용품을 제작 판매하는 ㈜라온스의 공식 모델이지요. 최은영 라온스 대표는 밀크를 소개하며 "급여는 각종 애견용품과 유기농 수제 사료이며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는 밀크와 함께 출퇴근합니다.
  
밀크 대리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직원입니다. 방문객이 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 꼬리를 치며 반기고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더군요. 마치 자신이 입고 쓰는 제품에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요.

라온스는 반려동물 패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예비사회적기업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반려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을 만듭니다. 일반 회사와 다른 점은 교육을 통해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지요.

꿈을 선물하는 펫디자인공작소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홈패션 수업 현장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낮 12시 구로구 사회적경제창업지원센터 지하 1층에 자리잡은 라온스 사무실에 들어서자 '드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펫디자인공작소'라 이름 붙여진 이 공간에는 결혼이주여성 6명이 파우치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법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라온스는 지난 9월부터 구로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과 창업을 돕는 봉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엔 아이 옷을 만들어 입혀본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애견용품 만드는 게 참 재미있어요. 제 꿈은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아 작은 점포를 여는 겁니다." - 수강생 김미화 씨

수강생들은 주 4회 이곳에서 앞치마 같은 홈패션과 반려동물용품을 제작하는 기술을 익히고 판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합니다. 수업시간에 만든 제품을 직접 장터에 나가 팔아보고 라온스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2곳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기회도 얻습니다. 최 대표는 "이 산업의 특성상 재봉틀 한 대만 있어도 80살이 될 때까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라온스는 이미 2017년 은평구와 적십자사 등의 지원을 받아 청년부터 노약자, 다문화 여성 등 다양한 계층 21명에게 봉제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이중 15명이 취업 또는 창업을 했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도 있습니다. 

반려동물 배려 디자인으로 일자리 창출
 
김지연 이사(오른쪽)가 수강생들에게 파우치 디자인과 만드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라온스가 이처럼 취·창업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라온스의 창립멤버이자 반려동물 패션업계에서 16년 동안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지연 이사 덕분입니다. 그는 '사비도'란 이름으로 별도의 회사를 차릴 정도로 이 업계에서는 유명 인사입니다. 김 이사는 라온스에서 제품 생산과 봉제 교육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는 2002년 남대문시장에 막 애견 상품 전문 도매 상권이 형성됐을 때 디자이너로 첫발을 들여놓았습니다. 16년의 업력은 그 스스로 '내 옷을 입어보지 않은 강아지가 없을 정도'라는 자부심으로 요약됩니다. 지금까지 그의 손끝에서 시작해 공장에서 기성품화한 제품이 무려 800종을 넘습니다. 라온스 제품의 특징은 강아지의 관점에서 디자인한다는 철학입니다.
 
"재료는 국산만 쓰고 소재는 가능한 아동복처럼 면 100%를 씁니다. 반려인의 눈에 예쁜 게 아니라 반려동물이 활동하기에 편안한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반려동물이 활동하기에 편안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가령 동물들은 거의 배를 깔고 지내기 때문에 이때 솔기가 배기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 옷은 앞이 화려하지만 반려동물 옷은 등이 화려하지요. 사람 눈에 예쁘게 보이려고 등쪽에 망사로 된 레이스를 달고 주렁주렁 구슬도 달고 꽃도 달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려한 장식은 배제합니다. 한 마리만 키울 때는 몰라도 여러 마리를 키우거나 산책을 나가 다른 동물을 만났을 때 서로 등에 올라타고 장난치다가 발톱이 상하거나 이빨이 상해 주인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라온스가 만든 애견 의복은 16년 동안 다양한 견종 사이즈를 연구하고 테스트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김 이사는 "16년 동안 다양한 견종의 사이즈를 연구하고 테스트한 결과물로 만들어진 라온스 제품은 단순히 동물을 형상화한 인형으로 치수를 재서 만든 기성품과는 비교를 불허한다"고 차별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라온스 제품은 온라인 쇼핑몰뿐 아니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있는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허브 매장인 SEF에 입점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라온스는 올해 기존의 저가 브랜드인 독씨(DOGC)와 병행해 고급 브랜드인 앨비스독(LB's Dog)을 새로 출시합니다. 앨비스독은 사람과 반려동물을 위한 패션 리빙 브랜드입니다.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연대감을 표시한 패밀리룩을 선보인데 이어 스와로브스키 원석으로 주얼리를 생산하는 업체와 손잡고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같은 확장세는 라온스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습니다. 올해 직원 2명을 정식 채용하기로 하고 근로 조건을 협상 중입니다. 2명 모두 교육생 출신입니다. 임봉수 이사는 "우리가 인큐베이팅한 교육생들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목표로 일한다"며 "직접 고용뿐 아니라 현재 남대문 애견용품 도매상가 서너군데와 연결돼 있어 교육생들의 취·창업에 물꼬를 터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화된 인형으로 교육계에 신선한 바람몰이
 
멸종 위기 동물들인 부엉이,코끼리,원숭이 등을 형상화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비밀인형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예비사회적기업 라온스는 우리나라의 멸종동물을 캐릭터로 제작하고 그 동물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화 콘텐츠로 만들어 알리겠다는 미션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강치와 수달, 하늘다람쥐 등 우리나라 보호 대상 동물을 만화의 주인공으로 하는 히어로물 시리즈를 만들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전략이지요. 이 같은 아이디어로 2014년 소셜벤처 경연대회 창업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1화 샘플링이 완료된 상태로 내년 중 연재할 계획입니다.

최 대표와 임 이사는 각각 만화 콘텐츠 기획자와 만화협회 사업국장을 지냈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지녔지만 만화 콘텐츠만으론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집중과 선택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사람과 반려동물의 착한 공생'이란 미션을 내걸고 반려동물 패션 상품과 교육을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정했습니다. 올해는 아쉬운 대로 멸종동물 이야기를 비밀인형에 먼저 녹여냈습니다. 
  
라온스는 지난 9월 서울패션디자인재단과 함께 멸종 위기 동물을 소재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비밀인형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비밀인형은 몸에 비해 귀가 유달리 크고 입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뿐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뜻합니다. 이 인형들은 한결같이 멸종 위기 동물들을 형상화했습니다. 
 
"외국에선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비밀인형을 활용합니다. 우리도 왜 왕따가 큰 사회문제잖아요. 저희는 첫 단추 끼우기로 DIY 동물인형 제작 키트를 개발해 학교에 제공하려고 합니다."

라온스는 이 동물인형 키트로 어떻게 소외된 아이들 혹은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을 다독여줄 수 있을지를 놓고 심리학, 사회복지학, 아동학 관련 교수님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따뜻한마음청소년센터'와 함께 성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특수 인형 제작으로 보폭을 넓혔습니다.
 
"아기의 탄생 과정을 인형놀이를 통해 인지하는 교육입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지, 그리고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사춘기가 되면 우리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인형을 통해 쉽게 접근해보는 거죠."
 
수제로 만든 특수 목적 인형들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보급형 제품을 개발해 학교나 보건소에서 비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밖에도 위기청소년 80여 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꿈을 만화로 풀어보는 수업을 진행한 것을 비롯해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교육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들 미소 볼 때면 사명감 느껴요"
 
라온스 창업 멤버들. 왼쪽부터 김지연 이사, 최은영 대표, 임봉수 이사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최은영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로서의 4년을 돌아보며 "영리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영리를 좀 포기하더라도 사람과 반려동물의 착한 공생이라는 미션을 수행하는데 더 주력하느냐를 놓고 저울질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돈만 버는 인생은 재미없다"면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기록물을 정리하다 보면 그런 마음이 어느새 사명감으로 바뀐다"라고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의 사진 중에는 아주 해맑게 웃는 표정의 사진들이 있어요. 또 수업 이후 '인생이 많이 변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저희 교육생들 중에는 이혼을 한 후 살길이 막막해진 분, 불의의 사고로 재활이 필요 한 분, 아이들이 떠나간 빈 둥지에 홀로 남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수업이 끝난 후 '인생이 많이 변했다'라고 말해줄 때 우리가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은 바람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지요."

'라온'은 순우리말로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 바로 라온스의 최종 종착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 :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 이우기(사진가)

이 기사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격주로 발행하는 온라인 뉴스레터 '세모편지'에도 실립니다.

태그:#사회적경제, #라온스, #반려동물, #애견의복, #동물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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