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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가 되기 전에 숙소에서 잠을 깼다. 아침 일찍 비엔나 공항에 가서 오전 7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부담 때문인지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행히 숙소에서 하룻밤을 푹 쉬었던 아내도 잘 일어나서 숙소 앞 비엔나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공항 식당에서의 오믈렛 식사와 커피 한 잔이 따뜻했다.
 
두브로브니크 행 비행기 날개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 비엔나 공항. 두브로브니크 행 비행기 날개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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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Dubrovnik)행 작은 비행기의 좌석은 많이 비어 있었다. 손님은 몇 명 없는데 빨간 제복의 오스트리아항공 스튜어디스가 네 명이나 된다. 창 밖으로는 발칸반도의 디나르 알프스(Dinaric Alps) 산맥의 암벽과 절벽들이 과감하게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코발트 빛 아드리아 해(Adriatic Sea)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크로아티아 상공에서 아드리아 해를 내려다보는 마음이 흥분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와 보고 싶었던 크로아티아였던가?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절벽의 해안이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 크로아티아 해안.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절벽의 해안이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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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공항은 예상대로 바닷가의 조그만 시골공항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비행기들은 모두 인근 로마, 파리, 비엔나에서 온 비행기들이다. 무슨 일인지 크로아티아 입국심사도 없었다.

여행객들의 탄성이 쏟아지는 곳
 
영국 시인 바이런이 천국이라고 극찬을 했던 곳이다.
▲ 두브로브니크. 영국 시인 바이런이 천국이라고 극찬을 했던 곳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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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로 가는 셔틀버스 티켓을 산 후 아드리아 해가 바라다보이는 왼쪽 창가에 앉았다. 날씨는 맑았고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버스가 고갯길의 커브를 돌 때마다 보이는 아드리아 해에 여행객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드디어 크로아티아 여행이 시작됐다.

구시가 성벽의 성문인 필레 문(Pile Gate)에서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은 숨은 골목 속 집찾기다. 나는 높은 언덕과 계단이 많은 두브로브니크에서 여행가방 끌고 숙소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이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숙소를 장고한 끝에 구시가 중심의 평지인 스트라둔(Stradun) 대로 인근의 숙소를 예약했었다.
    
두브로브니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두브로브니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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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숙소는 호텔이 아닌, 아파트형 숙소여서 숙소 찾아가는 방법과 숙소의 입구사진이 담긴 메일을 받았고, 나는 그 메일의 안내에 따라 구시가의 골목들을 찾아갔다. 주소대로 찾아간 숙소에는 정말이지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숙소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는 마치 비밀 접선하듯이 숙소 측에서 받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두브로브니크 여행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성벽 답사에 나서기로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두브로브니크 성벽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꽤 긴 줄을 서 있었다.

아름답다는 두브로브니크의 명성이 전세계에 퍼졌기 때문인지 성벽 아래에는 전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는 시원한 초가을 날씨여서 한낮의 햇살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는 생수 두 병을 사서 가방 안에 넣고 계단을 올랐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요새인 두브로브니크 성벽. 10세기에 처음 건설되었고, 14세기까지 증축되고 보완된 이후, 19세기에 다시 침략자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더욱 견고하고 두텁게 수리됐다. 그래서 현재의 성벽은 무려 1.5~3m 두께에 높이는 6m에 이르고 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의 모습이 장관이다.
▲ 스트라둔 대로.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의 모습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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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스트라둔 대로는 마치 중세 시대에 들어온 듯 운치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많은 여행자들이 찬탄을 했던, 1940m에 이르는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구불구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터키 등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높은 성을 쌓은 중세의 한 해상도시가 마치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생각보다 성벽길이 꽤 길고 오르막 구간도 많아서 아내와 함께 완주할 일이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주변 풍광이 이미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시작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오르막 구간도 많아서 어느 정도의 체력이 필요하다.
▲ 성벽 오르기.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오르막 구간도 많아서 어느 정도의 체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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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성벽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다와 구시가를 바라보는 시야도 시원하게 풀린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에서는 아드리아 해의 해변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었다. 푸른 쪽빛 바다에 떠 있는 유람선들은 한가하기만 하고, 투명한 바다 위에는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푸른 망망대해와 하나로 연결된 듯한 하늘을 보는 감동은 들은 내용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기가 막힌 절경이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성벽 바깥으로는 아드리아 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 성벽과 아드리아 해. 성벽 바깥으로는 아드리아 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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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린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Byron, 1788∼1824)은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한 후, "지상에서 살면서 과연 천국이 어떤지 미리 맛보려면 두브로브니크에서 살아보라"고 말했단다. 바이런의 찬사가 과장이기는 하지만 가을 이 순간에 느끼는 두브로브니크는 바이런이 왜 이런 낭만적인 표현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성벽을 둘러싼 경치는 아름다운 반면, 성벽에 쌓인 역사적 내력은 복잡하다. 성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이 성벽으로 인해 두브로브니크는 일종의 요새가 됐다. 두꺼운 성벽은 이 도시가 맞서야 했던 외적에 대한 두려움의 깊이를 보여준다.
 
성 안에는 유고 내전 당시 파괴된 민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 성 안의 민가. 성 안에는 유고 내전 당시 파괴된 민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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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병사들의 순찰로로 이용했던 성벽 위 길을 따라가면 과거 아드리아 해 무역도시의 숨결과 부유했던 도시의 역사도 느껴진다. 산책로 위에 서서 성안의 아름다운 집들을 보면, 성 안에는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삶과 재산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성벽은 특히 성 안 민가의 지붕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 안에는 크로아티아 특유의 주황색 지붕들이 높이를 달리 하며 북쪽 성벽까지 끝없이 물결치고 있다. 푸른 하늘, 파란 바다와 주황색 지붕이 또한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투명한 한낮의 햇빛을 받은 주황색 지붕들은 금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주황색 지붕에는 애절한 역사가 숨어 있어"
 
내전 당시 이 주황색 지붕은 더 밝게 칠해졌다.
▲ 성안 민가의 주황색 지붕. 내전 당시 이 주황색 지붕은 더 밝게 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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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의 색이 강렬한 주황색이네."
"원래 이 주황색의 지붕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어. 지붕이 주황색을 띠는 이유는 철 성분이 함유된 양질의 점토를 토기 굽듯이 굽기 때문이지."


"두브로브니크의 민간인 집 지붕은 특히 밝은 주황색이야. 현재 지붕의 주황색이 칠한 지 얼마 안 된 듯 밝은 이유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의 상황 때문이지. 전쟁 때, 주황색 지붕의 집은 민간인의 집이니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포격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지붕에 주황색을 새로 칠했다고 해. 저 주황색에 애절한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담겨있는 거지."

"우리가 느끼는 성벽의 두꺼움도 외적에 대한 공포의 깊이이고, 지붕의 밝은 주황색도 외부의 공격에 대해 살려달라는 애원에서 더 강렬해진 거야!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크로아티아의 성벽 안 구시가의 경치가 아름답기만 하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한 거지."


성벽의 오르막 계단은 성벽의 더 높은 곳으로 계속 연결되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조금 힘들어 하면 잠시 쉬면서 바다와 성 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성벽 길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는 여기저기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망의 절정인 지점에 전망대와 작은 야외카페가 마련돼 있었다. 카페는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아름다운 섬처럼 보였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듯한 마력을 지녔다. 성벽 위의 햇살은 제법 따가운 것처럼 보이지만 성벽을 나는 바람은 시원했다. 야외 테라스에서의 이 순간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따뜻한 태양을 가려주는 파라솔 아래에서 아드리아 해를 보며 시원한 크로아티아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크로아티아 식당이나 카페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다. 맥주 두 잔을 주문했는데 한참 동안 맥주가 나오지 않는다. 유심히 보니 우리보다 더 늦게 카페에 도착한 단체여행객들에게 맥주가 먼저 갔다. 내가 웃으면서 항의 했더니 카페의 종업원은 정중하게 이해해 달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식이 아닌 일이 벌어지다

그런데 이 카페 종업원이 하는 말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말이다.

"단체 여행객들에게 먼저 맥주를 내오게 돼 있어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며 나에게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들며 웃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도 같이 웃어줬다. 우리에게는 이내 황금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맥주가 배달됐다.

나는 여행 전 수많은 여행정보를 통해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참 친절하지만, 크로아티아의 식당에서는 기분을 망쳤다는 글들을 많이 접했었다. 음식 주문을 늦게 받는다거나, 늦게 온 서양 사람들에게 음식이 먼저 나온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현지에 직접 와서 보니 음식주문을 받는 과정이 그리 치밀하지 않으며, 그들의 흘러가는 시간이 느릴 뿐이었다.
 
햇살 쏟아지는 바다를 보며 마시는 맥주는 평화로움을 가져다 준다.
▲ 성벽 카페에서의 휴식.  햇살 쏟아지는 바다를 보며 마시는 맥주는 평화로움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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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의 앞길에는 답사할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아드리아 해의 햇살을 즐기며 너무나 푸른 바다를 함께 바라봤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여행, #아드리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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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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