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55회 대종상영화제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55회 대종상영화제 ⓒ 성하훈

 
올해도 대종상이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2일 치러진 55회 대종상영화제가 시상식 진행 미숙, 수상자 대거 불참, 부적절한 대리수상 등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표면적으로는 영화 <남한산성>으로 음악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류이치를 대신해 영화와 아무 관계 없는 가수가 대리 수상한 여파가 크다. 조명상 역시 제작사 쪽과 관계 없는 한국영화조명감독 협회 부이사장이 받아갔다. 편집상이나 의상상은 대리 수상자가 무대에 오르지 않아 사회를 보던 신현준이 받아가기까지 했다. 심지어 대리수상자들이 받아간 트로피의 행방을 묻는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다. 
 
대종상 측은 <남한산성> 쪽과 연락이 되지 않아 사전에 추천을 받아 대리 수상자를 정했다고 해명하고 제작사 측에 유감을 표했지만, <남한산성> 측은 좌석 및 주차 티켓까지 받았는데 연락이 안 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여전히 대종상이라는 냄비는 시상식 다음날인 23일에 이어 24일 오전까지 끓고 있다.
 
통상 이런 시상식에서 대리수상자는 영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인물을 꼽는 게 일반적이다. 사카모토 류이치 같은 해외 인사의 경우엔 제작사를 통해 섭외하기에 필연적으로 제작사와 연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사 직전까지 제작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대종상 측의 해명은 설득력이 그만큼 떨어진다.

대종상을 향한 이런 비난의 바탕엔 대중의 깊은 불신이 자리한다. 그간 정상적으로 치러진 때가 없을 만큼 끊임없는 파행이 이어지면서 영화인들은 물론 상당수의 대중들이 대종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글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글 ⓒ 트위터

 
외부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종상 응원을 목적으로 모집한 서포터즈에게 세종문화회관 2~3층 관람을 허용한 점에서도 잡음이 생겼다. 대종상 측은 행사 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포터즈를 모집하면서 SNS에 배우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듯 '사진 찍기 좋은 자리는 없고 300mm 이상의 망원 없으면 얼굴 클로즈업 못 찍으니 이점 참조하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행사 당일 사진 촬영을 막아 2~3층을 채운 서포터즈 참석자들의 불만이 나온 것이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대종상 서포터즈로 사람 모집할 때 사진 찍어달라고 장비 가져오라고 해 놓고 막상 들어오니까 사진 찍지 말라고 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진기자들의 시상식장 출입도 제한하는 행사인데, 일반관객들에게 사진촬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무리하게 자리를 채우기 위해 속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불안정한 진행은 2년 연속 잡음 없이 마무리된 공정한 심사도 덮이게 했다. 조직위원장의 예선 간섭 논란 속에서도 국내 대표적인 영화인들은 그간 흥행작 위주로 편중된 틀에 갇혔던 대종상의 한계를 벗어난 심사 결과를 내놨다. 그럼에도 대리수상 논란 속에 수상결과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이다.
 
추락한 대종상
 
 55회 대종상 기획상 시상자로 나선 지상학 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

55회 대종상 기획상 시상자로 나선 지상학 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 ⓒ TV조선

 
대종상이 이처럼 신뢰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원적인 구조에 있다. 공식적으로 행사의 주최 단체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다. 하지만 이 단체는 대종상이 해마다 끊이지 않는 논란을 겪고 있음에도 책임지지 않는다. 논란의 화살은 대부분 대종상 조직위원회(김구회 위원장)를 향하기 때문이다. 

영화감독협회, 촬영감독협회, 시나리오작가협회 등 8개 산하단체로 이뤄진 영화인총연합회는 대종상 개최 권한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자체적으로 행사를 치러낼 여력이 안 돼 대종상 조직위원회에 행사의 진행 권한을 5년 계약으로 넘긴 상태다. 계약서에 따르면 오는 2019년까지가 김구회 조직위원장의 임기다. 그 대가로 조직위로부터 영화인총연합회는 수억 원의 발전기금을 매해 받는다. 대종상에 대한 논란과 불신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직접적인 귀책사유가 없는 한 영화인총연합회는 발전기금을 받는 데 지장이 없다.
  
'제 55회 대종상' 김구회 조직위원장, 정상화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22일 오후 서울 광화뭉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5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에서 김구회 조직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 '제 55회 대종상' 김구회 조직위원장!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뭉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5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에서 김구회 조직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 이정민


문제는 주로 보수원로영화인들이 주축인 영화인총연합회가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실질적으로 한국영화산업을 이끄는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의 영화단체다. 이들은 영화단체연대회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사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매년 열리는 주요 시상식에서 수상 후보로 오르는 작품 또한 대부분 이 영화단체 소속 영화인들이 제작한 영화들이다.  

겉으로는 선배 영화인들이 후배들에게 상을 주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외면하는 상태에서 현장에 물러난 이들이 영화상을 주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리수상 논란,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는) 참가상 논란 등을 겪어온 대종상은 지난해부터 심사 방식을 전격 수정하며 젊은 영화인, 평론가 등을 영입했다. 이 덕에 심사의 공정성 논란에선 벗어나는 모양새지만 올해까지 미숙한 진행이 이어지며 이런 성과마저 가려지는 모양새가 됐다. 

논란이 될 때마다 매번 개선을 말하고 쇄신과 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대종상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주최자인 영화인총연합회가 변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충무로 영화인들의 지적이다. 대리수상자로 지목된 이들 역시 이들 협회와 관계성 있는 인사들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전통의 대종상을 폐지해도 아쉬울 게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상태다. 원로영화인들이 주최하는 축제가 한국영화 전체를 아우를 수 없고 모범이 될 수 없다면 그 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종상을 독립시켜 전체 영화인들이 고루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힘을 얻는다. 전격적인 변화 없이 영화상으로서 권위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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