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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곳곳에 700만의 재외동포 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살면 국내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무뎌질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빠르게 챙겨보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해외 곳곳에는 국내외 이슈로 활동하는 개인 활동가, 활동 단체들이 있습니다. 활동 성격과 방향은 다양합니다. 같은 주제로 활동한다 하더라도 그곳의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재외동포 한인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전세계의 한인 활동가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기자말

미국 남부 택사스주의 휴스턴에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휴스턴 세월호 함께 맞는 비'라는 한인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휴스턴 세월호 함께 맞는 비의 코디네이터(coordinator)이자, 평화 활동가인 구보경씨를 지난 18일부터 사흘간 전화, 이메일 인터뷰했습니다.

2014년 5월 10일, 미국의 한인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씨 유에스에시(MissyUSA)에 한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위주로 '세월호 참사 미주 50개주 동시집회'가 열린다는 공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약 한 달 후였습니다.

이 공지는 미국 한인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지역별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모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는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사회 건설을 요구하는 집회로 이어졌습니다. 활동을 이어오며 각 지역의 단체들은 지역과 구성원들의 특성에 맞는 활동을 하며 단체를 조직해 나갔습니다.

구보경씨도 미씨 유에스에이에 올라온 '세월호 참사 미주 50개주 동시집회' 공지를 보고 휴스턴 지역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총 세 차례 열린 집회에서 그녀는 주변의 '엄마'들을 모아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녀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에 처음부터 이처럼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유는 이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수습해야,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집회를 통해 휴스턴 지역에는 세월호 참사를 매개로 하는 한인 진보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다  
 
휴스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
 휴스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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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미주 50개주 동시집회'를 계기로 미주 각 지역에서 생겨난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단체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직전, 세월호 유가족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주지역 순회 간담회를 열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구보경씨는 참사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의 활동을 보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생각났습니다. 피해자들이 직접 앞에 나서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들이 주체가 되는 활동할 때, 그들의 진심이 전달되어 함께 하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보경씨는 유가족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간담회 준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미주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미국의 일부 한인 보수단체에서는 여러 단체가 함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노골적인 방해와 마타도어가 계속됐습니다. 구보경씨를 더 힘들게 한 건, 간담회를 함께 준비하던 다른 지역의 단체들과 겪은 갈등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연대하던 단체들이 처음으로 함께 준비한 행사였습니다. 각 단체의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구보경씨는 이런 일들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간담회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미주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열렸고, 휴스턴 지역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최윤민양의 어머니 박혜영씨와 고 이재욱군의 어머니 홍영미씨가 방문했습니다. 고 최윤민양 어머니 박혜영씨는 간담회에서 "유가족들이 활동하며 가장 두려운 것은, 나중에 우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구보경씨는 '내가 이들과 끝까지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구보경씨는 그 다짐을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휴스턴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
 휴스턴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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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구보경씨의 다짐을 다시 되새기는 순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왔습니다. 2016년 세월호 참사 2주기 즈음, 지역에서 함께하던 이들이 하나 둘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한 다짐을 기억하며 더 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함께한 단체를 나와 휴스턴 지역에서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한다는 한인들을 다시 모아 '휴스턴 함께 맞는 비(함비)'를 조직했습니다. 함비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약전 읽기와 100일 기도 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활동을 하고, 1000일, 3주기, 4주기 등 세월호 참사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로 시작해 여성 인권, 평화로 관심을 확장하다
 
세월호 참사 4주기 휴스턴 추모 문화제
 세월호 참사 4주기 휴스턴 추모 문화제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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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은 구보경씨를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인권, 평화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현재 구보경씨는 다양한 주제로 활발히 활동하는 해외 활동가 중 한 명입니다. 이 모든 활동이 구보경씨에게는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실천 과정입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권리로써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이 권리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2018여성평화걷기 대회에 참석한 구보경씨와 해외 동료 활동가들
 2018여성평화걷기 대회에 참석한 구보경씨와 해외 동료 활동가들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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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 구보경씨는 최근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휴스턴 지역에서 활동하며 더 큰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 방식이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온 이들이 하는 고민은 대동소이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활동 과정에서 느낀 한계를 두고 토론하다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양된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을 방문한 구보경씨와 동료 해외 활동가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
 인양된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을 방문한 구보경씨와 동료 해외 활동가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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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경씨는 해외 세월호, 평화 활동가들과 함께 'S.P.Ring세계시민연대'라는 연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각자의 활동 경험을 통해 다른 연대 조직에서 느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곳에 모인 활동가들은 뜨겁게 토론하고 있습니다.

S.P.Ring세계시민연대는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지속가능하며 활기찬 연대 조직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S.P.Ring세계시민연대에 소속된 구보경씨를 비롯한 각 지역의 활동가들의 고민과 노력이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길 바랍니다.

태그:#휴스턴 세월호 함께 맞는 비, #휴스턴, #구보경, #S.P.RING 세계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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