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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기록물에 대한 쓴소리 4회째는 '서훈 받은 가족관계'를 밝혀달라는 내용이다. 인터넷 국가보훈처 → 공훈전자사료관 → 독립유공자정보 → 독립유공자공훈록에 들어가 찾고자 하는 독립운동가 이름을 넣으면 해당 독립유공자의 공훈이 나온다. 예컨대 엄기선(1929-2002) 지사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공훈이 적혀있다.
 
엄기선 지사의 공훈록 일부. 여기에는 부친 엄항섭이라고만 나와 있을뿐 독립운동가인 어머니 연미당 지사 이야기는 없다.
▲ 엄기선 공훈록 엄기선 지사의 공훈록 일부. 여기에는 부친 엄항섭이라고만 나와 있을뿐 독립운동가인 어머니 연미당 지사 이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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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앞 줄임)... 1943년 2월경부터 중경(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장으로 활약하던 부친 엄항섭(嚴恒燮)을 도와 중국 측 방송을 통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상황과 중국에서의 일본군의 만행을 동맹국과 국내 동포들에게 알렸고, 일본군 내의 한국인들과 국내 동포들에게 염전사상(厭戰思想)을 고취시켰다... (뒷 줄임)"
 
국가보훈처는 2018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엄기선 지사의 어머니 연미당 지사를 선정했다. 그러나 따님인 엄기선 지사 공훈록에는 아버지 엄항섭만 적혀있다.
▲ 연미당 국가보훈처는 2018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엄기선 지사의 어머니 연미당 지사를 선정했다. 그러나 따님인 엄기선 지사 공훈록에는 아버지 엄항섭만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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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이 공훈록에는 엄기선 지사의 아버지가 엄항섭이라고 밝히고 있을뿐 어머니 연미당 지사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어머니 연미당 지사 역시 출중한 독립운동가다. 연미당 지사는 지난 7월 국가보훈처가 매달 한 분씩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뽑힐 정도로 큰 활약을 하신 분이다.

엄기선 지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부부, 자매, 형제, 부자관계, 모자관계, 일가친척 등 온 가족이 똘똘 뭉쳐 독립운동을 한 예가 많다. 이러한 가족관계들 간의 유기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국가보훈처에서 챙겨준다면 애국지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보훈처는 이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

가족이 함께 독립운동 한 경우 많지만, 설명 없어
 
오광심 지사 공훈록 일부. 여기에는 김학규의 부인이다라고 적혀있지만, 전월순 지사와 유순희 지사의 경우는 남편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 오광심 공훈록 오광심 지사 공훈록 일부. 여기에는 김학규의 부인이다라고 적혀있지만, 전월순 지사와 유순희 지사의 경우는 남편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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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광복군 출신인 오광심(1977, 독립장) 지사의 경우 독립운동가 김학규의 부인이라고 적혀있지만, 같은 광복군 출신인 전월순(1990 애족장) 지사의 경우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없다(남편 김근수 지사, 1990 애국장). 그런가 하면 역시 광복군 출신으로 생존 애국지사인 유순희 지사 역시 남편이 독립유공자인데 언급이 없다(남편 최시화, 1990 애국장). 일일이 지적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애국지사들이 가족관계 설명없이 혼자 단독으로 기술되어 있어 안타깝다.

안타까운 이야기 하나를 더 하겠다. 기자는 지난 19일 김봉식(1990 애족장) 지사의 아드님과 전화통화를 했다. 김봉식(金鳳植, 1915-1969) 지사는 그의 어머님으로, 이름이 남자 같지만 당당한 여성광복군 출신이다. 어렵사리 연락처를 확보하여 김봉식 지사의 아드님과 통화가 되자마자 기자는 "혹시 아버님도 독립운동을?" 하고 물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드님은 "맞다"고 했다. 그러나 김봉식 지사의 공훈록에는 남편 황영식(1991 애국장)에 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없다.
 
기자가 쓴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김봉식 지사 편(57쪽)에 서훈 받은 가족 칸이 비어있다. 보훈처 공훈록 정보를 참고해 보았으나 가족 관계 부분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김봉식 기자가 쓴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김봉식 지사 편(57쪽)에 서훈 받은 가족 칸이 비어있다. 보훈처 공훈록 정보를 참고해 보았으나 가족 관계 부분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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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자는 지난 6월, 여성독립운동가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서훈 받은 300명을 알기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을 펴낸 바 있다. 이 사전은 오랫동안 준비한 것으로 지난 6월에 발간할 때는 서훈자가 299명이었으나 허은 지사를 넣어 300명을 채웠다. 책을 낼 무렵에는 아직 허은 지사는 서훈자가 아니었다. (2018년 8월 15일 서훈)

이 책은 '서훈 받은 가족' 이라는 칸을 만들어 가족관계를 밝히고 있는데, 위에 든 김봉식 지사의 경우 보훈처 기록에 남편 황영식 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고 기자 역시 수소문하다가 책이 나온 뒤에서야 가까스로 아드님을 찾아 전화통화를 한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김봉식 지사의 남편 황영식 지사는 1991년에 애국장을 추서 받음"이라고 적었을 텐데 아쉽다.

그런데 아드님과의 통화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 황영식 지사에 관한 이야기다. 황영식 지사는 가짜 독립운동가 황영석이라는 인물에게 독립유공자 자리를 빼앗긴 채 지내왔으며, 아드님께서 지난 1986년부터 발 벗고 뛰어 가짜를 물리치고 아버지 황영식(1913-1969) 이름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고 했다.
 
 전월순 지사의 공훈록 일부. 전월순 지사 남편 역시 광복군이지만 공훈록에는 남편 김근수 이야기가 빠져있다. 앞서 든 오광심 지사의 경우는 김학규가 남편이라고 적혀 있는 등 보훈처 공훈록에는 가족관계가 일관성 없이 기술되어 있다.
▲ 전월순 공훈록  전월순 지사의 공훈록 일부. 전월순 지사 남편 역시 광복군이지만 공훈록에는 남편 김근수 이야기가 빠져있다. 앞서 든 오광심 지사의 경우는 김학규가 남편이라고 적혀 있는 등 보훈처 공훈록에는 가족관계가 일관성 없이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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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식, 황영식 부부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아드님에게 듣고 있자니 얼마 전 '국가보훈처, 가짜 독립운동가 4명 서훈 취소(2018.9.14.)'라는 제목의 <오마이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김봉식, 황영식 부부 독립운동가의 아드님과는 별도로 10월 28일 대담 일을 잡아두었다. 아버지 황영식을 대신해 가짜 행세를 한 인물에 대한 증언은 다음 기회에 따로 쓰겠다.

김봉식 지사의 아드님을 찾지 못했다면 기자의 책 57쪽 '김봉식 지사' 편의 '서훈 받은 가족' 칸은 영원히 빈칸으로 남았을 뻔했다. 물론 현재는 빈 칸이다. 책이 나온 뒤에 후손을 찾았기 때문이다. 혹시 재판을 찍게 된다면 보완할 것이다. 만일 국가보훈처 기록에 이들이 부부로 기록되었다면 좋은 참고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독립운동가의 삶 읽을 수 있는 종합적 정보 제공해야
 
광복군 출신 유순희 지사 공훈록 일부. 여기에도 남편 최시화 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 물론 남편 최시화 공훈록에도 유순희 지사 이야기는 없다.
▲ 유순희 공훈록 광복군 출신 유순희 지사 공훈록 일부. 여기에도 남편 최시화 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 물론 남편 최시화 공훈록에도 유순희 지사 이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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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희, 최시화 부부독립운동가 훈장증. 기자가 직접 유순희 지사 댁에서 찍은 것이다.
▲ 유순희, 최시화 훈장증 유순희, 최시화 부부독립운동가 훈장증. 기자가 직접 유순희 지사 댁에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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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1일, 작은 화분을 사들고 오희옥 지사와 함께 유순희 지사 집을 방문했을 때 사진. 왼쪽이 오희옥 지사인데 현재 투병중이다. 가운데가 유순희 지사, 옆은 기자. 유순희 지사 역시 건강이 안좋은 상태다.
▲ 유순희, 오희옥 2017년 3월 31일, 작은 화분을 사들고 오희옥 지사와 함께 유순희 지사 집을 방문했을 때 사진. 왼쪽이 오희옥 지사인데 현재 투병중이다. 가운데가 유순희 지사, 옆은 기자. 유순희 지사 역시 건강이 안좋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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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기록을 조사하다보니 하나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가족과 같은 혈연이거나 스승과 제자, 선후배 등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아는 것은 한 인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임에도 국가보훈처는 이 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다.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세세한 것을 모두 공훈록에 밝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가족관계라도 밝혀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누구는 남편 이름을 밝히고, 누구는 안 밝히는 등의 일관성 없는 이런 기록은 해당 가족은 물론이고 독립운동가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엄기선 지사의 아버지는 엄항섭이고 어머니는 연미당인데 이들은 부부독립운동가다."
"전월순 지사의 남편은 김근수이며 이들은 부부독립운동가다."
"유순희 지사의 남편은 최시화이며 이들은 부부독립운동가다."


왜 이러한 기술이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성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공훈록 작성자들의 공부 부족일 것이다. 공훈국가보훈처에 있는 충분한 자료를 이용한다면 적어도 가족관계 정도만큼은 '정확한 기술'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엄기선, 엄항섭, 연미당 지사가 한 가족임에도 아버지만 기록하고 어머니를 빼버린 이런 기술은 솔직히 낙제점이다. 더욱이 기자처럼 '독립운동가들의 가족관계'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스스로 부부관계, 모자관계, 부자관계, 자매관계, 형제관계를 밝혀야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개선의 날을 기다려본다.

(*다음 5회로 이어짐)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독립유공자공훈록,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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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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