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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폭탄 선언
 
 경주의 추억
 경주의 추억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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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둘째 날. 아침부터 나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평소 어느 여행을 가도 아점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는데, 이번 경주여행은 그럴 수 없었다. 어제 받은 스탬프 안내서를 모두 채우기 위해서는 2박3일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하니 빨리 나서야만 했다.

그런 아빠가 안쓰러웠을까? 스탬프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던 첫째 까꿍이가 갑자기 선언 아닌 선언을 했다.

"나, 이제 스탬프 안 찍을래."
"뭐? 스탬프 다 찍자며. 어제도 스탬프 찍는다고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갑자기 왜?"
"봐봐. 스탬프 다 찍어서 보내도 상품을 모두 주는 게 아니야. 추첨해서 준대잖아. 그리고 나 그 상품이 뭔지 알아. 신라 역사와 관련된 만화책이야. 별로 관심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니 스탬프 때문에 어제 그리 빨빨거리고 돌아다녔는데 왜 갑자기 스탬프를 안 찍겠다는 건가. 누나가 그러자 밑의 둘째와 셋째도 덩달아 안 찍겠다며 아빠 서두르지 말자고 타이른다.

"그래도 한 번 찍기 시작했는데 다 찍어야지 않을까?"
"아니. 상관없어. 스탬프 안내서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귀찮았어. 그냥 우리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자."


한 대를 맞은 것 같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스탬프 도장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는 것을. 선물을 받든 말든 상관없이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직성이 풀리는 내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스탬프를 찍자고 조르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그래, 무언가를 하다가 그것이 쓸모없음을 깨달으면 중지하는 것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법.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관성을 이기지 못해 버린 시간과 돈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강박관념의 고리를 녀석들은 이렇게 쉽게 끊어버리다니, 어른인 내가 배울 점이었다.

아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탬프 안내서를 버렸다. 여유가 생기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우리가 여행을 관광지 찍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아내가 이야기 한 대로 유유자적 거리를 걸으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기로 했다. 물론 그래봤자 또 수많은 유물들이겠지만 스탬프가 없는 이상 마음은 어제처럼 바쁘지 않았다.

신발을 던져라

숙소를 나와 우리가 가장 처음 간 곳은 첨성대와 능들이 위치한 경주역사유적지구였다. 신라문화제를 맞아 잔디밭에서는 풍물대회도 열리고 관광객들도 보였지만 어제 휴일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우리는 근처에 주차를 하고 첨성대로 향했다.

이윽고 바로 눈앞에서 보는 첨성대. 아이들은 책에서만 보던 첨성대를 드디어 봤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펴보았다. 첨성대 중간에 있는 구멍으로 무엇이 보이는지, 진짜 첨성대의 돌은 365개쯤 되는지 등등 배운 대로 첨성대를 훑어보기 바빴다.

그러나 그런 관찰도 잠시. 아이들은 이내 첨성대 뒤로 뻗어있는 잔디밭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곳이 경주든, 능이든, 문화재든 상관없었다. 10살, 8살, 6살 아이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어딘가를 놀러 온 것이 더 소중했으며, 이렇게 넓은 잔디밭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이었다.
 
 더 멀리 던져라~~
 더 멀리 던져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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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그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내기 신발던지기를 제안했고,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신라 능 앞에서 신발을 던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째는 엄마를, 둘째는 누나를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막내는 꼴찌를 면하기 위해 막무가내였다.

결국 가족의 평화를 위해 내기는 모두의 바람을 모아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경주의 추억을 남겼다. 아주 옛날 아이들이 능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것처럼. 그래, 경주의 역사와 문화는 너희들의 몫인지도 모르겠구나.

황리단길과 젠트리피케이션 
 
 경주 대릉원 내부
 경주 대릉원 내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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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을 나와 이번에는 대릉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 유명한 천마총과 황남대총, 미추왕릉 등이 있었는데 제대로 구경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온 중고생들의 인파에 섞여 주마간산 식으로 훑어볼 뿐이었다. 25년 전 우리도 저렇게 돌아다녔겠지? 당시 우리 때문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이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비록 천마총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보러 온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것을 저들 역시 느낄 수 있다는 동질감과 그렇게 이어지는 민족의 정체성 덕분인 듯했다. 우리 아이들도 다시 경주를 오게 되면 저들과 비슷하겠거니.

대릉원을 나오자 최근 경주의 핫플레이스라는 황리단길이 펼쳐졌다. 나의 경우에는 tvN의 <알쓸신잡-경주편>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된 곳이었는데, 황리단길은 그 명성만큼 묘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도심과 시골이 교차되는 그곳.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각각의 점포들은 관광객들을 각자의 매력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행을 하면서 바로 이런 것을 즐기고 싶었다며 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걸었다. 
 
 경주의 핫플레이스 황리단길
 경주의 핫플레이스 황리단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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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리단길의 젠트리피케이션
 황리단길의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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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황리단길을 보고 있자니 <알쓸신잡>에서 언급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임대사업자들의 노력으로 거리가 활성화되고 나면 건물주나 거대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해버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프로그램에서는 천하의 유시민도 이것만은 자본주의에서 어쩔 수 없다고 했거늘,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이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은 항상 고민일 수밖에 없다. 정녕 방법이 없는 걸까? 부디 경주 시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파고를 잘 넘기기를 바랄 뿐이었다.

경주 최부자 교촌마을
 
 경주 최부자 교촌마을
 경주 최부자 교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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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에서 점심을 먹은 뒤 우리가 향한 곳은 어제 대충 훑어보기만 했던 신라문화제 현장이었다. 아이들은 축제장에서 하는 몇 가지 체험과 구경거리에 환호했지만 내가 정작 눈여겨 본 것은 그 신라문화제가 열리는 곳의 건너편, 경주 최부자의 교촌마을이었다.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 과연 그들이 사는 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교촌마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경주향교가 있고 경주최씨고택과 경주교동법주까지 자리하고 있었지만 마을은 작고 아담한 편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은 높다란 기와 등으로 관광객들에게 위압감을 주는데 비해 교촌마을은 나지막한 돌담이 친근감을 주고 있었다. 경주 최부자들의 검소함이 주거 형태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경주 월정교의 야경
 경주 월정교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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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촌마을 끝에 위치한 월정교는 그와 같은 정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월정교는 신라시대의 기록을 근거로 최근 복원되었는데 그 크기와 웅장함이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요즘에는 경주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로도 유명한 월정교.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과연 그 시대 이만큼 화려한 건물을 지었는지는 의문이었다. 복원에 있어서 '우수한 민족'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교촌마을을 나와 포석정으로 향했다. 스탬프를 찍지 않는 아이들은 굳이 요청하지 않았지만, 나의 욕심이었다. 한때는 신라왕들이 흥청망청 놀다가 망했다는 증거로 제시되었지만, 최근에는 신라왕이 국가안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되는 포석정. 아이들에게 승자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의 해석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들도 역사를 그대로 믿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를.

어느덧 어두워진 경주의 하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야경을 보기 위해 월정교와 동궁과 월지를 들렀다. 아이들도 탄복해 마지않는 경주의 야경. 그렇게 경주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동궁과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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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